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구제역 파동, 무엇을 위해 소돼지는 죽었나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지난 2월 18일 생매장한 가축들의 위령제가 열렸다.“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심란하다.남의 일이 내 일 같다.죽어가는 짐승을 보면 같이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내 가족과 같은 저들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우리 소에게는 정말 이런 병이 오지 않기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느님께 빌었다.” 축산농가를 운영하는 이점희(경북 고령군) 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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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마음이 심란하다. 남의 일이 내 일 같다. 죽어가는 짐승을 보면 같이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내 가족과 같은 저들에게 정말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소에게는 정말 이런 병이 오지 않기를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느님께 빌었다.” 축산농가를 운영하는 이점희(경북 고령군) 씨의 말이다. 전국을 휩쓴 구제역 파동은 이처럼 축산농가의 아픔으로 남았다. 정부는 아무런 준비책 없이 구제역을 맞아 초기대응에 실패했다. 이는 가축 350여 만 마리의 대량살상으로 이어졌다. 대량 살처분 생매장 속에는 ‘구제역 청정국’지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경제적 논리 외에 동물복지나 수의학적 관점은 없었다. 많은 동물들이 최소한의 인도적 권리도 누리지 못한 채 생매장됐다. 그러나 살처분 생매장은 정부의 말처럼 ‘경제적’이지도 않았다. “구제역은 신자유주의적 재앙” 이번 구제역은 작년 11월 말 안동에서 처음 발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섯 번째, 2010년 들어서는 세 번째다. 이전 경우들은 모두 경기도 인근이나 충청도 일부 군에 한정됐다. 그러나 이번 구제역 파동은 안동을 시작으로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가축 350여 만 마리가 살상되고, 3조여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가히 ‘대재앙’에 비견될만한 일이었다. ‘대재앙’은 동물 윤리, 물가 문제, 2차 오염 문제 등 구제역 발생 후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구제역은 발굽이 두 개인 가축이나 야생동물들에 발생하는 전염병이다. 14세기 영국에서 발발한 구제역이 바람만으로 프랑스에 전파됐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전염력이 높다. 그러나 가축의 생명에 치명적이지는 않다. 다 자란 가축의 경우 치사율은 5~10%에 불과하고 전염된 가축도 며칠 앓고 나면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이 인간에게 해를 미치는 것도 아니다. 학계에서는 구제역에 감염된 동물이라도 50도 이상에서 익혀먹으면 아무 탈이 없다고 설명한다. 우희종 교수(수의학과)는 “정부에서 홍보하는 것과는 다르게 구제역이 가축에서 인간에게 전염된 사례가 학계에 보고돼 있다”며 말문을 연 뒤 “그러나 인간 간에 전염되는 질병은 아니며, 인간이 가축에서 옮게 되더라도 증상이 약하고 비교적 안전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치사율도 낮고, 인간에 해도 없는 구제역이 지금과 같이 위험한 질병으로 분류되는 것은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서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데다 구제역에 감염되면 젖소의 경우 우유 생산량이 떨어지고 일반소의 경우 체중이 감소해 상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국제동물보건기구(OIE)에 의해 발생 즉시 해당국 동물과 축산물의 수출이 중단된다. 수입국 역시 수입을 즉시 중단할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이 우리 정부가 위험도가 낮은 구제역에 감염된 가축의 살처분을 단행한 근거다.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우리 축산물을 수출할 수 있고, 수입국과의 교역협상에서도 불리한 위치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제역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난 올해 1월 초까지 이명박 대통령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조속한 시일 내에 구제역 비발생국 지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며 살처분을 정당화했다. 가축에 백신을 접종하게 되면 백신접종 가축이 모두 도태되기까지 약 1년 6개월동안 구제역 청정국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 백신접종도 하지 않았다. 1월 초에 발간된 농림수산식품부의 ‘구제역(FMD) 문답집’에서는 구제역 청정국 지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지금은 충분히 구제역이 확산돼 있지 않은 상태이므로, 백신을 쓰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1월 초 당시 200만 마리가 넘는 돼지와 소가 살처분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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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종 교수는 “구제역은 신자유주의적 축산업이 낳은 재앙”이라고 설명했다.

