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어머니, 아버지들의 끝나지 않은 릴레이

‘유령’처럼 묵묵히 일했던 홍익대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홍익대학교 캠퍼스에서는 다가오는 입학식과 졸업식의 설렘과 열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왠지 모를 불안감과 긴장감이 건물 곳곳에 서려있을 뿐이었다.캠퍼스는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갖 플래카드와 대자보로 뒤덮여있었다.지난 1월 3일자로 부당해고된 170여명의 홍익대 미화·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IMG_0###
‘유령’처럼 묵묵히 일했던 홍익대 노동자들이 부당해고에 맞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홍익대학교 캠퍼스에서는 다가오는 입학식과 졸업식의 설렘과 열기를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과 긴장감이 건물 곳곳에 서려있을 뿐이었다. 캠퍼스는 정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갖 플래카드와 대자보로 뒤덮여있었다. 지난 1월 3일자로 부당해고된 170여명의 홍익대 미화·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복직투쟁을 지지하는 내용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학교 측에 고용승계, 노조인정, 처우개선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학교 측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며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홍익대학교 본관인 문헌관을 점거하고, 매주 홍익대 정문에서 촛불집회를 열며 철야 농성을 계속했다. 그러던 지난 2월 20일, 세 곳의 용역업체가 노동자 전원을 고용승계하고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등 해고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기로 했다. 농성 49일 만에 극적인 노사합의를 이뤄낸 홍익대 노동자들은 다음날 곧바로 일터에 복귀했다. 홍익대 부당해고 사건일지 홍익대학교에서 근무하는 170여명의 미화·경비·시설관리 노동자들은 용역업체에 의해 고용된 비정규직이었다. 그들의 계약만료일 2010년 12월 31일을 앞두고 홍익대학교 측은 3개월 계약 연장을 요구했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기존 인건비를 그대로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용역업체는 이를 거부했고 그렇게 170여명의 노동자들은 해고됐다. “우리는 용역업체만 바뀐 줄 알고 신정 연휴가 끝난 1월 3일 출근을 했다. 그런데 출근부가 보이지 않았다.” 서복덕 부분회장(공공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은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학교 측에서는 “출근부 없으니 이제 일하지 말라. 당신들은 잘린 것이다”고 말하며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했다. 용역업체도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IMG_1###
휠체어를 타고 총장실로 들어갔던 장영태 홍익대 총장은 잠시 후 두발로 걸어 총장실을 나왔다. 해고된 노동자들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있다.

노동자들은 “해고 사유라도 알자”며 총장실로 향했다. 그 날 장영태 홍익대 총장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총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김금옥 부분회장(공공노조 서경지부 홍익대분회)은 “식사도 안 하시고 화장실도 안 가시더라”며 “보건소 소장이 두어 차례 총장실에 들어갔다 나왔다. 그러더니 얼마 있다가 총장이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총장실 입구에서 교직원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결국 장 총장은 다시 총장실로 들어갔다. 학교 측은 경찰을 불렀고, 노동자들은 “우리는 손도 안댔다”고 호소하며 “모시고 나가라”고 전했다. 그런데 그 때 웃지 못 할 상황이 발생했다. 휠체어를 탔던 좀 전과는 다르게 장 총장은 두발로 걸으며 나온 것. 김 부분회장은 “총장이 웃으며 나가는 것을 봤다”며 “우리가 야유를 보냈다”고 말했다. 10일 후, 홍익대 측은 ‘총장 감금, 업무 방해, 건물 침입’을 이유로 노조간부 6명을 고발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을 본격적으로 벌이기 시작한 1월은 영하 10도가 넘는 매섭게 추운 날이었다. 그들은 추위를 참지 못하고 홍익대학교 문헌관에 들어갔다. 따뜻한 실내에서 노동자들이 머물며 농성을 벌이자 학교 측에서는 문헌관의 내부난방을 멈춰버렸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5~60대였다. 김 부분회장은 “며칠 잠을 자는데 너무 추워서 다들 몸이 망가졌다”며 “이러다가 병이 나 쓰러지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들은 남녀 10명씩 철야조를 구성해 매일 20명씩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켰다.진짜 사장은 ‘홍익대학교’

###IMG_2###
영하의 날씨에도 해고 노동자들은 결의를 다지며 집회에 참여했다.

