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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삭제는 외부의 간섭에 편집권을 반납한 행위
사장이 직접 편집국 동의 없이 기사를 삭제했다. 편집권 침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최근에는 언론사에서 편집권 때문에 갈등이 일어난 사례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안철흥 위원장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는 편집권 독립을 위해 기자들이 싸웠던 사례가 많지만 최근에는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 90년대 들어 노조가 생기고 단체협약에 편집권 독립이나 공정보도에 대한 조항들이 들어가고, 편집권은 기자들과 경영진이 공동으로 행사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어왔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우리가 편집권 유린, 혹은 편집권 행사의 주체가 누구냐를 두고 다투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 문제가 조명받은 측면이 있다.금창태 사장은 취임사에서 ‘편집에는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편집권은 편집인의 권한이며, 이번 사건도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안 위원장 금 사장이 취임하며 그렇게 말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시사저널」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이고, 편집인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본다. 그것을 문제 삼고 있진 않다. 학계에서도 편집권의 정의에 대해 확립된 바가 없다. 일본이나 미국은 경영진의 편집 개입을 상당히 허용하는 반면 유럽에서는 기자들 중심으로 운영되기도 해서, 편집권이 뭐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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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저널 안철흥 노조위원장, “데스킹을 거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기사를 편집국의 동의도 없이, 편집국장에게 통보하지 않고 빼버린 게 문제다.” |
그렇다면 편집권이 바람직하게 행사되려면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는가.안 위원장
언론은 다른 기업과 다르다. 언론사는 사기업이지만 그 산출물은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경영자가 ‘이건 내 회사고, 내가 발행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하겠다’고 해서 편집권이 재산권으로서 행사되는 게 아니다. 제대로 된 기사가 보도될 수 있도록 행사돼야 한다. 언론사를 이루는 주체는 기자고, 기자와 편집인이 편집권을 공유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편집국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데스킹을 거쳐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기사를, 편집국의 동의도 거치지 않고 편집국장에게 통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빼버린 게 문제가 된 것이다. 이는 편집권의 행사라기보다는 외부의 간섭에 편집권을 반납한 행위가 아닌가 한다.대 언론 로비, 삼성이 하면 다르다경영진과 기자단의 갈등이기도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삼성에 대한 기사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기도 하다.안 위원장 민주화 이후 정치권력에 의한 언론 통제는 많이 사라졌다. 현재는 대통령에 대해서도 무한 비판이 가능한 상황이다. 대신 정치권력을 대체한 새로운 권력, 자본권력이 나타났다. 언론들이 재벌의 눈치를 보고, 대자본이 광고의 힘을 가지고 언론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측면이 있다. 정치권력에 못지않은, 오히려 훨씬 정교하고 강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언론사도 광고 수입이 있어야 유지가 되고, 편집국도 기업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는 용인해주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자본에 의한 언론 간섭이 갈등으로 표출된 사례는 별로 없었다. 이번 사건은 도가 지나쳤다. 삼성이 기사를 빼기 위해 평상시보다 훨씬 심한 로비를 벌였고, 그 때문에 경영진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기사를 삭제하는 바람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사실 문제의 기사는 세 쪽짜리였고, 과거 기사에 비해 크게 비판적인 것도 아니었다는데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의아한 반응도 있다.안 위원장 나도 의아하다. 추측을 해 볼 뿐이다. 이학수 부회장에게 초점을 맞춘 기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금창태 사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고 학연으로도 맺어져 있고, 그걸 떠나서 당시 삼성 홍보팀이 이학수 부회장 바로 밑에 있었다. 홍보팀으로서는 직속상관에 대한 비판기사가 좀 민감하고 껄끄러울 수 있었을 것 같다. 그 전엔 담당 기자나 데스크에게만 전화를 했는데, 이번은 금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게까지 전화를 하고, 삼성 홍보실 실무자들이 아니라 최고 책임자가 나섰다. 이런 것들이 결합된 게 아닌가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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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이 언론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이미 정치권력을 능가했다. 광고와 돈 앞에서 언론의 독립성은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2일 삼성 본관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모습. |
다른 재벌들도 보도와 관련해 언론에 로비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삼성과 다른 재벌들의 차이점은 어떤 게 있는가.이철현 기자
극단적인 비유로, 다른 기업이 부엌칼 수준이라면 삼성은 ‘초정밀 레이저유도형 중성자탄’이다. 보통 기업에선 사안이 발생하면 급박하게 협조를 요구한다. 삼성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분히 접근한다. 아무 일이 없을 때도 연락을 한다. 인간적인 관계를 쌓고 심리적 방어기제를 없애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다. 그 동안 그 쪽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밀하게 조사한다. 나의 모든 인맥과 혈연을 파악한 완벽한 리스트를 갖추고 있다. 사건이 터지면 10년 전에 헤어져 연락도 안 되던 고등학교 동창에게 연락이 온다. 또 같은 광고라도 삼성의 광고 단가는 다른 재벌보다 크다. 행사 등의 협찬, 후원 액수도 크다. 삼성과 불편해지면 안 좋다는 걸 경영진들에게 분명히 각인시켜준다. 경영진은 기자의 인사권을 갖고 있다. 발행인이 공공연히 ‘우리가 어려울 때 기댈 곳은 삼성밖에 없다’고 얘기할 때, 그 사람은 삼성 기사 쓰지 말란 말을 구체적으로 하진 않지만, 피고용인으로서 기자는 그 말을 압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독자들의 성원이 우리의 힘지금까지 여러 차례 협상이 있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교섭 전망을 어떻게 예상하는가.안 위원장 회사도 사태가 장기화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처음에는 노사 갈등으로 시작했는데, 언론과 시민들의 조명을 받으면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해결 과정도 그에 걸맞게 마무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측도 그 점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야만 「시사저널」이 재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이철현 기자 「시사저널」 기자라서 자랑스럽다는 감정을 이번에 독자들 덕분에 느끼게 됐다. 그동안 모아놓은 책들을 보여주고, ‘짝퉁 시사저널’에 대해 항의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다. 기자 생활을 막 하면 안 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안 위원장 그간 독자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결호를 내지 않으려고 계속 기사를 쓰면서 협상했지만, 굉장히 추상적인 생각이었다. 근데 ‘짝퉁’이 나오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니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시사저널」 독자들은 독자 편지도 많지 않았고, 잡지에 개입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게 없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에 열렬한 반응을 보내주고 계셔서 감사하는 맘이 사실 많다. 우리가 해온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해 주시고 있다. 시사모(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번져가는 걸 보면 기대 이상이다. 후원금 모금이나 ‘진품 시사저널’ 예약운동 등 여러 운동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 다른 분들도 작은 힘을 보태주시면 더 감사하겠다(웃음).
시사저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시사모) : 시사저널 사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모임. 고종석 씨, 강명구 교수, 손석희 아나운서 등 언론계 인사와 시사저널 독자 등 1500여 명이 가입해 있다. http://www.sisalove.com시사저널 거리편집국 : 파업 중인 기자들의 글과 기사를 볼 수 있다. http://blog.daum.net/streetsisajournal기자로 산다는 것 : 「시사저널」 전현직 기자들의 체험담을 담은 책. 기자로서의 보람과 고충, 에피소드 등이 녹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