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狂)고계의 리더, 아파트 광고

유럽에 가보지 못한 A 씨(33, 여)는 ‘롯데캐슬’에 사는 친구의 집에 자주 들러 유럽의 정취와 영국의 궁전 양식을 구경한다.‘자이’에 사는 B 씨(28, 남)는 ‘래미안’에 사는 애인의 집을 구경한 뒤 결혼을 결심했고, ‘푸르지오’에 사는 C 양(17, 여)은 푸르지오에 사는 D 양을 한눈에 알아보고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사회적 평판이 좋은 E 씨(52, 남)는 세상의 숨겨진 가치를 찾기 위해 ‘힐스테이트’로 이사를 할 생각이다.

유럽에 가보지 못한 A 씨(33, 여)는 ‘롯데캐슬’에 사는 친구의 집에 자주 들러 유럽의 정취와 영국의 궁전 양식을 구경한다. ‘자이’에 사는 B 씨(28, 남)는 ‘래미안’에 사는 애인의 집을 구경한 뒤 결혼을 결심했고, ‘푸르지오’에 사는 C 양(17, 여)은 푸르지오에 사는 D 양을 한눈에 알아보고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사회적 평판이 좋은 E 씨(52, 남)는 세상의 숨겨진 가치를 찾기 위해 ‘힐스테이트’로 이사를 할 생각이다. 아파트 광고 속에 그려진 삶의 모습이다. IMF이후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와 선분양제도 시행으로 인해 전국에 수많은 아파트가 들어섰고, 아파트 가격은 덩달아 폭발했다. 아파트값 폭등과 전국토의 투기장화 그리고 서민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일등공신이 있었으니 바로 ‘아파트 광고’이다. 근래 대출 광고에 출연하던 연예인들이 질타를 받은 일이 있었으나, 아파트 광고의 피해도 이에 못지않다. 성균관대 김태동 교수(경제학과)는 “아파트 광고가 마약 광고보다 나쁘다”고 말한다.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아파트 광고, 내용은 전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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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속에 비친 그들은 늘 아름답고, 여유롭다

지난 2006년 35개 건설회사가 지출한 광고 선전비는 2천 3백억여원에 달해, 전년보다 17.6% 증가했다. GS건설 337억원, 대우건설 258억원, 현대건설 247억원 등이다. 현재 아파트 광고는 전체 신문 광고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52개 이상의 TV 광고가 공중파 방송의 황금시간을 장악하고 있다. TV를 틀면 최소 3분 이내에 아파트 광고를 볼 수 있다. 요즘과 같은 유형의 ‘아파트 브랜드 광고’는 90년대 중반 ‘래미안’을 필두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의 아파트 광고는 ‘신림 현대아파트’처럼 주로 ‘지역+건설회사명’을 홍보하는 형태였으나 이 시기부터 점차 고유한 브랜드 이름 홍보에 중점을 두기 시작한다. 중앙대 황장선 교수(광고홍보학과)는 아파트 브랜드화 현상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문화’와 ‘투자의 대상인 아파트’가 맞물려 일어났다고 분석한다. 아파트 광고는 실제 물건이 없는 상태에서 팔아야 하기 때문에, 광고를 통해 건설회사의 기술력이나 아파트의 정보를 제공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브랜드 마케팅에만 열중한다. 황장선 교수는 요즘의 아파트 광고가 천편일률적이라고 비판한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프리미엄, 명품 등의 이미지를 덧씌우면서 자사의 브랜드가 최고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각 브랜드별로 어떤 차이가 있고 어떤 브랜드가 자신에게 더 적절한지 판단하기 힘든 지경이다. 광고가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파트 광고가 ‘꿈’, ‘미래’, ‘행복’과 ‘프리미엄’을 말하지만 소비자를 위한 정보는 전혀 없다. 대부분의 광고 카피는 추상적인 형용사의 나열로 이뤄져 있고, 연예인들의 왜곡된 이미지 주입을 통해 소비자들의 소비심리를 자극한다. 김난도 교수(소비자아동학부)는 모든 아파트 광고가 허위 과장광고이며, 후기자본주의의 허영의 문화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모두 다 허위, 과장 광고다. 광고하는 아파트에 살면 얻는다는 이미지들이 모두 공허하고, 아파트 성격과 아무런 관계없는 얘기다. 남편이 일찍 와서 잘 해줄거라든지,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게 될 거라든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짓지도 않은 허깨비 아파트를 파는 선분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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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아파트값 거품빼기 운동본부 차성옥 간사

