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드라마는 입양아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일랜드로 입양을 간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아일랜드’부터 ‘형수님은 열아홉’, ‘매직’, 그리고 한창 문제가 된 ‘왕꽃선녀님’까지. 이렇게 드라마에서 입양아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긍정적인 시선에서는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입양이 흥미로운 갈등의 소재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 만연해있는, 입양에 대한 ‘치우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준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조금’ 비틀어진 시선을 받고 있는 입양, 이에 대해 조명할 필요성에 따라 이번 호 인권 특집은 입양, 특히 국내 입양에 초점을 맞춰 진행되었다.50년간 변함없는 공식, “국내입양 < 해외입양”보건복지부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00년 사이의 전체입양(국내+해외)중, 국내 입양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40.3%에 이른다.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의 국내 입양 비율은 41.4%다. 이는 국내 입양 비율이 30%대를 전전하던 90년대, 30%도 훨씬 못 미치던 그 이전보다는 오른 수치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형편없다. 우리나라의 갈 곳 없는 아이들 절반도 우리 손으로 못 거두고, 남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말이다. ‘살만큼 사는’ 우리나라의 이러한 이상 현상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역사’와 ‘전통’ photo1우선 역사적으로 그 원인을 따져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입양이 법제화된 것은 1950년대 전쟁 혼혈고아들이 외국으로 입양되면서부터, 말하자면 해외입양이 공식적 입양의 시초였다. 이 때는 경제력이 약한 국가 차원에서도, 아이들을 국외로 내보내는 것이 국내에서 부양하는 것보다 손쉬운 방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정부에서는 국내 입양보다는 해외 입양에 ‘주력’했고,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입증된 88올림픽 이후에야 국내 입양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혈연과 족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국내 입양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동방사회복지회의 이성희 씨는 “우리나라는 자기 핏줄만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며 ‘남의 핏줄’에 대한 배타성 때문에 국내 입양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는 자신의 입양에는 물론 타 가정의 입양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준다. 드라마 ‘왕꽃선녀님’에서 문제가 된 ‘개구멍받이’, ‘근본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대사도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터다.그리고 ‘돈’입양에 있어서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경제적인 문제이다. 성인이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서구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결혼할 때까지, 혹은 결혼한 이후까지 부모가 자식을 책임지는 것이 일반화되어있다. 자식 양육은 곧 결코 만만치 않은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은 입양을 망설이던 부모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릴만한 문제이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입양을 포기하는 부모들도 많다.그렇다면 이러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없는가? 국내 입양을 활성화시켜야 할 시점에서, 이에 대해 정부가 마련한 대책은 없는가? 충분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있다. 입양 아동의 중ㆍ고등학교 수업료 및 입학금이 면제되며, 미숙아ㆍ조산아를 포함한 장애아동을 입양한 입양가정에는 월 50만원의 양육비와 연간 최대 120만원까지의 의료비를 지급한다. 그러나 이 2%이상 부족한 혜택도, 그나마 전체 국내입양 중 30%도 채 안되는 공개입양가정에만 해당된다. 입양가정이 입양아동에 대한 지원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입양기관의 입양사실 확인서를 제출해야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비밀입양? 공개입양! 그렇다면 여기에서 잠깐. 윗 문단의 ‘국내입양 중 30%도 채 안되는’ 공개입양에 대해서 짚어보자. 사실 이 공개입양이라는 화두는 우리나라의 대부분 입양가정의 고민거리다.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입양이 비공개적으로 이루어진다. 입양 가족 외의 타인은 물론 입양아에게도 될 수 있으면 입양 사실을 숨기려하며, 입양모가 입양아를 출산한 것처럼 가장하며 입양의 비밀을 계속 유지한다. 이는 입양부모가 그들의 가정 또는 그들의 입양아가 부정적인 사회 편견에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또 생부모에게 입양아의 애정과 충성심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불안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photo2그러나 이러한 비밀 입양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진다. 입양이라는 절차는 입양 부모, 친부모, 입양아라는 세 주체가 있을 때에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입양 사업은 이 세 주역이 각자 입양사업에서 원하는 것을 공평하게 수용해 줄때 비로소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비밀 입양은 그 자체로 입양부모 중심적인 성격을 지니며, 여기에서 입양아와 친부모의 권익은 무시된다. 친부모는 양육권은 포기했지만 자신과 뗄 수 없는 혈연적 관계를 가진 아동의 생사여부와 복지에 관해 알 수 있는 권리를 잃고, 입양아는 자신의 생물학적 혈통 및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개인의 존재적 욕구이자 권리를 박탈당한다.“…입양아의 입양 이전의 과거는 입양이 됨과 동시에 절단되고 잊혀진 것이 되므로, 입양아의 한 개인으로서의 지속감은 파열된다는 것이다..”(배태순, ‘현대사회에서의 입양의 이해와 입양의 성공’) ““…따라서 입양아는 자신이 타고난 유전적인 근원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어야만이 비로소 자신에 대한 정체감이 형성될 수 있게 된다.”