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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1일 화요일
핸드폰 없는 일주일을 체험하는 첫날이다. 학교에 도착할 때 까지는 크게 불편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늘 버릇처럼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해 본다거나 문자함을 열어보곤 했기 때문에 무의식중에 텅 빈 주머니의 허전함을 느끼며 흠칫흠칫 놀라곤 한다. 아침에 허둥지둥 나오느라 손목시계를 차고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시간을 알 수 없어 약간은 답답하긴 하다. 사실 늘 지니고 있어 와서 그렇지 핸드폰이 없을 때에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앞으로의 일주일도 크게 불편함 없이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는 서울대저널 기획회의가 있었다. 기획회의는 늘 화요일 7시에 24동 110호에서 열린다. 말해 준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그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마 핸드폰이 없어서 약간 긴장하고 있어서 그랬나보다. 그런데 만약 회의시간이 7시 이후에 생각났다면 회의에 늦었을 뿐더러 연락할 방도가 없어 다른 기자들까지 답답해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소소한 일정들까지 핸드폰을 통해서 기억해왔다니, 아마 좀 더 복잡한 스케쥴을 소화해내야 하는 사람이 핸드폰이 없다면 크게 불편할 것이다.회의가 끝나고 뒤풀이까지 갔다가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집에 도착해서야 알았다. 그때껏 주무시지 않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어머니께서 “전화했었는데 왜 안받니. 늦으면 늦는다고 미리 연락을 해놔야 기다리지 않지.” 하며 걱정 섞인 꾸지람을하셨다. 앞으로 일주일동안 핸드폰을 안 쓸 계획이라고 말씀드리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3월 22일 수요일하마터면 늦잠을 잘 뻔했다. 핸드폰 알람이 울리지 않아 8시가 넘어서까지 잤던 것이다. 오늘의 첫 수업 시작은 10시. 어림잡아 한 시간 반가량 걸리는 통학시간을 생각할 때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도 못 먹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급하게 나오느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게 한둘이 아니다. 머리도 매만지지 못했고 시계도 못 차고 나왔다. 다행히 지갑이랑 오늘 필요한 교재, 필기도구는 빼먹지 않은 것 같다. 전철에 올라타니 이번에는 지각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시간이 궁금해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핸드폰을 홀깃홀깃 거리다가 그 사람이 쳐다보는 바람에 무안해졌다.다행히 수업에 늦지는 않았지만 배가 고파서 교수님 말씀이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점심시간에는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와 밥을 먹느라 핸드폰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고 편집실에 잠깐 들렀다가 아차차, 오늘이 이번 학기 첫 점모 날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침부터 볶아치듯 바삐 움직이느라 잊고 있었던 것이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최소한 오전에 공지문자라도 확인해볼 수 있었을 텐데. 게다가 말도 없이 약속을 못 지켰으니 사람들한테 미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약간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 또 무슨 약속이 있었는데 내가 기억 못하고 있는 게 있었나? 집에 가면서 계속 그 생각만 했다. 3월 23일 목요일학관 문방구에서 메모용 수첩을 하나 샀다. 여기에 그날그날의 스케줄과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도록 적어 놔야겠다. 월요일에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은 물품이 하나 있었는데 아직 배송이 되지 않고 있다. 보통 택배가 도착할 때 확인전화가 걸려오는데, 오늘 도착한다면 어떻게 받지?? 직접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배송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어? 엊그제 출고 되서 오늘 아침에 발송됐네? 배송지를 과방으로 해 놓았는데, 언제쯤 도착할지 감이 안 잡혀 쉬는 시간마다 과방에 들렀다. 다행히 오후쯤에 직접 받아 볼 수 있었다.어제 친한 후배 한명이랑 같이 백화점에 가기로 했던 약속을 못 지켰었다. 내가 일방적으로취소한 약속이라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지만 전화를 걸기가 마땅치 않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 애의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로 했다. 