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먼 당신, 대한민국

“7월 17일은 제헌절이죠.10월 9일은?” “음…….한글날인가?” “어허,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서 한 번에 붙겠어?” 긴장이 감도는 귀화시험장, 시험지 넘기는 소리도 조심스럽다.매주 수, 목요일 아침, 과천정부청사 로비는 귀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지난 2월 21일 수요일 아침 9시 반, 80여명의 사람들이 긴장한 얼굴로 시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7월 17일은 제헌절이죠. 10월 9일은?” “음……. 한글날인가?” “어허,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서 한 번에 붙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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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감도는 귀화시험장, 시험지 넘기는 소리도 조심스럽다.

매주 수, 목요일 아침, 과천정부청사 로비는 귀화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지난 2월 21일 수요일 아침 9시 반, 80여명의 사람들이 긴장한 얼굴로 시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몇몇 신청자들은 인터넷에서 구했다는 예상 문제지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중국에서 왔다는 한경(가명) 씨는 한국 국적을 가진 어머니의 초청을 받아 귀화 시험을 결심하게 된 케이스. 그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여기 오니까 사람들이 뭘 보고 있더라”며 옆 사람에게 빌린 프린트를 보여 주었다. 손때가 묻어 너덜너덜한 종이에는 애국가 가사와 국사 연표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이 날 시험을 치르는 사람들은 총 89명, 주로 중국 동포 2세들이다. 정각 10시가 되자 귀화 신청자들은 법무부 사무관의 안내에 따라 지하 1층에 마련된 시험장으로 향했다. 동행한 가족의 격려를 뒤로 한 채 시험장에 들어서는 이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하기까지 하다. 급증하는 귀화 신청, 중국 출신이 가장 많아 90년대 초반만 해도 귀화신청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법무부 보도자료에 의하면 1993년에 187건에 불과하던 귀화 접수건수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급증, 2005년에는 2만여 건에 이르렀다. 전체 귀화자들을 원 국적별로 살펴보면 중국 출신이 가장 많으며, 그 다음은 필리핀, 베트남, 몽골,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태국 등의 순이다. 특히 필리핀, 베트남 출신의 경우는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에 정착하게 된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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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에 의한 국적취득은 일반귀화, 간이귀화, 특별귀화의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일반 귀화의 경우, 한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한 ‘순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며 3,000만원 이상의 재산 및 국어 능력 등의 기본 소양을 갖춰야 한다. 외국 국적을 갖고 있으나 혈통상으로 한 핏줄인 재외동포나 결혼으로 인해 이주하게 된 경우는 간이귀화의 형태로 국적을 취득하게 된다. 특히 국제 결혼자의 경우, 2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이들에게 신청 자격이 주어지며 필기시험은 면제된다. 특별귀화는 대한민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 국가 유공자 등에게 해당된다. 험난한 ‘귀화고시’, 재수·삼수도 부지기수기본적인 귀화 요건을 충족했다고 해서 곧바로 한국 국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종 관문인 귀화시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귀화시험은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의 2단계로 나뉜다.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국어, 국사지식 등이 출제되는 필기시험은 주·객관식 20문제로, 60점 이상을 받아야 통과할 수 있다. 면접에서는 주로 국적 취득을 원하는 이유, 귀화 이후의 계획 등에 대한 간단한 질문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 필기시험이 만만하지는 않다. 시험마다 상당한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평균 합격률이 약 60%에 불과하다. 한 번 귀화신청을 했을 때 3번의 시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결코 쉽게 생각할 시험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귀화 준비자들은 귀화시험을 앞두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해 왔기 때문에 서류상으로나 일상 생활에서나 거의 한국인이나 다름없는 4·50대 중국동포들도 시험장에서 지나치게 긴장한 탓에 종종 필기시험에 불합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귀화한 중국 동포들의 모임인 귀한동포연합총회에서 ‘귀화예정자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문민 씨는 귀화시험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지적에 “이 정도 난이도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히려 귀화 준비자들이 준비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귀화를 결심하고도, 시험에 대해 너무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아요. 책 한 번 읽어보지 않고 시험을 치러 가는 사람도 있고. 문제가 국사와 국어 상식에 지나치게 치우친 경향이 있지만,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생활하려면 이 나라의 기본적인 정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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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예정자교육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문민 씨.