(배태순, ‘국내입양 발전을 위한 입양부모 자조집단의 영향’)”우리에겐 아직 먼 그대, ‘선진국’이러한 우리나라의 입양 경향은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과는 판이하게 대비된다. 독일은 입양아 한 명 당 입양을 원하는 부모가 14쌍일 정도로 입양 ‘경쟁’이 치열한 나라다. 법제화된 것은 아니지만 완전공개입양(입양아가 입양된 후에도 입양부모, 입양아, 친부모가 지속적인 접촉을 가지며 관계 유지)이 정착화 되어 있다. 얼마 전 독일 슈뢰더 총리가 12살 러시아 여아를 입양한 사실이 독일 일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미국은 70년대 초까지는 폐쇄적인 입양실무를 수행해왔으나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인이 된 입양아들의 단체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등의 개선 노력으로, 현재는 공개입양이 일반화된 추세다.더 멀어 보이는, ‘입양 선진국’ 입양 절차와 수속에 있어서도 우리나라는 여타 선진국과는 많이 다르다. 대표적인 입양 선진국인 미국과 비교를 해보자.우리나라는 부부 생활 3년 이상, 입양 부모와 입양아와의 나이차는 50세 미만 입양 가정의 경제적 안정, 자녀의 수가 입양 아동을 포함하여 5명 이내일 것 등을 조건으로 삼고 있다. “입양을 원하는 양부모와는 2-3개월 동안 준비기간을 가져요. 그 기간 동안 개인적인 상담도 하고, 전체적인 공식교육은 1차례 하죠.” 홀트아동복지회 이현주 씨의 말이다. 입양에 대한 사후 서비스도 선진국에 비해 미미하다. 입양 후 6 개월 동안 아동이 잘 자라고 있는지, 자녀로서의 법적인 절차를 밟았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사실상 사후 서비스는 종료되는데, 그나마도 잘 시행되지 않고 있다.미국에서 입양을 하고자 할 때는, 우선 위에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기본조건을 모두 충족해야하고도 남아야 됨은 물론,(아이와의 나이차는 43세 미만으로 범위가 축소된다.) 입양 가정에게 입양을 허가하는 절차도 훨씬 더 엄격해진다.photo3우선 수속과정에 몇 년이 걸릴 정도로 입양 적합 여부를 따지고 입양 교육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그만큼 철저하게 조사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개별면담의 내용도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다. “부부 생활에 관한 사적인 얘기나,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아이에게 ‘네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아빠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등의 질문까지 한다고 해요.” 이현주 씨의 말에 따르면 그 밖에 지인들의 추천서 제출, 양부모의 신원조사와 가정 조사 -예를 들면, 가정에 소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한다던지-의 과정이 추가되고, 심지어는 입양부모의 정신과 상담 기록까지 요구된다고 하니, 입양가정의 신뢰성이 우리나라에서보다 몇 배 더 증폭됨을 알 수 있다.“사적인 것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향도 이유겠지만, 우선 우리나라는 입양을 원하는 가정의 절대적인 수가 너무 적어서 선진국처럼은 절차 수위를 못 높이죠.” 입양 수속 절차에 있어서의 허술함은 입양 실패 가능성의 수치를 밀어 올린다. 입양 실패는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남기고, 이는 가뜩이나 적은 국내 입양 수치를 깎아내린다. 또 하나의 악순환이다.발전으로 향하는 발자국이렇듯 아직은 여러 면에 있어 개발 도상 단계에 있는 국내 입양 수준.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입양은 그 동안 없었던, 특기할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입양에 대한, ‘입양 선진국’에 대한 희망을 엿볼 수 있다.2000년 10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국내 입양부모들 스스로에 의한 “제 1차 전국양부모대회”를 개최함으로써, 국내 최초 입양부모 자조집단인 ‘한국입양홍보회(MPAK)’는 그 존재의 선포와 함께 입양홍보 활동 및 입양사후서비스 제공 등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입양인, 입양부모들이 사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발전이죠. 그 전에는 상상도 못했을 변화입니다.” 동방사회복지회 이성희 씨의 말이다.얼마 전 폐지되었던 TV프로그램 ‘사랑의 위탁모’도 입양 발전에 공헌했다. 인기 여자 연예인들이 입양아동들의 위탁모로 지정되어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낸 이 프로그램은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이성희씨는 “프로그램이 가져오는 효과가 매우 컸다” 며 “특히 국내 입양의 경우에 공개입양 증가에 기여했고, 이로서 공개 입양을 한 입양 부모들끼리 단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그리고 최근, 입양의 날 제정 운동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입양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입양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국내 입양을 활성화하는 것이 입양의 날 제정의 의의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는 2004년 5월 ‘입양의 날 제정을 위한 걷기대회’를 개최했으며, 현재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민의 뜻을 모아 국회에 입법 청안할 예정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국회의원도 몇 분 있어서 청안은 순조롭게 진행될 듯합니다.” 홀트아동복지회 이현주 씨의 말이다.”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우리는 아이들이 국내에서 입양되기를 소망합니다.우리는 입양이 가족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받기를 소망합니다.우리는 입양아들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소망합니다.우리는 입양가정이 축복받기를 소망합니다.”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에 있는 ‘우리의 소망’이다. 여기서의 ‘우리’가 비단 입양아와 입양 가정만이, 그리고 입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수만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를 대변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대한다.* 이 기사에는 동방사회복지회 이성희 씨와 홀트아동복지회 이현주 씨와의 인터뷰가 상당 부분 녹아있습니다.
국내 입양 ‘바라보기’
요즘 TV드라마는 입양아들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아일랜드로 입양을 간 여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은 ‘아일랜드’부터 ‘형수님은 열아홉’, ‘매직’, 그리고 한창 문제가 된 ‘왕꽃선녀님’까지.이렇게 드라마에서 입양아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긍정적인 시선에서는 입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