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문민정부에서부터 김대중 국민의 정부, 노무현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한 맥락을 유지하는 보기 드문 정책이 있다. 그것은 1995년에 발표된 5.31 교육 개혁안, 그에 비롯해 근 10년간 유지돼온 교육정책 일련의 흐름이다. 5.31 교육 개혁안의 기본 골자는 ‘지식기반 사회’를 맞이해 정보화, 세계화라는 무한경쟁의 흐름 속에 살아남기 위해 교육 ‘개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는 “개방화, 정보화, 세계화의 문명사적 전화기”에 대응하자는 혁신적인 슬로건인 것이다. 돈 벌기 위한 대학, 떠나라!그러나 이 슬로건들의 화려함과 거창함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눈길들이 있다. 이 슬로건들은 자본의 논리가 교육을 침투할 것이고, 국가는 교육에서 손을 떼겠다는 속사정을 감추기 위한 화려한 포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슬로건 속에 시행돼 오고 있는 구체적 정책들, ‘개혁’을 위한 수단이 일반적 진보진영의 눈에는 오히려 ‘반동’에 가깝다.
| ###IMG_0### |
| 최순영 의원은 “현재 대학교육의 흐름이 공공성에서 벗어나 신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
그 핵에는 바로 5.31 교육 개혁안에서 비롯한 국립대법인화가 놓여 있다. 국립대법인화의 내용 역시 교육부를 포함한 지지자들을 통해 자율성 강화, 대학 쇄신으로 알려져 있다. 범국민교육연대 사무처장인 배태섭씨는 “법인화가 아니더라도 약간의 제도적 변화를 통해 대학에 필요한 자율성은 보장될 수 있다”며 “여기서 자율성은 재정적 측면에서의 자율이고, 이는 재정적 보조라는 권한의 상실을 의미 한다”고 덧붙였다. 재정적으로 독립하는 대학은 따라서 돈 벌 궁리, 지출 구조를 줄이는데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결국 대학이 선택하는 것은 경영 마인드다. 이는 대학 내 노동력의 불안정화, 등록금 인상은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기업의 논리가 대학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은 “산학협력을 빌미로 기업에서 담당해야 할 교육이 대학의 기초학문을 대체하는 최근의 흐름이 가장 적실한 사례”라며 “학문을 위한 연구비를 지원받는다는 명목 하에 대학 내 시스템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하는 꼴”이라 덧붙였다. 이에 따르면 대학은 학문을 위한 전당 보다는 기업 신입사원의 연수원 정도로 기능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돈 벌려고 마구 지었던 대학 돈 안 되니 구조조정 한다네 쉽게 말해 당장 돈 되는, 기업 유지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학문은 살아남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할 학문은 죽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학 내에서 학부제 도입, 대학 외에서 대학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 최순영 의원은 “지금의 대학구조조정 흐름에서도 산학협력의 폐해와 같은 맥락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정부가 구조조정을 감행함에 있어 지금 당장의 효율성이 있느냐 없느냐 만을 따지기 때문이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대학, 그리고 대학이 담보하는 학문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는 상관없이 대학의 구조조정은 일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추세인 것이다. 대학구조조정의 흐름은 97년 일정한 조건만 갖추면 누구나 대학을 세울 수 있는 대학설립준칙주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때 이후로 질적인 성장 없이 양적으로만 팽창한 대학을 이제 와서 줄이기 위해 정부가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배태섭씨는 “정부는 구조조정 이전에 대학설립준칙주의의 시행과 관련한 자숙의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학설립 자유주의와 다를 바 없었던 당시의 제도에 대해 일부에서는 공공적인 목적이 아니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학 재단의 로비에 교육부가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어 왔다. 당장의 학부대학 추진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
| ###IMG_1### |
| 지난 3월 20일 열린 관악사 콜로키움에서 정총장은 “국립대 법인화를 한다고 해서 등록금이 오르는 것이 아니다”며 “국가 보조금을 앞으로 더욱 받아낼 것이다”고 역설했다. |
대학 간에 이루어지는 무한 경쟁, 경쟁에서 진 대학의 무차별적 탈락과 같은 현실은 대학 안에서도 되풀이된다. 5.31 개혁안 이후 꾸준히 진행돼 온 각 대학의 광역화가 그것인데, 광역화 체제 내에서 실질적인 효용성을 금방 드러내지 않는 기초 학문은 학생들의 판단 하에 자동 탈락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뜨거운 이슈는 지금의 광역화 수준을 넘어선 전면 학부제 도입이다. 학부제가 도입되면 인문/사회과학 등을 비롯한 기초학문과 법학, 경영학, 치의학 등의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 이원화돼 전자는 학사 과정에 후자는 대학원 과정에 머무르게 된다. 학내 교육투쟁특별위원회 이정호(사회 03)씨는 “이 제도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고등학생들이 벌여야 했던 무한경쟁, 그로 인한 엄청난 사교육비, 고등학교 교육의 왜곡을 대학사회로까지 연장시키는 것”이라 주장했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려는 현실적인 이유가 취업임을 생각해 봤을 때 학부제 속에서 모든 대학생들의 관심은 전문대학원으로의 진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위에 전문대학원을 하나 더 세우는 것은 지금도 공고한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예상이다.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입장이 진보진영 내에 존재하기도 한다. 이들은 학벌주의와 대학서열화라는 현재의 문제보다는 과거 산업화시절 고도의 압축성장을 위해 마련되었던 백화점식 대학, 그리고 그 안에서 한 데 섞일 수 없는 기초학문과 전문 지식 혼합 체계의 유지라는 문제점에서 출발한다. 이원적인 학문이 학사과정에서 나열됨으로써 기본소양 없는 전문지식인이 배출되고, 모든 대학생은 그러한 전문지식인이 되기 위해 학사과정에서부터 경쟁의 장으로 몰린다는 것이다. 이런 아카데미즘의 위기 극복을 위해 학사과정에서는 기초학문을 통한 기본 소양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전문 지식을 새로 습득하기 위해서 혹은 기본 소양을 심화시키기 위해서 향후 대학원 진입을 결정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 ###IMG_2### |
