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에서 비정규직으로 산다는 것

외환위기 이후 10년 차가 되는 2007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지난 10년 동안 ‘보이지 않는 전쟁’ 이라고 불리는 세계화는 노동자에게 2년짜리 시한부 직장을 선사함으로써 그들을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차가 되는 2007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직 노동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0년 동안 ‘보이지 않는 전쟁’ 이라고 불리는 세계화는 노동자에게 2년짜리 시한부 직장을 선사함으로써 그들을 낙동강 오리알로 전락시켰다. 한덕수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2월 23일 정례브리핑에서 “노동자 고용상황은 무엇보다 취업자 수 증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최근 경제활동의 주력군인 20대~40대에서 비경제활동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상태” 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감소한 비경제 활동인구가 당장의 생계를 위해 단기적인 비정규직으로 스스로를 내던진 것이라면 이것을 과연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의 마이너리티’라고 불리는 850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결코 우리 사회의 극소수가 아니다. 비정규직 보호법안, 왜 악법인가? 2년 넘게 끌어오던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이 지난해 11월 30일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2007년 7월부터 종업원 300명 이상을 채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 법안에 따라 비정규직 보호 대책들을 시행하게 된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가장 큰 변화는 비정규직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들이 2년 이상 근무했을 경우 사업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할 의무를 갖는다는 점이다. 또 이 법안에 따르면 정규직과 ‘같은 작업환경’ 에서 ‘같은 노동강도’ 로 일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을 지급받을 권리가 있다. 만약 합리적 차등대우를 이유로 임금격차가 발생할 시에는 사용자 측이 그 원인에 대해 해명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권리 실현을 뒷받침하는 보완적 규정을 함께 두고 있다. 그러나 법안의 본래 목적과는 반대로 사용자들은 ‘기간제 사유제한’ 을 악용하여 사용기간 2년이 만료되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방적으로 해고함으로써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파견근로자들의 계약기간 2년이 지났을 때 사용자는 고용의무만 가질 뿐, 그것을 어긴다고 해도 형사상 책임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며 공공부문 비정규대책까지 발표한 정부산하 공공기관들이 앞장서서 외주위탁, 계약해지를 진행시키며 비정규직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실정이다. 노동계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이 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수직적인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의 말에 따르면 서울대병원 노조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사간의 긴밀한 협의로 이루어진 ‘정규직화’ 합의마저 정부의 대책 앞에 무력화 되고 있는 현실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강제로 가능하게 하는 법률적인 장치는 없다. 또한 계약기간이 짧은 비정규직들이 노조활동을 통해 그들의 권리를 되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일방적인 계약해지통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학내 비정규직 관련 갈등사(史) 이렇듯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통상적으로 낮은 복지혜택과 임금수준을 감내해야 한다. 이에 따른 생계 위협과 상대적 박탈감은 비정규직들로 하여금 파업이라는 선택을 하게끔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는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선 2000년 2월에 시설노조 파업사건이 일어났다. 95년말 부터 서울대학교는 용역화를 통해 시설 관리 노동자들의 수를 줄이려 했고, 이에 따라 경쟁입찰을 통해 용역회사를 선정했다. 그리고 최저가를 써 냄으로써 낙찰에 성공한 용역회사는 이윤을 위해 시설 관리 노동자들의 임금을 계속 삭감해 나갔다. 이에 생계의 위협을 느낀 서울대 시설관리 노동조합이 공동파업을 이끌어내기 위한 조합원 투표를 실시했고 이것이 가결됨에 따라 40여 일에 걸친 파업이 일어났다. 그 기간 동안 노조는 용역회사와 교섭을 시도하고자 하였으나 본부가 거부함에 따라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5월 25일 시설 관리 노동자와 학생들은 본부 점검 농성에 들어갔고 이후 어렵게 노사합의안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한편 2002년에는 관악사 노조의 장기 파업이 있었다. 관악사 노조의 주된 요구사항은 ‘용역화 금지’였다. 노조 측은 직원 취업 규칙에 용역화 금지와 관련된 조항을 넣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관악사측이 이에 거부의사를 표명함에 따라 파업은 장기화됐다. 당시 노조는 용역화가 임시직, 계약직의 형태를 띰으로써 이로 인해 발생 할 수 있는 고용 불안, 그리고 이에 따른 직원들사이의 위화감을 들어 용역화 금지를 주장했다.