살처분, 정말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였나 그러나 우리나라의 수출구조를 고려했을 때, 정부의 이러한 논리는 동물생명권보다 경제적 이익고려가 우선이어야 하냐는 가치판단을 떠나 이해되지 않는 점이 많다. 한국은 매년 쇠고기 30만 톤, 돼지고기 40만 톤을 수입하고 있다. 반면 육류 수출량은 돼지고기 2만 5천 톤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육류 수출국이 아니라 육류 수입국인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육류 수입 시 교역 조건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논리로 백신접종을 미뤄가며 350여 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우희종 교수는 “한미 FTA, 한-EU FTA로 이미 육류 수입조건의 틀이 나와있다”면서 수입조건을 운운하는 정부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미 가까운 미래의 축산물 수입 조건은 정해져있으며, 한-EU FTA가 체결되면 축산물 수입 조건이 더욱 완화될 것이라는 예측에서다. 우 교수는 “수입물량이 쏟아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구제역 발병으로 인한 수입조건 악화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수치로만 봤을 때도 2010년 우리나라가 구제역발생국지위로 상실한 수출액은 20억여 원에 불과한 반면, 살처분과 방역, 보상 등에 소요된 총 비용이 3조여 원에 달한다. 정부는 경제적 논리로 구제역 살처분을 정당화했지만 살처분은 경제적 이익면에서도 어리석은 결정이었던 셈이다. 정부가 경제적 논리로 자신들의 무능을 감추려고 했다는 지적도 있다. 청정국에 대한 집착 역시 구제역 검사, 백신 등 준비가 되지 않았던 정부가 자신의 실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선택했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정부가 약속했던 차폐시설이 제대로 운영되기만 했어도 이런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제역을 연구할 수 있으려면 위험성과 전염성이 높은 바이러스를 연구할 수 있는 특수차폐시설이 잘 정비돼야 했지만, 정부는 방역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전문가도 규정만큼 파견하지 않았다. 구제역 등 동물전염병이 발생할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이번 구제역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질병의 위험성을 단순히 확률로 설명할 수는 없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350여 만 가축의 죽음, 3조 여 원의 피해를 낳은 구제역은 한국에서는 1934년 이후 2000년 다시 발병할 때까지 66년 동안 발병하지 않았다. 66년 동안 발병 확률이 0이었던 셈이지만 단번에 병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정부의 무능, 책임은 축산농가에?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의 양정화 간사는 “이번 구제역 사태 이전부터 정부에 구제역 등 살처분이 강제로 집행될 수 있는 가축1종전염병에 대해 정확한 조사와 투자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번번이 무시됐다”며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비판했다. 이런 예방책의 부재뿐 아니라,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이후 대책이 현장에 접목되지 않으면서 구제역은 유례없이 확산됐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로 지적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간이검사다. 전염병이 발병 여부를 검사하는 방식에는 병원균 검사와 항체 검사가 있다. 국내에서 처음 구제역 발병이 의심될 때 이용한 것은 항체검사였다. 이전에 구제역 발생이 크게 문제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균검사 키트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항체는 병이 발생하고 적어도 2주가 돼야 생성되기 때문에 초기 검사는 무의미했다. 발병을 제대로 검출해내지 못해 일주일여를 무방비로 보낸 이후 정부가 이해할 수 없는 경제논리로 백신 접종 시기까지 놓치자 구제역은 손쓸 수 없는 지경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구제역 창궐의 책임을 일부 축산 농가와 이주노동자, 여행객들에 돌렸다. 특히 정부는 구제역이 최초로 발생한 지역의 농장주가 작년 11월 초 베트남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안동 농민을 구제역의 주범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안동발 구제역 바이러스가 2010년 베트남 구제역 바이러스와 연관이 없다는 정황이 포착돼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고령군에서 축산업을 하는 이점희 씨는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 책임을 일부 농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며 정부의 실책에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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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 현장, 동물복지권과 최신 수의학은 어디에? 