| 정부의 WTO 교육개방 2차 양허한 제출과 함께 교육개방이 현실화되자 이를 우려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
양쪽의 팽팽한 논리 전개에 대해 최순영 의원은 “학부제 도입을 통한 아카데미즘의 위기 극복도 충분히 타당성 있지만, 현실에서 더욱 위기에 처해 있는 문제는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라며 “더욱 시급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이후 학부제 도입을 통한 건강한 아카데미즘의 확립”이 옳은 순서라고 주장했다. 교육개방 속 외국 교육 기관 그 의도 뻔해이처럼 시장 논리 속에 던져진 한국 교육, 그로 인한 무한 경쟁은 세계무대 속에서 다시 한 번 시험대 위에 올라져 있다. 5.31 교육 개혁안이 나온 지 햇수로 정확히 10년이 되는 지난 2005년 5월 31일, 정부는 WTO 교육개방 관련 양허안을 제출했고 지난 2월 8일 교육부는 발표 자료를 통해 최종 양허안 제출을 위한 의지를 표명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학교 정운찬 총장은 각종 공식적 자리에서 교육개방을 지지하는 의사를 강력히 밝혔다. 지난 3월 20일 서울대 기숙사에서 열린 콜로키움에서 정총장은 “한국의 고등 교육은 외국 고등 교육을 통해 충격이 필요한 상태”라며 “교육개방은 위기에 빠진 고등 교육의 경쟁력 강화에 충분한 자극제가 될 것”이라 덧붙였다. 그러나 교육개방을 통해 양질의 교육 집단이 들어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최순영 의원은 “순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세계화의 흐름인데 말 그대로 경쟁력 없는 우리나라에 양질의 교육이 들어올 리 만무이며 따라서 교육 개방을 통해 한국에 들어올 교육 기관들은 철저히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WTO 회원국 대부분이 교육 개방을 반대하는 가운데 영어권 나라인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만이 교육개방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것만 봐도 이는 자명한 것”이라 덧붙였다. 실제로 정부는 교육개방을 통해 들어온 외국 교육 기관에게 국내 교육 기관에게는 허용 하지 않는 영리 법인화를 예외적으로 승인해 줬다. 이는 국내 교육 기관이 경쟁에서 뒤지기 쉽다는 반발을 사게 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모든 교육 기관을 영리 법인화 하자는 주장에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공성과 자율성은 양립 가능한 것으로 파악돼야 이런 흐름은 대학이 탁월한 수입구조를 창출해내는 기업이 되길 강요하고 있다. 돈을 잘 벌 수 있는 효율성이 성과로 인정되고, 이 성과가 있어야만 대학은 모든 경쟁 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는 이 모든 상황을 시장의 논리에 떠맡긴 채, 방관하면서 자율성을 주었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국가의 방관과 이 결과로서 나타나는 교육 기회의 양극화는 교육 공공성의 심각한 훼손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관련해서는 교육부의 재정이 너무 빈약하다는 현실적인 논리들이 뒤따라 다닌다. 이에 대해 최순영 의원은 “이는 현실적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의지 문제”라며 “탈세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감사, 부실 사립 교육기관의 퇴출 등을 통해서 교육부 및 정부의 재정 확보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라 덧붙였다.
| ###IMG_3### |
| 통합 부산대 밀양캠퍼스 재학생들이 부산대 졸업장 수여, 등록금 인상 철회 등을 요구하며 무기한 수업 거부에 들어갔다. 지난 3월 2일 부산대-밀양대 통합으로 통합 부산대가 출범했음에도, 옛 밀양대에 재학 중이던 학생들에게 학교 측에서 이미 폐교된 ‘밀양대’ 졸업장을 수여한다고 하자 크게 반발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교육 공공성의 해석에 이견이 존재하기도 한다. 공공성 확보라는 기치 아래 요구 되는 일련의 정책들이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고 관료들의 입지를 지나치게 넓힌다는 것이다. 즉 공공성 확보는 국가주의 및 관료주의 폐해로 인한 고등 교육의 자율성 박탈과 동일시 될 수 있다는 견해다. 최순영 의원은 “이는 공공성과 자율성을 편리할 대로 선택하는 논리적 오류인데 자율성에는 재정뿐만이 아닌 교육 체계 전반의 자율성이 고려돼야 한다”며 “다만 대학 서열화나 학벌주의, 그로 인한 경쟁 심화를 부추기는 대학의 정책에만 제한적으로 국가가 개입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또한 오히려 지금 펼쳐지는 교육 정책들이야말로 더 국가주의적일 수 있는데, 국가가 재정을 무기 삼아 각 대학의 발전 방향을 수익성, 효율성이라는 측면으로 재편하는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배태섭씨는 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가 역할 강조 가운데 발생하는 국가주의 및 권위주의의 가능성에 대해 인정하며 “그렇기 때문에 공공성은 국가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교육 정책 내용 속에서 민중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이라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