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만 안 들었지 광주에서 무참히 시민군을 진압하던 군과 다를 바 없다” “불법폭력시위에 대한 정당한 법집행이다” 지난 행정대집행을 지켜 본 이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사태의 중심부에서도 대립은 마찬가지다. 대추리 주민들,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 측과 정부의 입장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국방부는 미군기지 이전이 국가 안보와 직결되고 한-미 간 협상과 국회의 비준을 거친 사업인 만큼 미군 기지 이전 관련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주민과 범대위 측은 사전에 주민 동의 없이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통보했으며, 이미 두세 차례 쫓겨난 주민들을 또 내쫓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photo1백만장자 주민은 있는가?행정대집행 이후 정부는 주민 측에 보상 문제를 다시 논의할 것을 제안했으나, 주민들은 미군 기지이전 자체의 재협상 혹은 재논의를 주장하면서 이를 거부했다. 정부는 이처럼 주민들의 보상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이 받은 보상내역이 처음부터 논란의 핵심이었던 것은 아니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5·4 행정대집행 이후, 국방장관이 ‘범대위 핵심 간부들은 백만장자’를 운운한 뒤 보상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과연 대추리 주민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는데도 더 많은 보상을 위해서 남아있는 것인가. 국방부는 토지 감정평가를 통해서 평당 15-18만원으로 보상했다고 주장했다. 대추리 주변의 평균 농지값이 20만 원 이상이라는 말에 비추어보면 시세를 어느 정도 반영했다. 그러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의 송상교 변호사는 “주민들이 끝까지 수용을 거부했는데도 국방부는 일방적으로 보상금을 공탁하고 등기를 넘겨갔다”며 “주민들이 수용 자체를 거부했기에 보상을 얼마나 받았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방부가 주민들에게 준 보상금은 땅값이 오르기 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비싸다’ ‘10억 이상 보상받은 주민이 21명이고, 8천만원정도 받은 주민이 가장 적게 받은 경우다’ 주요 언론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추리나 도두2리 주민의 60%가량이 자기 땅이 없는 소작농이다. 범대위 측에 따르면, 수용예정지 349만평 가운데 약 74만평 정도가 대추리 주민들의 땅이다. 현재 대추리에 남아 있는 주민들 상당수는 거액의 보상금을 챙겼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언론의 주장은 실제로 대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지주들의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세종대학교가 소속된 학교법인 대양학원은 소유지 30만 평을 국방부 측과 협의 매수했다. photo2농지는 사고파는 땅 그 이상의 것정부는 평택의 349만평을 수용하면서, 서산에 120만평의 대체 농지를 마련했다. 대체토지 면적은 수용토지 면적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추리는 주민들이 5·60년대에 맨손으로 갯벌을 간척해서 일군 농토다. 박정희 정권 시절, 아산만을 막으면서 생긴 땅을 순전히 맨손으로 가꿨다. 소금기가 빠지기까지 10년, 20년을 기다리면서 만들어낸 땅은 가뭄도 없고 물이 잘 집나오며 홍수 날 걱정도 없는, 천혜의 농지가 됐다. 그러나 정부가 서산에 마련한 땅은 자갈과 바위가 많고, 안개일수가 많으며 집중호우 시 침수되는 일이 빈번하다. 주민들에게 수십 년간 정성스럽게 가꿔온 땅은 사고팔거나 대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신적인 보상은 이뤄졌나모든 농촌이 그러하듯이 대추리 주민들도 대부분 고령이다. 이들이 농사 이외의 일을 배우거나 취업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정부는 농산물 가격 억제를 통해 저임금을 달성했다. 최근에는 쌀 개방까지 결정되는 등 농촌은 줄곧 국가정책의 손쉬운 돌파구였다. 이번에도 정부는 대추리 노인들이 농사를 포기할 때 필요한 생계대책을 적절하게 마련하지 않았다.평화 운동가 해밀 씨는 정부가 보상에서 빠뜨린 점을 지적했다. “정부의 보상체계라는 것이 너무 허술합니다. 공시지가에 의해 보상할 뿐이죠. 농지를 잃은 심리적인 허탈감에 대해선 아무런 배려가 없어요.” 외국에는 공동체가 파괴될 경우 정신적 보상의 차원에서 다른 공동체(마을)를 조성해서 이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추리 주민들에 대한 보상은 땅값 제공, 서산에 대체 농지 제공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공동체의 파괴에 대한 보상은 고려되지 않았다. 송 변호사는 주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땅의 경제적 가치가 아니라고 말한다. “주민들에게는 경제적 가치 얼마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죠. 정부가 이러한 점을 진정으로 고려했다면 보상금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보장해 주는 방법을 찾았어야 합니다.”photo3평택 주민만의 일이다?대추리 사태는 마치 지역 이기주의처럼 보이고 있다. 주민들은 ‘보상금 더 받으려고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반미주의자들의 미군 반대’에 주민들이 이용당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추리 문제는 주한 미군의 기지 이전 사업에서 촉발된 것이다. 주한 미군은 그 성격이 대북 방어에서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실제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2003년 3월16일 대북방어는 한국이 부담한다고 말했다. 미군이 맡고 있던 한국 내 10대 군사임무도 2008년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 미국이 수도권의 주한미군을 평택으로 집결시키는 데는 오산비행장과 평택항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이 전 세계 분쟁지역으로 가는데 매우 편리하고, 북한의 장사정포 위협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된다.박 팀장은 “미군은 해·공군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고, 특히 주한미군 2사단은 2004년부터 대북 방어가 아니라 세계의 분쟁 지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변화 중”이라며 미군의 성격변화가 가져올 긴장상태를 경계했다. “(주한미군의) 무기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고 병력 운영이 보다 자유로워지면 평택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언제나 긴장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겁니다.” 