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그들만의 리그에 초대받다

지난 11월 11일, 양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배심원과 예비배심원으로 참여한 10명(예비배심원 1명 포함)의 시민이 시종일관 진지하게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을 경청한 가운데 결국 피고인의 살인미수 혐의는 배심원들의 다수결에 의해 무죄로 평결됐다.

지난 11월 11일, 양천구에 위치한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배심원과 예비배심원으로 참여한 10명(예비배심원 1명 포함)의 시민이 시종일관 진지하게 검사와 변호인의 주장을 경청한 가운데 결국 피고인의 살인미수 혐의는 배심원들의 다수결에 의해 무죄로 평결됐다. 이날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다는 김송경(법학과 석사과정) 씨는 “기존 형사재판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진행되는 반면에 국민참여재판은 심리과정을 자세히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덜 역동적인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시민의 상식을 위해 탄생한 국민참여재판,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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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재판장.

오는 31일 국민참여재판이 도입된 지 1년을 맞이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통 시민들에게 국민참여재판은 낯설기만 하다. 준비단계만 5년을 계획한 일본에 비해 비교적 짧은 준비기간을 거친 후 올 1월부터 시행된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의 배심제와 독일의 참심제를 절충시킨 형태로 배심원 평결에 구속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단체 설립 때부터 국민참여재판을 주장해온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은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사법조직의 특성 때문에 국민의 주권행사가 제한돼있는 상황에서 시민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있다”며 “직업법관이 가질 수 있는 한계점을 시민의 상식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현재 시행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이 배심원 또는 예비배심원으로 참여하는 형사재판을 의미한다. 배심원으로 선정된 국민은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해 평결을 내리고, 유죄 평결이 내려진 피고인에게 선고할 적정한 형벌을 토의하는 등 재판에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법원행정처에서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8월 31일 기준으로 국민참여재판 신청이 158건이 접수됐고 이중에서 35건에 대한 판결이 선고됐다. 박근용 팀장은 “예상보다 낮은 신청률을 보였지만 배심원들이 대체적으로 재판부와 비슷한 평결과 양형을 제시해 국민참여재판이 큰 무리 없이 시행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직업법관들과 다른 시민의 상식을 보여줄 수 있는 사례가 나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며, 현 제도 하에서는 피고인이 신청해야만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수 있기에 정작 국민참여재판이 필요한 재벌총수관련 사건 등을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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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박근용 팀장은 “국민참여재판은 사법민주주의를 이뤄낼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현재 국민참여재판은 아침에 배심원이 채택되고 저녁에 심의를 마치면서 하루 만에 결론이 내려지고 있다. 이것은 다른 재판에 비해 현저하게 짧은 시간을 할애해 문제를 사고 있다. 또, 배심원들에게 하루 동안 모든 과정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저녁 늦게 까지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 문제는 지난 9월 22일 제2차 국민참여재판관 토론회에서도 논의됐으며, 국민참여재판 전담 부장판사들은 야간에는 참여재판을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복잡한 사건은 하루 만에 처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배심원들의 지속적인 참가여부가 관건이 되고 있다. 지금은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비교적 하루 동안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사건에 한정해 진행되고 있지만, 확대 시행될 경우 이는 가장 큰 난관이 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박근용 팀장은 “사법부에서 지레 겁을 먹고 있다. 여러 번에 걸쳐서 재판을 진행한다 해도 대다수의 배심원들이 성실히 참여할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또 항상 국민참여재판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감성재판’에 대한 논쟁도 식지 않고 있다. 정상참작의 측면을 넘어 전략적으로 배심원들의 감성에 호소함으로써 자칫 잘못된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 등으로 오판을 할 수 있는 확률을 생각해, 아직 시작단계인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들의 평결에 대해 구속력을 부여하지 않고 법관에 대한 권고적 효력만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강제적 효과가 없는 것 자체가 국민참여재판의 실효성을 약화시키고 있지 않느냐는 물음도 병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한인섭(법학부) 교수는 “지금은 걸음마 단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권고적 효과를 표방하는 것이 신중한 선택”이라며 “나중에 경험이 축적되면 준구속적 효력을 가질 수 있게 해야한다”고 이야기했다.한 배는 탔지만… 여전히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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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부 한인섭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에 있어 국민들의 참여와 그에 따른 긍정적인 경험을 강조했다.

