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대한민국은 ‘덧글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포털의 뉴스를 비롯한 각종 게시물 아래, 각 정당의 게시판 글에, 미니홈피와 블로그에 덧글은 어김없이 따라붙는다. 온라인 공간의 덧글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시점은 월드컵 4강 진출과 ‘인터넷이 만든 대통령’ 노무현의 당선이 있던 2002년 무렵이다. 따지고 보면 태동한지 채 4년도 안 된 새로운 문화현상이 어느덧 일종의 ‘사회권력’으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같은 덧글의 급격한 팽창은 소위 ‘악플’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과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근 임수경씨 아들의 죽음에 대해 악성 덧글을 단 네티즌들이 사법처리 된 사건을 계기로 쓰레기장 같은 인터넷 공간을 청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학내에서도 악플의 아픈 기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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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7월 2일자 스누나우 농활 관련 기사와 그에 달린 덧글들 |
악플로 인한 아픈 기억은 모 연예인의 심경 고백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 내에서도 학내 이슈와 관련한 여러 인터넷 게시판 논쟁에서 악플은 종종 문제가 되어왔다. 지난 2004년 7월 서울대 인터넷 뉴스 「스누나우」에는 농활대 철수와 관련한 기사들이 올라왔다. 서울대 농활대가 ‘아가씨, 아줌마’라는 농민의 발언을 성폭력으로 규정하여 철수를 결정했다는 외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 총학생회의 입장을 소개하며 왜곡된 부분을 정정하는 기사였다. 이런 일련의 기사에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개의 덧글이 달렸다. 서울대 농활대의 철수 결정을 비난하며 합리적 근거를 대지 않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글이 대다수였다. 심지어는 기사 작성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기자를 비난하는 덧글도 상당수였다. 당시 「스누나우」에 농활 관련 기사를 작성한 바 있는 웅조(산업공학 00)씨는 기사에 달린 덧글을 모두 확인했느냐는 질문에 “아마도 다 봤던 것 같다. 감정적 타격이 아주 크지는 않았다. 내가 옳게 썼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웅조 씨는 “그러나 나 같은 경우는 예외적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보통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공격적인 악플들이 많이 달리면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자 개인들이 상처를 많이 받는다. 게다가 위축되어 새로운 기사를 쓰기 어려워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악플은 소통의 통로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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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쥬이쌍스 홈페이지에 마련되어 있는 독자방명록 |
학내 여성주의자치언론인 「쥬이쌍스」 홈페이지의 게시물에는 덧글을 달 수 없다. 대신 독자 방명록이라는 별도의 공간에서만 「쥬이쌍스」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되어 있다. 덧글 없는 사이트, 덧글 없는 게시물을 상상하기 힘든 요즘에 왜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쥬이쌍스」 타찌 씨는 “인터넷이 물론 모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공간이긴 하지만, 덧글을 개방할 경우 의견 제안이 아니라 여성주의에 대해 막연히 부정적인 덧글이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며 덧글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오프라인에서 일대일로 대면한 상황에서 여성주의자로서 발언하면 대부분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 응한다. 논리가 무엇인지 들으려 하고, 적어도 욕설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익명의 온라인 공간에서는, 말을 무책임하게 쏟아낸다”며 “이는 무척 폭력적”이라고 지적했다. 덧글을 제한하는 것이 소통의 기회를 아예 차단해 버린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생산적인 논쟁 자체를 방해하는 악성 덧글을 방어할 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게시판을 통해 숙고한 후 책임 있는 글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음을 강조했다. 기술력으로 건전 덧글 선도하는 모범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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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 시스템 개편을 알리는 네이버의 공지 |