이같은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최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유명 연예인들의 선분양 아파트 광고 출연자제를 촉구했다. 2004년부터 경실련은 ‘후분양제 도입, 분양원가공개’를 주 내용으로 하는 ‘아파트값 거품빼기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경실련 차성옥 간사는 문제의 핵심이 ‘선분양제’라고 지적한다. “라면 하나를 사도 가격은 물론 제조 연월일까지 따져보고, 티셔츠 한 장을 사더라도 일일이 입어보고 산다. 그런데 평생 한 번 사기도 어려운 아파트는 합판으로 지어진 모델하우스와 브랜드 광고만 보고 구입한다. 거의 모든 아파트 광고는 첫 삽도 뜨지 않고 땅만 확보한 상태에서 이뤄진다.” 선분양제로 인해 소비자들은 지어지지도 않은 허깨비에 수억에 이르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건설회사는 분양에 당첨된 사람들이 낸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받아 ‘땅 짚고 헤엄치듯’ 공사를 진행한다. 소비자는 건설회사에 돈 빌려주고, 이자까지 대신 내주고, 게다가 중간에 부도라도 나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차성옥 간사의 지적은 계속된다. “문제는 턱없이 비싼 분양가를 매기면서 분양원가 내역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이 이익 추구하는 것을 문제삼자는 게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 적어도 분양가가 어떻게 책정이 됐고 자신이 낸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 제대로 된 건축자재를 사용했는지 정도는 알아야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값이 턱없이 폭등한 배경에는 건설업체의 이같은 횡포가 자리 잡고 있다. 분양가 책정시 건설원가에 이윤을 더해서 합리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가와 상관없이 주변시세보다 높게 측정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다. ‘건설업체의 고분양가 책정 -> 주변의 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 ->신규 아파트 분양가격 상승 ->주변 집값 재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돼온 것이다. 경실련의 분석에 따르면 참여정부 이래 5년 간 3000조원 이상의 부동산 거품이 생겨났다. 차성옥 간사는 “IMF 이전만 해도 1억 넘는 아파트가 별로 없었는데 몇 년 사이에 폭등한것”이라고 말한다. 2000년 당시 강남 일반 아파트는 3.3㎡(1평)당 700만원, 타워팰리스도 950만원 선이었으나 현재 강남의 소위 ‘프리미엄’ 아파트는 평당 3000만원이 넘는다. 수도권의 경우 7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3배 가까이 상승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봉급쟁이가 자력으로 서울에 82.5㎡(25평)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23년이 걸린다. 28살에 취직한 경우 50세가 넘어서야 가능하다. 강남구 82.5㎡ 아파트는 65살, 108.9㎡(33평)는 71살이 돼야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말 그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 돼야’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는 세상인 것이다. 미안하다, 모두 네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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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광고에서 말하던 공원은 높이 17m 옹벽으로 변했다. 옹벽으로 인해 지상4층까지는 반지하 아파트가 됐다.

아파트 광고는 선분양제로 인한 집값 상승을 조장할뿐 아니라 복합적인 경제적 피해를 야기한다. 지난달 성남시의회 도시건설위원회의 판교지구 4개 택지개발 현장답사 중 판교 택지개발지구 내 공공임대아파트단지 공사와 함께 높이 17m가량의 옹벽을 설치하는 공사가 진행돼 논란이 됐다. 아파트 분양 광고시 조성될 것으로 알려졌던 공원과 수풀림 대신에 옹벽이 들어선 것이다. 위 경우와 같이 광고에서 제공한 내용과 실제 공사완료 후 입주시의 차이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경실련 차성옥 간사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이를 악용하는 건설회사, 그리고 문제가 되는 광고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겨났다고 지적한다. 처음 광고할 때 건설 계획이나 아파트 구조, 실내 구조에 대해 구체적 정보가 제공되지 않으므로, 완성된 아파트에 하자가 있어도 소비자들이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아파트 광고에 수백억 이상이 투자되고 있지만 실제 소비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마케팅 비용은 고스란히 분양가에 반영돼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광고는 분양가만 높이는 애물단지인 것이다. 광고가 현혹하고 대중이 따르고… 언론도 큰 문제 아파트 광고 속에서 잘 생기고 예쁜 연예인들이 하는 말 역시 그저 웃어서 넘기기엔 지나친 면이 있다. 혹자는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한다고 말하지만, 노골적이고 거리낌 없이 물질만능주의를 숭배하는 아파트 광고는 많은 이들에게 불쾌감을 준다. 한영태(법학 06) 씨는 “정도가 지나친 것 같다. 솔직히 넓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사는 게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넓고 깨끗한 집에 사는게 성공이라는 식으로 대놓고 말하는 것이 기분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주택 보급노력에도 불구하고, 뜬구름처럼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6월 기준 660만 가구, 1천 600만 명이다. 아파트 광고는 ‘가치 있는 삶, 행복한 삶’을 말하지만 그들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김난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이 아파트 광고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전반의 천박한 소비문화 문제다. 큰 자동차 타는 것이 성공의 상징인 것처럼 말하고, 넓은 평수에 사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본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문제도 있다. 대부분 서민들이 타워팰리스 사는 사람들 졸부 취급하고 비판하지만, 로또 당첨된 사람이 1순위로 하는 일이 타워팰리스로 이사가는 일이다. 대중들의 천박한 소비문화가 있고,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그런 문화를 조장하는 악순환이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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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조장하는 언론보도의 실태

이 2월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6% 이상이 집 문제로 고민을 하며, 87% 이상의 국민이 후분양제 도입을 찬성한다. 아파트값이 계속 폭등하고 부동산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자리잡았다. 아파트 광고는 화려한 포장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고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언론 또한 아파트 광고의 폐해와 부동산 정책의 문제에 대해 직접적인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반면 정부의 투기억제책은 ‘세금폭탄’, ‘반(反)시장경제’같은 표현으로 비난하며 투기를 조장하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싣는다. 그것도 부족해 부동산 시세 코너를 만들어 온 국민과 국토를 투기장으로 몰아넣고 있다. 수많은 아파트 광고가 말하는 듣기 좋은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선 동화 속에서나 존재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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