구제역 사태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 역시 정부의 일방적인 보도자료만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언론매체의 보도는 주로 구제역 확산경로, 전파 속도 혹은 매몰된 가축의 수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중 그나마 일반 대중의 눈길을 끈 것은 가축 생매장 광경이었다. 지난 2달 여 동안 전 국민이 보는 뉴스에서 살처분과 생매장은 지속적으로 보도됐고, 동물복지에 대한 논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러나 KARA의 양정화 씨는 “요즘 들어 농장동물의 권리가 이야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부 인터넷 매체에서만 기사화되고 있다”며 동물복지를 이슈화하는 일의 어려움을 나타냈다. 양 씨는 “우리나라 자체가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일반 대중들 역시 저렇게 죽는 가축이 불쌍하다 정도의 얘기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동물복지권에 대한 인식 제고를 촉구했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육식을 해야 한다면, 동물권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동물권의 핵심은 동물도 절대 침해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는 점이다. 우희종 교수는 “생태계에는 먹이 사슬이 존재하고 우리에게는 육식 산업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동물을 절대 죽이면 안된다는 말은 할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번 대량 살처분 생매장은 “가축들이 다른 생명체에 기여하지 못한 채 죽게 한 헛된 죽음”이라고 규정했다. 국제동물보건기구(OIE)에서도 이러한 동물복지권을 반영, 동물살처분시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락사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국내 동물보호법과 가축전염병예방법 내 살처분 규정에도 명시된 내용이다. KARA의 양정화 씨 역시 “이번 구제역 사태와 관련해서 동물들은 경제적 논리에 밀려 병을 예방할 권리를 가지지 못했고 인도적으로 죽을 수 있는 권리도 침해받았다”며 안락사를 수행할 인력과 비용을 아끼기 위해 국내 실정법과 국제규범조차 지키지 않은 이번 살처분 생매장을 강하게 비판했다. 구제역은 빠르게 전파되고, 특별한 치료약이 부재한 질병이다. 따라서 살처분은 분명 초기에는 적은 손실을 감수하며 행하는 적절한 방역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살처분 생매장은 방대한 전파범위와 속도를 경시하고 일어난 것이라 더 구제역을 키운 꼴이 됐다. 이런 대규모 살처분은 2001년 영국 구제역 파동 이후 변화한 최신 수의학적 패러다임을 반영하지 않은 처분이었다. 2001년 영국에서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2,000여 마리에 불과했지만 600여 만 마리가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명목 하에 죽었다. 우희종 교수는 “2001년 이후 학계에 살처분만으로는 구제역을 해결할 수 없다는 합의가 생겼는데도 정부 관련부처와 관련법제에는 동물복지와 관련한 최근의 수의학적 관점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학계의 의견을 적절히 수렴하지 않은 정부의 정책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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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업·육류중심 식습관 탈피가 근본적 대안 환경단체나 동물보호시민단체는 입을 모아 “이와 같은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공장식 축산업, 육류중심 식습관문화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KARA의 양정화 씨는 “근본적으로 대규모 동물전염병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축산의 토대가 친환경적 동물복지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부로부터 질병이 유입되더라도 저항할 수 있는 건강한 개체들로 키우고 질병을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을 확보하는 것이 일차적 토대라는 인식에서다. 그에 따르면 질병 유입에 대한 예찰 검역, 백신의 접종 등은 이차적 대응이다. 일차적 토대가 제대로 세워져 있는 상태에서 이차적 대응이 이루어질 때 예방효과가 크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의 정명혜 팀장 역시 “구제역이라는 단순한 병이 이렇게 재앙으로 불거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가 육류 중심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육류 산업이 이윤성이 높아지면서 축산업을 공장화했고 이에 따라 동물들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전염병에 약해지게 됐다는 것이다. 대량 육류 소비, 공장식 밀집사육으로 이어지는 전반적인 메커니즘을 바꾸지 않는 이상 구제역과 같은 대재앙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정 씨는 “육류 소비를 줄여야만 가축의 복지권을 보장하는 유기축산, 지속가능한 축산이 가능하다”면서 “이번 구제역 사태를 계기로 학생들이 자신의 먹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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