악플에 대한 대응은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술적 지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현재의 덧글 문화를 제안하고 견인한 각종 포털들은 악성 덧글을 봉쇄하기 위한 또 다른 기술적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네이버는 지난 7일 악성 덧글을 줄이고 합리적인 토론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자 덧글 시스템을 전면 개편한다고 발표했다. 임수경 씨 사건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어 네이버가 내 놓은 방안은 덧글에 제목달기, 덧글 분류, 이용자별 입력글을 검색할 수 있는 글자취 기능, 트랙백 서비스, 덧글 추천제 등이다. 덧글에 제목을 달고 입력하는 내용에 대한 분류(칭찬, 비판, 이의제기, 기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은 의견을 올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여유를 갖자는 취지라고 한다. 글자취는 본인과 다른 이용자들의 덧글 목록을 한 번에 볼 수 있어 어떤 유형의 글을 쓰는 사람인지 쉽게 파악하도록 한다. 트랙백 서비스는 뉴스 게시자의 기사와 덧글 작성자의 블로그를 클릭 한 번에 바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뉴스 혹은 게시판에 작성하는 덧글이 자신의 블로그에도 게재되도록 함으로써 다른 네티즌이 게시자를 확인할 수 있다. 덧글의 원격추적장치인 셈이다. 추천받은 수에 따라 덧글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덧글 추천제와 1인당 1일 게시물 개수를 10개로 제한하는 제도는 양질의 글을 작성하도록 유도한다. 포털 업계 1위인 네이버의 이와 같은 악플 퇴치 작전은 다른 업체에도 영향을 미쳐, 다음, 엠파스 등도 덧글 시스템 개편을 준비 중이다. 오프라인까지 이어지는 악플퇴치대작전 악성 덧글에 대한 고민은 온라인에서 머물지 않는다. 임수경 씨의 고소 사건과 친일작가 김완섭 씨가 지난해 인터넷에 공개한 ‘양심불량 대한민국, 독도는 일본에 돌려줘라!’라는 칼럼에 악플을 단 네티즌들을 고소한 사건을 비교해 보면 법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이 온라인의 덧글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임수경 씨의 경우와 달리 검찰은 김완섭 씨가 고소한 네티즌을 처벌하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검찰 측은 “『친일파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을 쓴 김완섭 씨의 칼럼이 사회통념을 벗어난 발언으로 네티즌들을 자극했다”며 이를 처벌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같은 악플을 두고 검찰이 법적 해석과 분석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임수경 씨 사건을 통해 법은 개인의 인격에 상처를 입히는 악성 덧글에 법적 제재를 가할 것임을 명백히 선언했지만, 김완섭 씨 사건에서는 아직 그 처벌의 기준을 명확히 하지 못했음을 드러냈다. 한편 중앙선관위는 오는 5월 31일 지방선거에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제도는 네티즌이 인터넷 언론사나 포털사이트의 게시판·대화방 등에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견을 게재할 때 정부의 실명인증을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받도록 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이뤄질 수 있는 정당과 후보자의 명예훼손과 인신공격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인터넷에 게재된 글이 선거법을 위반해도 그 주체를 찾을 수 없는 문제점을 보완하는 한편 사이버 공간을 선거운동의 유용한 장으로 만들자는 취지이기도 하다. 실명확인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인터넷 언론사에는 1천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네티즌들 역시 후보자를 비방하면 기존 선거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 허위사실 유포의 경우 최고 5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악플 퇴치 전략, 방향을 제대로 잡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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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정보학과 이재현 교수. “악플은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단절과 붕괴를 그대로 드러내는 현상이다.” |
악플은 분명 익명성, 비대면성을 이용해 상대에게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주고 생산적인 토론을 방해한다. 언론정보학과 이재현 교수는 “악플은 ‘주장, 반박, 인정 또는 재반박’이 끊임없이 지속되는 합리적인 대화가 존재하는 공적 담론 형성을 방해한다”고 악플의 폐해를 지적했다. 또한 “악플은 자기 주장만을 뱉어내고 남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욕설만 하고 논쟁을 끝내버린다”며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붕괴에서 비롯되는 것이자 그 현상 자체의 노출”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규제 일변도의 악플에 대한 대처가 과연 효과적인가, 나아가 바람직한가는 따로 짚어볼 문제이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중앙집권적 규제는 자칫 민주적인 가능성을 한껏 품고 있는 인터넷의 가능성 자체를 잠식해 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또한 “온라인 공간에 대한 기술적·법적 규율은 악플에 대처하고 나아가 근본적인 댓글문화 개선을 이루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악플로 대표되는 인터넷 문화의 문제점은 토론문화의 성숙도, 왜곡된 사회구조 등 사회전반의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어서 인터넷 공간에 대한 규제만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인터넷은 순전히 자율적인 공간으로 비치기 쉽지만, 사실 덧글 문화는 관련 업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틀 안에서 형성되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의 활동 영역 구분에 대한 인식이 미약했다. 한편, 악플은 인터넷 공간의 특유한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단절과 붕괴라는 사회 전반의 거시적·구조적 문제의 노출이다. 따라서 인터넷 공간만을 다른 사회 영역에서 떼어내 단죄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다 나은 덧글 문화, 인터넷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함에 있어 간과되어선 안 될 부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