아마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이었다면 편지를 써야 했겠지? 왠지 고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 하마터면 스터디 모임에 못갈 뻔했다. 시간은 6시인데, 장소가 어디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던 것이다. 문자 메시지 하나면 금방 알 수 있었을 텐데… 다시금 드는 생각은 핸드폰이 없다면 기억력이 참 좋아야 겠다는 것이다. 그게 안된다면 약속을 적게 하거나.집에 갈 때 차창 밖의 풍경이 참 좋았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사진으로 담아뒀을 텐데. 아쉬웠다.3월 25일 토요일우여곡절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 핸드폰 없이 지낸 첫날, 미아가 된 듯한 기분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불편하진 않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니까 시간을 모를 염려는 없고, 쓸데없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일이 없어 하던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오히려 나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더 불편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제 발표조 모임만 해도 그렇다. 수업시간을 거치지 않고서는 나와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핸드폰 공지 이외에 별도로 전달 수단을 마련해야 했다. 인터넷에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그닥 많은 수고가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핸드폰이 일상생활 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또 한번 느끼게 했다.주말이지만 다음주까지 제출하는 과제와 다음달 말에 보는 일본어능력시험을 대비해 구립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아마 이 순간에도 당장은 착신될 수 없는 전화와 문자가 드문드문 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받지도 않은 연락에서 나는 해방된 듯한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열람실에서, 전화가 왔는지 핸드폰을 쥐고 급하게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나는 안 그래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3월 27일 월요일오늘은 핸드폰 없이 지내는 마지막 날이다. 이제 완전히 적응해서 아침에는 알람시계소리에 잠을 깨고, 학교에 갈 때는 손목시계를 착용하며, 스케쥴 수첩에는 한 주간의 모든 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사실 핸드폰 없는 생활은 중학교 2학년 이후로 처음이었는데, 어쩐지 이사 가기 전 옛날 집에 되돌아가 본 것처럼 오래 전에 잊고 지낸 일들이 다시 일어난 듯했다. 오늘은 별 무리 없는 하루였다. 기억력이 예전보다 좋아진 걸까. 할 일들이 쏙쏙 떠올랐다. 앞으로 그냥 핸드폰 없이도 잘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일주일간 꺼 놓았던 핸드폰의 전원 스위치를 힘껏 눌렀다. 멈춰있던 맥박이 다시 뛰듯 액정 화면에 전원이 들어왔다. 과연 얼마나 많은 문자메시지와 부재중 전화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문자메시지는 대략, 그날그날 잡혀있던 약속의 상대방이 보낸 것들이나 택배 회사에서 보낸 것들, 광고 문자와 기상예보 문자 같은 것들이었다. 그동안 걸려왔던 전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수신자부담으로 보이는 발신번호가 몇몇 있었는데, 군대에 간 친구한테 걸려온 듯 했다. 전화를 받지 않은 나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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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드폰 없이 일주일 동안 지내보았다. 처음에는 꼭 세상과 격리된 것처럼 뭔가 불편하고 답답해서 불안했었지만, 이내 적응하고 잘 지내게 되었다. 이따금 문자 메시지가 도착할 때 의 짧은 진동이 느껴지곤 했지만 곧 없어졌고 오히려 핸드폰이 없으니 혼자서 책을 읽는다던가 뭔가 생각하고 있을 때에는 방해받는 느낌 없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핸드폰이 없었을 땐 어떻게 지냈는지가 상상이 안 갈 만큼 우리는 하루 종일 핸드폰을 쥐고 누르고 보고 있다. 아직 공식적으로 규명된 바 없지만 핸드폰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인체에 해를 끼친다고 하며, 11세 미만의 아동들이 핸드폰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경우 집중력과 학습력 장애를 일으킨다는 보고도 있다. 사실 우리는 핸드폰이 없을 때에도 일상생활을 전혀 무리 없이 잘 영위해왔다. 물론 핸드폰이 등장함으로서 삶이 좀 더 편리해 진 건 사실이지만, 스팸 문자와 이에 버금가는 별 의미 없는 문자메시지에 시달려야 하고 매달 만만치 않은 정보 이용료와 통화료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