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직선제 유지·직원 참여 결정

논란 끝에 서울대 총장 선거가 현행 직선제 유지로 결정됐다. 이와 함께 1인 2표제가 1인 1표제로 변화했고 직원들의 참여도 가능해졌다. 현행 서울대 총장 선거는 50명의 총장후보선정위원회가 후보 5명을 압축하고 1인1표제로 투표하는 방식이다. 논란은 지난해 개정교육공무원법에 따라 서울대 총장선거를 관악구선거관리위원회가 관리·감독하게 된 데에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학내 최고 심의의결기구인 평의원회 의장 박성현(통계학과) 교수는 “선관위 관리는 교수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며, 이는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관악 선관위는 “선거활동 중의 위법행위도 단속하겠지만 투·개표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관위의 개입에 대한 교수들의 반발이 거듭됐고 평의원회를 중심으로 간선제 전환 움직임이 일어났다. 평의원회가 교수 9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간선제 전환에 절반이 넘는 558명이 찬성했다. 그러나 교수 일각에서 설문조사가 간선제를 유도하는 식으로 편파적이었고, 평의원회가 제대로 된 공청회나 여론 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간선제로 전환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평의원회는 3월 22일 본회의에서 직원참여를 허용하면서 기존의 직선제를 고수한다고 결정했다. 간선제로 바꾸기에는 선거까지 남은 기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함께 총장후보선정과 추천에 있어서 50명 가운데 직원과 학생에게 1명씩을 배정했다.
비정규직원은 여전히 참여 못해
직원 참여 비율이 4월 7일 평의원회 본회의에서 10%로 결정됐다. 이미 공무원직장협의회 측에서는 “직원 참여를 인정해줘 고맙게 생각하며 전국 국·공립대 평균 수준인 10% 정도를 마지노선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교수 1700여 명이 투표할 경우 직원들은 170여 명 정도가 투표하게 되는 것이다. 박 의장은 “직원들이 선거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캐스팅 보트)은 하지 않도록 논의했다”며 “학교는 교육·연구가 중심인 만큼 관심이 많고 판단력이 높은 교수가 가장 비율이 많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의 참여 비율이 적정수준으로 결정됐지만 다른 과제가 남아있다. 민교협 서울대지회장 최갑수(서양사학과) 교수는 “공무원직장협의회(6급 이하 공무원) 외에도 대학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등 다른 직원들도 많다”며 “이들이 조직되어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학생들도 투표할 수 있을까?
또한 현 제도에서 학생 1명, 교직원 1명씩 총장후보선정위에 들어갈 수 있지만 직접 투표권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학생들이 직접 투표하는 것보다는 총장후보선위에 참여하는 숫자를 늘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최 교수는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해서 본부와의 공식적인 의사소통 채널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SUPRISE 선본은 ‘정책간담회’를 통해 학생들이 총장선거에 참여하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낸 바 있다.

한편 스누라이프에서 세토(필명)는 “총장이 교직원의 대표가 아니라 학교 전체의 대표라면, 당연히 학생에게도 일정부분 선출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총장 선거의 학생 참여를 주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만약 학생들에게 몇 표가 주어진다 해도 과연 그 표를 던지는 주체가 누가 되느냐를 두고 말이 많을 것이다’라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는 의견도 있었다.
차기 선거제도, 간선제? 직선제?
평의원회 측은 차기 선거를 간선제로 바꾸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다. 사견임을 전제로 박 교수는 “직선제에서는 세계적인 안목과 비전을 갖춘 총장을 뽑기가 어렵다”며 외부 인사의 초빙이나 영입이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학내 구성원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보장하는 강력한 정통성을 바탕으로 총장이 의제 설정을 할 수 있다”며 오히려 “현 제도는 사실상 간선제가 가미된 직선제인데 외부 영입 등이 보완돼 직선제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실제 직선제로 치러진 과거 선거에서는 경기고와 비경기고 출신으로 나뉘는 등 학연, 지연, 학과에 따라 투표 행태가 나뉘기도 했다. 그러나 한 직원은 “예전에는 많이 나뉘었지만 현재는 많이 희석된 상태”라고 말했다. 간선제로 바뀔 경우에는 교육부의 입김이 강해져 사실상 임명제가 될 수 있으며, 총장을 선정하는 단체의 구성을 둘러싸고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다른 학교, 다른 나라는 이렇게
타 국·공립대학에서는 학생과 직원의 참여와 관련하여 훨씬 심한 논란을 겪었다. 2003년 경상대에서는 총장선거 과정에서 직원들이 실력행사 끝에 최초로 직원과 학생 참여를 얻어냈다. 공무원직장협의회장 최충림(교수학습개발센터) 씨는 “경상대의 경우 직원과 학생 참여를 통해 선출했기에 총장에 힘이 더욱 실릴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현재 대부분의 국·공립대에서는 직원의 참여를 인정했으며 학생들의 참여도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상태다.
국가별로 총장선거 방식은 다양하다. 미국의 경우 이사회·교수·학생·동창회로 구성된 ‘총·학장선임위원회’에서 보통 반 년가량 준비 후, 후보의 대외활동 경력과 단과대학을 어느 정도 성장시켰는지를 근거로 선출한다. 독일은 Rektor와 President로 나뉘어 있다. 전자는 교수, 후자는 정계·재계·행정계의 인사 중에 선출한다. 총장선출준비위원회와 대학평의원회에서 총장을 선출하며 교수 6명과 학생·연구·비연구직원 각각 1명씩으로 구성된다. 이후 준비위와 교육부가 후보자를 3명으로 압축하여 평의원회가 간선제로 선출한다. 일본은 한국과 유사하게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교수들의 추천을 통해 후보가 선정되고 직선제로 선출한다. 그러나 대학 자체적으로 학장의 선임규정을 마련할 수 있고 학생들은 불신임권을 지닌다.

북유럽은 학생들이 반드시 참여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대학 자치가 가장 잘 되어 있어 총장은 장기적인 발전을 기획하는 데에 주력한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박노자(한국학) 교수는 “북유럽 총장은 직선으로 뽑히며 대부분 비연구직원과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고, 직원 1표는 4-5명의 학생 표와 비슷한 비중”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학생들의 총장 선거 참여의 당위성을 강하게 주장했다.“나는 항상 학생들의 총장 선거 참여를 주장해왔다.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없다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대학의사결정의 민주화 목소리 높아지나
한편 총장 선거를 넘어서 대학의사결정 과정 전반에 대한 구성원 참여 확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평의원회는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이 수렴되고 각종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대학의 의회’다. 최 교수는 평의원회가 “임의 기구인 교수협의회보다 강한 목소리를 내고 학내 구성원들의 의사를 담아 낼 수 있는 대의기구가 되어야 한다”며 평의원회의 활성화, 민주화와 함께 평의원회의 권한 증대를 강조했다. 또한 최충림 씨는 “교육·학사는 교수들 중심으로 운영하더라도 관리·운영·행정·복지는 학생과 직원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터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성회비의 경우 학생이나 직원의 참여가 가능해진다면,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총장의 권한에 대해 최 교수는 “총장과 비교해서 교육부 권한이 지나치게 강하다”며 “총장이 사무나 시설 관료들에 대한 임명권도 없는 실정인데 총장의 권한이 보다 세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