지난 10월 21일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이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일반국민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7%가 아직까지 국민참여재판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홍보와 선례 부족으로 국민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적게 신청하는 바람에 부산지법에서는 하나의 전담재판부가 모든 국민참여재판사건을 맡게 됐다. 따라서 일시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함으로써 재판부를 미리 알고 선택할 수 있는 ‘재판부 쇼핑(피고인 측이 양형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재판부를 배정받기 위해 벌이는 행위)’이 문제 되기도 했다. 또, 국민참여재판의 지속적인 시행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지금처럼 제한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가 36.6%로 가장 많았고, ‘시행을 보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23.8%에 달했다. 국민의 사법주권을 찾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 국민들에게서 왜곡되고 외면 받고 있는 것이다.이에 대해 한인섭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의 본래 취지를 알리기 위해서는 기계적 홍보도 필요하겠지만, 국민들에게 구체적 사건을 통해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를 위해 실제 재판뿐만 아니라 수많은 모의 재판에 참여하는 것도 또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법원과 검찰은 국민참여재판을 비교적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 안에서도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2월 신임 청주지법원장이 “국민참여재판은 비현실적인 제도”라고 이야기한 것을 시작으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공판검사가 “국민참여재판은 실패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부산지검의 한 검사는 “배심원 출석에 응하는 사람이 비교적 무직자나 노령자가 많다”며 배심원에 대한 회의를 표현하기까지 했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배심제의 취지는 다양성에서 나오는 경험을 토대로 보다 나은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므로, 어떤 국민이 판결에 있어서 더 우월한 결론을 내린다는 투의 발언은 적절치 못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변호사들의 경우 국민참여재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국민들에게 법원의 역할을 상기시키는 등 법원 홍보에 도움이 되는 반면, 변호사들은 앞으로 국민참여재판이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 성급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 측은 전담팀을 꾸리는 등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반면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는 현 변호사들에게 달라진 재판에 대한 어떠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지난 11월 11일 열린 국민참여재판 변론에 나선 이규원(법무법인 정평) 변호사는 “이번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는 데 있어 대한변호사협회로부터는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고, 그나마 앞서 국민참여재판을 담당했던 선배 변호사에게서 약간의 정보를 얻었을 뿐이었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국민참여재판이 추구하는 방향성에는 동의하지만, 이 제도가 오랜 시간 축적해온 ‘한국의 법적 합리성’보다 더 적합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 공판 준비기일을 포함해 공판 당일까지 적어도 3일 이상을 재판에 매달려야 하는데다 각종 프리젠테이션 자료까지 준비해야하는 등 다른 재판에 비해 변호사들에게 부여되는 자료준비 부담이 큰 반면, 물질적인 보상은상대적으로 낮아 국민참여재판은 변호사들에게서 점점 관심 밖이 돼가고 있다. 이러한 일선 변호사들의 무관심은 이미 치러진 국민참여재판 35건 중 27건을 국선변호사가 맡았던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참여연대 박근용 팀장은 “변호사들이 빠진 국민참여재판은 활성화 될 수 없다”면서 “대한변호사협회 차원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시민의 상식이 통하는 ‘사법민주주의’의 초석으로지난 5월, 스위스 바젤대학의 쿠어트 젤만 교수는 법원 초청 강연에서 “국민참여재판이 유럽에서는 이제 회의적”이라며 “다만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는 아직까지 배심제가 지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법문화 등과 연관지어 생각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또 “국민참여재판이 무조건 정의롭고 인간적인 재판이 될 수 없으며,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 향상에도 기여하는 바가 적을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그 본질적 성격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그러나 참여연대 박근용 팀장은 “국민참여재판은 사법민주주의를 달성하는 데에 있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했다. 이와 동시에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하면서 법정 안에서 모든 증거들이 제시되는 공판중심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측면도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피고인에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하기 때문에 상대편을 ‘피해자’라고 부르기 보다는 ‘고소인’ 또는 ‘피해주장자’라고 정정함으로써 배심원들이 편견을 갖지 않도록 하는 등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준비해야할 것이라고 첨언했다. 또, 비용 때문에 중범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 제도를 ‘시민의 상식’이라는 취지에 맞게 명예훼손, 뇌물죄, 음란물 관련 사건 등으로 확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인섭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을 ‘숙고적 민주주의’로 갈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으로 평가했다. 참여와 토론을 전제로 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우리나라 민주성 성숙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또 국민참여재판이 유럽에서 회의적이라는 시각은 확대해석된 것이라며 현재 민주화를 이룩한 대다수의 국가에서 여러 가지 형태의 국민참여재판을 실시하고 있음을 제시했다. 또한 국민참여재판이 한국에서 처음 시행하는 제도인 만큼, 현재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들은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보완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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