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급중학 3학년에 진학한 찐런하오(金仁好)군은 처음으로 세계사를 배우게 되었다. 그가 배우는 교과서는 2003년에 새롭게 바뀐 역사 교육 과정 체계인 ‘역사과정표준(이하 과정표준)’에 따라 제작된 실험판 ‘세계역사 9년급 상’. 그가 사는 도시가 과정표준 실험지역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런하오가 배운 것은 제 4과, ‘아시아 봉건국가의 건립’. 일본의 다이카 개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던 런하오는 지도에 그려져 있는 한반도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지금 한국이 있는 이 한반도는 예전에는 중국 땅이었답니다.” 정치적 작업 + 역사 연구 = 동북공정?! 중국의 세계사 교과서에 더 이상 한국의 역사는 없다. 그렇지만 실제로 일반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분량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과정표준판 교과서를 배우는 학생들은 조선사가 빠진 대신 일본의 역사를 더 자세히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천 년동안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던 한국을 갑자기 세계사 교과서에서 삭제해야만 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한국의 역사가 빠진 런하오 군의 교과서를 보며 수년 전에 크게 이슈가 되었던 ‘동북공정’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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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발행된 중국근현대사, 세계역사 교과서 |
‘동북공정’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준말. 동북 변경지방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역 연구 프로젝트’이다. 한마디로 ‘동북공정’이란, 표면적으로는 남의 나라에서 남의 나라를, 특히 역사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지역을 연구하려는 계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사 연구 계획에 순수한 역사적 목적만이 아니라 정치 논리가 개입된 흔적이 언뜻언뜻 비친다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이란 기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곳은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으로, 바로 동북공정을 진두지휘하는 사령탑 역할을 하는 곳이다. 변강사지연구중심은 2004년 6월 작성한 ‘동북공정 개요’에서 연구원들이 가져야 할 자질을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런 과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동북공정’ 전문가위원회는 이 공정의 학술 연구에서 다섯 가지의 의식을 강화해야 한다. 첫째, 정치의식이다. 이 공정의 직접적인 목표는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 통일, 민족 단결, 변경 안정의 큰 목표로 시각을 넓혀야 한다.(…)”고구려, 유네스코 등재와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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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 초기의 수도, 오녀산성 유적 |
중국 동북 3성 지방의 역사와 문물을 연구하려는 목적을 갖고 시작된 동북공정. 그리고 그 지역 안에 있는 ‘남의 나라’였던 고구려. 이들의 관계는 처음부터 명확했었는지도 모른다. 예맥족의 나라 ‘고구려’는 동북공정의 무대가 되는 한족의 나라 ‘중국’과 공존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연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고구려’의 존재는 중국 안에서 차차 희미해져 갔다. 동북공정이 한창 진행되던 2004년 4월 20일,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1948년 정부수립 이전의 한국 고대사가 완전히 삭제되었다. 또한 그해 8월, 중국 지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정식 등재되면서 ‘역사’를 사이에 둔 한중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이러한 움직임을 둘러싼 중국 측의 의도가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것일 듯하다는 분석이 이어지자 정부 측에서는 ‘고구려연구재단’을 출범시켜 국가적으로 한민족의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민간 차원에서도 사이버 외교사절단 VANK 등이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를 대외에 알리고 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외교부 측의 대응은 의외로 미미했는데, 그것은 외교적 마찰을 피하고 문제를 조용하게 해결하기 위한, 이른바 ‘조용한 외교’라 불리는 외교 전략의 일환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조용한’ 태도는 곧 국민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하게 된다. 나는 서울의 한국인, 너는 베이징의 중국인 2004년 여름, 한국인씨 (당시 서울대 인문대 1학년)는 주한 중국대사관 근처를 지나가다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 순간 고구려 유적이 중국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황당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인씨는 고구려인이 우리의 조상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때까지 그렇게 배워왔으며, 역사적 ‘사실’은 결코 ‘수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3학년이 된 국인씨, 지금도 여전히 고구려 역사는 우리의 역사이며, 동북공정은 중국이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책략’이라고 생각한다. 