이러한 두 파업의 공통점은 비정규직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제시했다는 데 있다. 보통 1~2년 단위로 체결되는 계약이 필연적으로 낳는 고용 불안, 저임금을 비롯한 기타 차별 대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것이다.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현재에도 파업 등의 분규가 발생할 가능성은 농후하다.서울대 노동자의 50%가 비정규직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2006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분석’ 에 따르면 국공립대 중에서 서울대(2098명)의 비정규직 고용이 가장 많았으며, 그 수치는 2위인 부경대·부산대(1546명)보다 매우 높은 수치이다. 비정규직 가운데서는 시간강사(1313명), 경비·청소(337명), 사무보조원(159명)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2006년판 서울대학교 통계연표를 참조하면 전임교원과 분야별 정직원의 수가 10년전과 대동소이한 것에 비해 시간강사를 비롯해 위에서 언급한 대표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2배 이상씩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종강 소장은 “정부 산하 기관의 경우 인건비 비율이 높아지면 경영 평가상 불리한 여건에 해당하지만, 동일한 사업을 외주화하면 사업비 비율이 높아져 경영평가상 유리한 조건을 갖게 되기 때문에 경영자는 인건비 비율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늘리거나 외주화 할 수밖에 없다” 고 지적한다. 즉,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영’ 이 공공성을 담보해야하는 국립대에까지 여과 없이 도입되고 있기 때문에, 학내에서 비정규직이 대량양산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번 법안 통과로 인해 서울대 내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타 공공기관들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역시 매년 비정규직 중 그나마 재계약 고용의무의 강도가 약한 파견근로자들을 대거 고용하여 외주화 비율을 점점 높여가고 있다. 서울대노조측의 말에 따르면, 비정규직들은 정규직 임금의 40%를 받고, 교내에서 상용되는 트럭 및 버스 이용료를 더 많이 내며 1~2년의 단기계약으로 고용이 불안정한 부분 등에서 차별적 대우가 드러난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대 내의 비정규직 직종별 노동환경과 처우 등이 기록된 자료에서 주목할 것은 학내 비정규직의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강사가 여타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상당히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는 점이다. 시설관리나 사무보조분야의 노동자들은 그들이 지급받는 임금의 출처가 기성회비, 산학 협력비, 간접연구경비 등으로 매우 세분화되어 소속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재계약방법이라든지 계약기간, 근로시간 등에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시간강사 같은 경우는 정·조교수와 동일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한달에 50만원정도의 저임금을 받고 있다. 물론 노동시간대비 임금으로 계산하면 타 직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는 시급이 높은 편이지만, 전임강사나 조교수의 임금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또한 계약기간도 6개월로 비정규직중에 가장 짧고 연금이나 퇴직금, 건강보험 등도 전혀 제공받지 못한다. 여인혁(언어06)씨는 “국립대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놀랐고, 교수님들보다 더 열의를 갖고 가르쳐주시는 강사분들이 그렇게 낮은 임금에 우리를 가르치시는지 몰랐다” 고 한다. 실태조사자료를 살펴보면, 서울대 내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학외의 노동자들에 비해 일정수준의 권리는 보장받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해 준 익명의 경비원도 “노조랑 본부가 잘 합의보고 있어서 우린 걱정하지 않는다”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비쳤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서울대노조가 자신들의 관할하에 있는 비정규직이 300여명이라고 밝힌 저이다. 이 통계에서는 시간강사들이 제외되어 시간강사들이 자체적으로 노조활동을 하지 않으면, 처우 개선 등의 권리를 주장할 통로가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 경제 시간에는 ‘인간의 무한한 욕구에 비해 현존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니 효율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고 가르친다. 현재 비정규직을 늘려나가고 있는 본부의 행동은 한정된 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장기적 전망은 어느 누구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증가는 노동비용을 줄임으로써 단기적 이익을 확보하는 데 기여할지도 모르지만, 경영상의 단기적 이익이 사회 전체의 이익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간의 경쟁을 통해 노동력 품질을 향상시킨다”는 ‘노동유연성’은 또 다른 문제다. 단기적 효용을 위해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고통받아야 한다면, 이것이 과연 효율적인 행위일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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