특히 대만의 독립을 둘러싸고 중국과 이른바 ‘양안 분쟁’이 일어나서 미국이 이에 개입한다면 한국은 분쟁의 직접적인 지역이 될 수도 있다. 나토의 경우 전쟁이나 침략이 일어날 경우 공동 대처가 그 목적이지만,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는 주한미군은 방어보다는 공세적인 성격을 띨 것이다. 미군이 주둔하는 또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이러한 사례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서 국민적인 합의나 논의 없이 동의했다.photo4“미군기지이전 서둘 필요 없어”주민들과 범대위, 시민단체에서는 미군기지 이전 자체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국방부 측은 보상 문제를 논의 할 수는 있지만 재협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실제 미국과의 재협상 가능성은 열려 있다. 평택 미군기지이전의 근거는 ‘용산미군기지이전협정’과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인데, 협정 후 필요한 사정이 생길 경우 쌍방 합의로 조약을 개정하거나, 일방이 계약을 종료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되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협정 후 상황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일본의 경우만 해도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에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현지조사 등 신중하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미군기지 이전을 서둘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재협상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가 이전비용에 관한 심의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부지 매수비용만이 국회에서 승인되었을 뿐이다. 마스터플랜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설비용 등 대다수 이전 비용과 관련해서는 아직 심의, 승인되지 않고 있다. 이에 박 팀장은 “국회가 2004년에 비용이나 내역에 대해서 사후 보고받기로 하고 비준한 것인데 그 이후에 점검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photo5국민 대다수, “사회적 합의가 필요”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한겨레21」과 공동 기획한 여론조사에서 83.6%의 응답자가 ‘기지이전 협상에 대해 정확한 비용과 내역을 검증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편 응답자의 88%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다. 주한미군의 성격변화에 대한 논의나 합의가 부족했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그러나 청문회의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열린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정부와 여야 지도부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청문회가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고 국회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서울대저널』의 설문조사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대해 서울대학생의 61.3%가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후 실시해야 한다’고 답했다.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19.9%,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의 일환이므로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은 9.8%였다. ‘국가안보를 위해 조속히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은 6.2%에 그쳤다. 임대환(사회03) 민주노동당학생위원장은 사태 해결을 위해 사회적 협의체가 구성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총학이 빠진 것은 매우 안타깝지만, 학생위원회, 단대 학생회장, 자치단위를 포괄하는 서울대의 이름으로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운동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법대 인권 동아리 ‘사람세상’의 변준석(04) 씨도 “주한미군의 방어적 역할이 전략적 유연성으로 인해서 바뀌는 만큼 미군의 성격변화와 기지 이전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공청회를 열고 감사원에 정책감사를 요청하는 등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기지이전 협상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계속 지적할 것”이라며 “외교안보 분야는 내용도 어렵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힘든, 어쩔 수 없는 사항이라고 여기는 관행을 깰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 의원도 “전면폐기 하기는 어려우나 재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감축추세로 보아 평택기지는 과잉시설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점을 면밀히 살펴서 미군기지 면적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전 가능성도 검토해야 한다. 그래야만 평택사태를 합리적으로 풀 수 있다.”해밀 씨는 향후 대응에 대해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리력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평화를 바라는 외부 세력에게 계속해서 알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미선이 효순이의 죽음 앞에 10만이 모여서 부시의 간접적인 사과를 받아냈던 것처럼 사과와 재검토를 요구할 것이다. 이곳 어른들은 힘으로 역부족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제발로 걸어 나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