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을 얘기하자. 1학기 종강이 다가오면 관악의 새내기들은 부쩍 선배를 접촉하게 될 기회가 많아진다. 1번이라도 농활을 같다온 재학생의 경우는 또다시 농활을 갈 것인지 아닌지 망설임 없이 결정을 내리지만, 첫 농활을 맞게 되는 1학년의 경우에는 이것저것 따질 것이 많다. 대학에 와서 처음 가지는 2달여 간의 방학의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는 쉬운 문제라고 할 수 없으리라. 고등학교까지의 짜여진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활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 어려운 문제다. 배낭여행을 떠난다. 계절 수업을 듣는다. 영어 회화 학원을 다닌다. 정답 없는 다양한 선택지에 농활이라는 선택지가 더해지는 것.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그 선택은 더욱 난감해진다. 어려움 속에서 농활을 선택한 학우들은 과·반에 할당된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사전 교양을 마치고, 9박 10일간의 농활을 마치고, 농활 정리 MT를 마치고, 농활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농촌의 현실에 대한 인지. 농활대 구성원들 간의 유대. 농촌 분들과의 인간적 관계. 농민 학생의 연대라는 의미에 대한 되물음. 지나친 규율에 대한 답답함. 점점 작아지고 있는 농활대 규모에 대한 아쉬움. 과연 작업에 도움이 되었는가 하는 의문. 분반활동에 대한 나름의 평가들. 농활은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학우들에게 여러 생각할 점들을 던진다. 문제점… 그 해결은…. 드러나는 문제점들에 대한 생각은 농활을 주체적으로 준비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 문제점들은 그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길게는 10여 년 동안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그러나 그 문제점들은 농활이라는 활동의 정당성을 위해서 지금까지 축소되고 있거나, 농활이라는 활동의 지속이라는 명분으로 뚜렷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농활대 자료집에 매번 명시되고 있는 문제점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농활대 역량의 문제로 돌릴 것인가? 농활대의 규모는 축소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적어도 관악에서는) 몇몇 전위적인 활동가들의 농활이 아닌 바에야 역량이 줄어든다는 것은 뻔한 스토리이다. 망설이다가는 이제까지의 성과들도 줄어들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농활 왜 가니? 농민학생연대활동은 농민들과 학생들간의 계층 간 연대이다. 농민과 학생이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협력하는 것.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을 이해하고 그 모순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것. 그것이 연대이다. 궁극적 목적이 농민과 학생의 연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대의 목적이 되는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 ‘사회의 진일보’가 농·학 연대를 있게 하는 것이다. 지금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농활이라는 하나의 사업에 집착하는 듯 보인다. 아니 농활에서 부수적으로 발생하는(혹은 이것이 진심일지도) 학생회 역량강화에 매혹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농활에 애착을 가지고 하고 있는 많은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각 농활대 마다 문제도 다르고, 활동하는 모습도 다르다. 하지만 대개의 분위기는 그렇다는 얘기다. 농활대의 인원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고, 농활에서 연대라는 의미는 일부 선배들과 몇몇 농민들과의 대화로 끝나기 십상이다. 왜 농활을 가느냐는 질문을 한다. 많은 학우들이 “농민과 연대하기 위해서 간다.”, 혹은 “농촌의 현실을 알아보고자 한다.” “내가 해보지 못한 체험을 해보고자 한다.” 등의 대답을 한다. 하지만 짧은 답이 나올 정도로 결정이 간단하지는 않다. 방학이라는 기간에서 다른 선택지들을 제쳐놓고 농활을 가는 것. 사람이 이성적인 동물인 이상 어떤 활동을 하겠다고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그 활동이 자신의 동기에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학생회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는 다음 대의 학생회를 운영할 인자를 조직하기 위해서, 농활에 애착이 있는 선배는 후배들에게도 그 경험을 물려주기 위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픈 학우는 경험을 위해서, 봉사에 많은 가치를 두는 학우는 봉사활동으로서. 자신의 동기를 가지고 9박10일의 일정에 참여하는 것. 그것이 현재 농활의 모습이다. 다양한 실천으로 농활의 의미를 되새기자. 90년대 초반부터 농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중 봉사활동들이 일간지 지면에 나타나거나 공중파를 타고 우리에게 전달된다..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있어온 의대나 약대 학생들이 가는 의활, 약활, 농촌의 어르신들에게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봉사활동 등의 전공을 살려서 가는 활동. 가끔 TV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비쳐주는 ‘독거노인들에게 가는 봉사활동’. 관악에서 대자보로 자주 알려지는 환활(환경 현장 활동), 기활(기지촌 활동), 최근에 생협에서 주최하는 유기농활. 넓게 사고했을 때 농활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되는 활동들은 많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농활은 한총련(한국총학생회연합)과 전농(전국농민회연합)의 주최로 전국적으로 일제히 벌어진다. 개인적 일정이 시기에 맞지 않거나, 개인적 적성에 맞지 않으면, 농활을 충분히 경험하기 힘들게 된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혹은 또 다른 다양한 활동들에서 농활과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앞의 다양한 활동들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서로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서로가 생각하는 사회의 모순을 얘기할 수도 있다. 너무 느슨한 수위라고 혹평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적성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더 적극적인 활동이 가능하고, 더 다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소통을 하는 것. 이것 역시 연대다. 다시 한번 농활 계몽적 성격에서 시작하여, 전위적 활동가들의 목적 있는 활동. 학생회 사업으로서의 대중적 연대활동. 농민학생연대활동. 실로 시대 상황에 발맞추어 그 모습을 바꾸어왔다. 지금 농민학생연대활동이 시대에 요구받는 것은 무엇인가. 7월 말경에 TV에서 러시아로 농활을 간 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논의한 농민학생연대활동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더 현실적인 농활이라는 생각이 듦은 어쩔 수 없다. 미술을 전공한 학생들이 마을 보육원에 벽화를 만들어 주고. 근처의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관련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는 것. 작업이냐 연대냐 에서 갈등하게되는 정형화된 농활보다는 분명히 더 호감이 간다. ‘농활을 가서 한 활동이 애초에 바랬던 동기에 얼마나 부합했는가?’에 대해서 농활이 끝난 후에는 평가를 내려보자. 물론 정량적으로 그 수치를 생각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개개인이 가졌던 목적에 대한 평가가 이후의 농활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침체된 농활에 활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다. 조직화 사업으로서의 농활이, 정치연대활동으로의 농활이 학우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면, 다양한 동기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형태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농활을 경험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은 학우들을 농활로 끌어들이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는 대중사업으로서의 농활을 유지시키며, 정치연대활동·조직화사업이 활성화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야말로 win-win game이 되는 것이다. 평소 기상시간과 다른 이른 기상. 시큼한 막걸리 한잔. 찬은 그리 많지 않지만 왠지 풍성해 보이는 새참. 각각 나뉘어져하는 맡은 바 활동을 하는 분반활동. 피곤에 지쳐 힘겨워 보이는 토론. 무수한 별들과 맑은 공기. 인간미 넘치는 마을 분들. 농활을 이미지화 해본다. 농활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농촌에 닥쳐오는 현안들보다는 이러한 모습들이 아닐까 한다. 막연히 농민과의 연대만을 외치는 것은 대개의 경우 일시적인 기억으로 남을 뿐이다. 앞글에서 새로이 제기하고자 하는 농민들과 학생들이 연대해서 전자상거래를 하는 것. 문제점이 없을 수는 없지만, 학우들에게 이미지화 된 농촌·농활이 아니라 현실적인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