동북공정 자체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언론에서 동북공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여러 번 접해 왔고, 그때마다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인씨의 중국인 친구이며 베이징대 인문학부 3학년인 중궈런(中國人) 경우, 한국인인 국인씨가 이 문제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는 동북공정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고구려’가 자신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학 시절에 고구려에 대해 잠깐 배웠으나 ‘고대 한반도에 세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고구려이다’ 정도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동북공정 또한 한국인 유학생 친구에게 ‘역사 연구 프로젝트’라고 하는 것 정도는 들은 적이 있지만, 그것의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다만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를 연구하는 프로젝트’ 정도로만 알고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베이징에 사는 그에게 동북 지방은 너무 멀게만 느껴질 뿐이다. 한중, 그리고 두 개의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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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문명탐원공정의 하나로 발굴작업이 진행 중인 허난성 신미시 신저촌 |
한국인씨와 중궈런씨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선 중국 내부의 철저한 ‘보안’에서 비롯된다. 중국에서 동북공정을 비롯한 서남공정, 중화문명탐원공정 등 역사 연구의 발굴 현장은 거의 외부인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한국을 포함한 외부 연구자들은 중국 측에서 제공하는 제한된 자료에만 접근할 수 있다. 외부인이 중국 문화재에 쉽게 접근하기 힘든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대 국사학과의 한 노교수는 광개토 대왕릉비에 접근하기 위해 홍콩과 베이징을 거쳐 엄청난 거리를 돌아가야 했던 1980년대 당시를 회고하며 쓴웃음지었다. “그러니 우리 나라에서 고구려사를 전공하기가 그만큼 힘들었지.” 중국에 개방 물결이 밀어닥친 90년대부터 외부인의 중국 여행은 이전과 비교해 매우 쉬워졌지만, 여전히 중국 내 문화재에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절차와 서류를 요구한다. 또한 그러한 과정을 통과했다 할지라도 중국 당국에 의해 제한적으로 공개된 유물 또는 유적만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그들 사이에는 ‘피해자’측과 ‘가해자’측이라는 입장 차이가 존재한다. 베이징대 학생 2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67%의 학생이 동북공정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인에게 동북공정은 조상의 역사를 침탈하려는 음모로 여겨지는 데 반해, 중국인에게 동북공정은 중국 정부에서 행하는 수많은 학술 연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궈런씨와 한국인씨는 ‘고구려에 대한 기억’ 자체가 너무나 틀리다. 7차 중등학교 국사 교육 과정에 따르면, 학생들은 ‘우리의 고대 국가 중 하나’로서 고구려의 정치, 경제, 풍속 등을 체계적으로 배우게 된다. 그러나 중국인의 경우는 어떨까. ‘과정표준’으로 교육 과정이 바뀌기 전의 체계인 ‘역사교학대강’에 따라 만들어진 ‘삼년제 초급중학교과서 세계역사’ 제 1책 제 10과 중 일부.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조선반도에 거주하였다. 기원 전후 조선반도의 북부를 통치하고 있던 국가는 고구려 노예제 국가였다. 후에 조선반도 서남부와 동남부에는 또 잇따라 백제, 신라 두 노예제 국가가 나타났다.(….)’ 이것이 중궈런씨가 고구려에 대해 배운 전부다. 그래서 고구려에 대한 인식 또한 사람마다 가지각색이다. 설문조사 결과 베이징대 학생 288명 중 40%의 학생이 고구려를 한반도 내의 한국 고대 국가라고 답했으며, 24%의 학생이 고구려는 고대 중국 지방 정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직 11%의 학생만이 한국인이 알고 있는 고구려의 모습과 같은 ‘지금의 중국 동북 지방을 점령했던 한국의 고대 국가 중 하나’라는 문항에 체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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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7일 고구려연구재단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 ‘중국의 역사교육, 그 실상과 의도’ |
史必歸情 – 역사는 정을 주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양씨와 같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고구려인들을 자기 나라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을 지칭하는 ‘가우리(고려)’라는 말에서도 드러난다. 그렇지만 ‘가우리’란 말은 얼마 안가 잊혀질 것이다. 앞으로의 한중관계는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라고 생각하는 런하오와, 그다지 자신이 없는 국사 과목을 ‘선택’하지 않고 따라서 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수많은 런하오 또래의 한국 아이들이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동요 가사처럼, 역사는 단지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그것을 연구하고 가꾸는 사람들에 의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는 ‘학문’이다. 그래서인가, 동북공정을 통해 차근차근 자신들의 역사적 논리를 세워나가는 그들의 움직임이 유난히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