홍익대 해고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한 달 임금은 75만 원. 근무시간은 기본 8시간이었지만 업무량이 많아 실제로는 2~3시간 초과근무를 했기 때문에, 임금은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수준이었다. 초과근무량에 대한 급여는 물론 식비도 지급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학교에서 나오는 폐지를 판 돈으로 쌀을 구입해 대기실에서 밥을 해먹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는 폐지를 판매한 대금을 장학기금에 보탤 것이라며 이조차 빼앗았다. 노동자들이 쌀값이라도 달라고 항의하자 용역업체에서 1인당 한 달에 9000원씩 지급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1인당 하루 식비가 300원인 셈이었다. 서복덕 부분회장은 “‘근로환경’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75만원을 주면 주는가보다 했다”며 “그때는 바보였다. 이제는 그렇게 일하지 못할 것 같다”고 현재 심정을 전했다. 현재 홍익대의 미화‧경비업무는 일용직 대체인력으로 처리되고 있다. 이들의 일당은 여성 7만원, 남성 10만원이다. 해고 노동자들의 일당은 2만원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해고 노동자들이 학교 측에 요구하는 것은 ‘고용승계‧노조인정․생활임금보장‧처우개선’이다. 또한 노동자들의 정년을 만 65세 이상으로 연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홍익대는 고용승계는 홍익대가 계약당사자가 아니므로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며, 따라서 노동자들에 대한 원천사용자성도 갖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이나 근로환경에 대해서는 용역업체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또한 홍익대는 노조와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서 부분회장은 “계속해서 학교 측에 요구사항을 보냈지만 대답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1월 12일, 홍익대는 입찰 설명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해고 노동자들은 참석을 거부당했고, 학교 측과 용역업체들 간의 논의만이 펼쳤다. 그리고 1월 27일, 홍익대는 최저낙찰제를 통해 미화·경비·시설관리 용역업체를 3곳을 선정했다. 최저임금만을 지급하겠다는 홍익대의 의지가 드러난 셈이다. 용역업체들은 ‘홍익대가 최저임금 수준의 인건비를 책정했기 때문에 그 이상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서 부분회장은 “학교 측과 용역업체가 노조와 만나서 어느 정도 아웃라인을 잡고 협상 조건 등을 조절해가야 하는데, 용역업체가 단지 학교 측 입장만을 듣고 우리와 협상하려했다”며 “우리의 요구조건은 사전조사도 하지 않았다”고 탄식했다. 지지와 후원 덕에 지치지 않아 해고 노동자들 대부분 고령이다 보니 장기화되는 농성과정에서 환자들이 속출했다. 서복덕 부분회장은 “지금까지 건강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의사, 한의사 분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무료진료를 해준 덕”이라며 고마워했다. 그는 “외부인들은 사랑으로 우리를 돕고 있다”면서 “오히려 내부인인 학교 측 사람들은 우리를 짓밟고 우리 위에 군림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IMG_3###
홍익대학교 문헌관에서 점거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들.

홍익대 해고사태는 ‘트위터’를 통해 그 사연이 널리 알려졌다. 지지층의 폭도 다양했다. 탤런트 김여진 씨가 중심이 된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라는 트위터모임은 신문광고, 바자회, 김장하기 등 다양한 연대활동을 펼쳤다. 김 씨는 직접 노조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전기장판 30개를 전달했다. 또한 홍익대 노동자들을 위해 본인이 출연한 영화 ‘아이들’의 특별 상영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의 방문도 잇따랐다. 민주당 이미경, 천정배 의원,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 많은 국회의원들이 해고 노동자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인사를 전했다.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직접 총장과 면담해 사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 부분회장은 “정치인들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은 내놓지 않는다”며 “순간의 화제만을 노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고백했다. 서울대, 부산대, 원광대 총학생회 등 많은 대학생들의 지지참여도 이뤄졌다. 홍익대 학생들 역시 커피나 라면을 사오고 집회에 참여하는 등 뜨거운 지지를 보냈다. 김민재(홍익대 경영학과 10) 씨는 “우리 부모님 연령대이신 분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된 걸 보니 매우 안타깝다”며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대책을 강구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금옥 부분회장은 “홍대 미대 학생 한 명은 날씨가 춥다며 입던 옷까지 벗어줬다”며 “덕분에 지금까지 우리가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서 부분회장은 “우리는 비싼 등록금 내고 공부하러 온 학생들에게 깨끗한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며 학생들에 대해 미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는 “사실 피해자는 학생”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다양한 사회단체에서도 홍익대 노동자들과 연대했다. 민변 외 3개 단체에서는 법률지원단을 꾸려 법률투쟁에 대응하고 있다. 이들은 1월 27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법률지원단 구성을 보고하고 홍익대를 ‘최저임금법 위반 및 부당노동 행위’로 고발조치했다. 민변 관계자는 “홍대 측이 계속해서 노조와의 교섭을 거부한다면, 추가적인 위법 사실을 확인검토 후 법적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1월 31일에는 교수노조, 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는 전국 76개 대학, 224명 교수들의 서명과 함께 ‘사태 해결을 위해 홍익대가 책임감 있게 나서라’는 내용의 서한을 홍익대 장영태 총장에게 전달했다. 조승현 민교협 사무처장은 “홍익대 사태는 홍대라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만은 아니며, 비정규직의 근로 보호 차원에서 법․제도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49일만의 극적 합의, 그러나 투쟁은 계속된다 2월 10일, 선정된 세 곳의 용역업체와 노조 간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용역업체는 해고 노동자 전원을 고용승계하고, 주5일, 일 8시간 근무를 보장하기로 했다. 또한 월 5만원의 식대, 명절 상여금 5만원과 초과근무시간에 대한 수당을 지급키로 했다. 이로써 투쟁은 일단락됐고, 노동자들은 21일부터 각자 일터에 복귀했다. 그러나 공공노조 홍익대분회는 홍익대 측의 노조간부에 대한 고소고발건과 휴게실 개선, 노조사무실 마련 등의 미해결 사안에 대해서 투쟁을 계속할 방침이다. 공공노조 이재용 조직차장은 “이번 합의안은 홍익대가 아닌 용역업체와의 합의안”이라며 “홍익대와의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원천사용자성 인정 부분과 관련해 “이는 홍대 개별 사업장의 문제만은 아니다”며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분회와 연대하여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사상 초유의 구제역 파동, 무엇을 위해 소돼지는 죽었나

Next Post

우리는 노숙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빅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