부족한 시험 정보에 애가 타는 귀화 준비자들

귀화를 준비하는 당사자 혹은 주변인들의 공통적인 의견 중 하나는 귀화 시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귀화 시험장에서 만난 한 중국 동포는 “귀화시험을 보게 될 딸이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하는지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정부 측에서 어느 정도의 범위를 제시해 주면 공부를 할 텐데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귀화가 목적이 아니라 시험이 목적인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작년 말에는 국내 최초의 귀화시험 참고서가 발간됐고, 온라인에서 유료로 귀화예상문제를 제공하는 한국귀화시험센터(http://www.koreanschool.co.kr)의 이용건수도 한 달에 수십 건에 달한다. 그러나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이 전혀 나와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정보들은 귀화 희망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측면도 있다. 문민 씨는 귀화 시험보다는 일정 기간 교육을 이수하는 프로그램이 차라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험이라는 경직된 제도로 국적 취득을 결정하기 보다는, 사전에 한국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생활 교육을 실시하는 등 귀화를 계획하는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잡한 귀화 절차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기도 귀화 시험에 실패한 후 가족과 생이별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중국동포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A씨는 중국 동포 2세로, 부모가 모두 한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는 중국에서 동포들이 많이 다니는 민족학교가 아닌 한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한국말이 다소 서툴다. 3번의 시험에 연이어 실패한 그는 결국, 다시 처음부터 귀화 신청 절차를 밟아야 했기 때문에 약 2년간 가족과 생이별한 상태로 중국에 남아있게 됐다. 지난 해 5월에는 아들의 귀화시험을 다른 한국인에게 부탁했던 한 중국인 모자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어머니가 한국말이 서툰 아들에게 한국 국적을 얻게 하기 위해 대리시험을 부탁한 것이었다. 중국으로 추방된 아들과 경찰에 구속된 어머니의 ‘코리안 드림’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시험 하나가 이산가족을 만들어 낸 셈이다. 복잡한 귀화 절차로 인해 종종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귀화 신청 후 시험을 치르기까지는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반을 기다려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대기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귀화 신청자들의 불만에 “신청 건수에 비해 부족한 인력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지방 14개 사무소에서 접수된 귀화 신청서는 법무부 국적난민과로 통합돼 심사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매주 수백 건의 귀화 업무를 처리하는 데 배치된 인력은 단 5명에 불과하다. 이 대기 기간 동안 신청자가 한국에 머무르는 경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된다. 부모가 한국 국적을 가진 동포 2세의 경우는 재외동포비자(F4)를 받아 입국하기 때문에 한국국제노동재단 등에서 교육을 받아 취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중국 동포의 경우 방문비자(F1)로 한국에 들어오기 때문에 ‘귀화 신청자’의 신분으로는 국내 취업이 불가능하다. 출입국관리소 측은 중국에 가서 기다리라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 놓고 있지만, 왕복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결국 시험을 치를 때까지 어떻게든 한국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들은 불법 취업의 길로 내몰려 벌금을 물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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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시험장 앞에서 명단을 확인하는 귀화 신청자 가족들. 한국 또한 그들에게 하나의 철통같은 문이다.

너무 급작스러운 귀화시험 통지도 귀화 신청자들에게는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중국 동포 허 모씨의 경우, 불과 일주일 전에 연락을 받는 바람에 웃돈을 주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시험 준비를 할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급하게 귀화시험을 치러 오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비행기표를 구하기 어려워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하던 일도 그만 두고 귀국했어요.” 귀화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는 것조차 어려운 이들도 있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거주했다 하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한국 국적 취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푸른시민연대의 이주영 활동가는 “외국인 노동자는 합법적으로 3년 동안만 한국에서 거주할 수 있다. 혼인이 아닌 경우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5년의 거주 기간과 재산 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귀화가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귀화인들어렵게 귀화에 성공한 사람들이라도 한국에서의 생활이 생각만큼 순탄하지는 않다. 작년 말, SBS스페셜 팀이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2%가 ‘귀화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답했을 만큼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단일민족의 신화는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이다. 2000년도에 한국으로 귀화한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다인종·다문화 국가가 돼야 하는데 아직까지 법적 차원에서 장애물이 너무 많고 사람들의 의식 또한 극단적으로 저돌적입니다. 이 곳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차별과 고통을 주고 있어요. 우리는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말에 얽매이지 말고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는 ‘다인종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을 찾아온 이방인들이 완전한 ‘한국인’이 되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일이다. 귀화 신청부터 국적 취득 이후까지, 그들은 아직도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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