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에게 던지는 두 가지 시선
오타쿠는 일본에서 온 말로 일본어의 존칭형 접두사인 ‘오’에 당신을 뜻하는 ‘타쿠(宅)’가 결합된 말이다. 우리말로는 ‘댁’이 정확한 단어다. 오타쿠는 기본적으로 ‘한 분야에 깊이 빠져들어 준전문가에 이르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인데, ‘특정 분야에만 몰두한 나머지 일반적인 상식과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 또한 존재한다. 특히 한국에서 오타쿠는 대체로 ‘일본문화에 몰두한 나머지 상식과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요즈음 ‘오타쿠’는 인터넷 공간에서 상대를 얕잡을 때 사용되는 등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오타쿠를 싫어한다고 밝힌 김종우(25) 씨는 “일본문화가 전 세계의 어떤 대형 문화보다 성적이고 변태적인 문화가 많다”며 “그런 걸 좋아하는 오타쿠 또한 싫어한다”고 말했다. WRC(World Rally Championship) 온라인 중계를 보는 것이 취미인 김승주(24) 씨는 이 같은 추세에 대해 “오타쿠의 의미가 변질되면서 그 변질된 정의의 오타쿠가 진실인양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아냥거릴때 매우 불쾌하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근 오타쿠는 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오타쿠’는 누리꾼들 사이에서 ‘오덕후’, ‘오탁후’, ‘십덕후’ 등으로 변형됐고 마침내는 ‘오덕오덕’이라는 흉내음까지 만들어졌다. 이처럼 ‘오타쿠’라는 말이 그 본래 의미를 넘어 욕으로 변질되면서 오타쿠는 ‘동네북’이 돼버렸다. 안경·여드름·돼지 = 오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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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상에서 욕으로 언급되는 오타쿠 |
‘오타쿠’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는 질문에, 필명 미식가(21) 씨는 “가장 먼저 일본어투가 생각나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특정 외모가 떠오른다. 실제로 아니라 해도 그러한 이미지가 정형화 된 것 같다”라며 ‘안여돼’라는 합성어를 언급했다. ‘안여돼’는 ‘안경, 여드름, 돼지’의 줄임말이다. 오타쿠의 이미지 중 가장 자극적인 ‘안여돼’의 모습은 누리꾼들의 ‘이미지’ 재생산을 통해 어느덧 ‘오타쿠’를 뜻하는 공식이 되었다. 안여돼의 이미지로 비춰지는 오타쿠들이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눈에 띈다. 게임마케터인 정웅모(34) 씨는 오타쿠들이 폐쇄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오타쿠가 정보를 공유하고 쉽게 풀어서 알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문제도 있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측의 문제도 같이 있다”며 소통의 문제를 지적했다. 정 씨는 “오타쿠가 자신의 관심을 바탕으로 잘 모르는 대중에게 올바른 정보와 흥미거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준전문가 집단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그러면 사회의 문화 스펙트럼이 더 다양해지고 선명해 질 것이다”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일본문화평론가 김봉석 씨는 “일본에서 여전히 오타쿠가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으나 점차 개선되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앞으로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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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여돼’의 전형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그림 |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오타쿠는 은둔형 외톨이와 동일시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김승주 씨는 “오타쿠 중 사회 부적응자는 극단으로 치달은 경우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잘못된 인식을 꼬집었다. ‘안여돼’와 마찬가지로 ‘은둔형 외톨이’ 이미지 또한 오타쿠에게 붙는 오해인 것이다.한편, 이 같은 부정적인 오타쿠 이미지는 일본 문화, 게임과 연결되기 때문에,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미를 밝히기를 꺼리기도 한다. 게임을 즐겨하는 필명 Mirai(24) 씨는 “누가 오타쿠라 하면 아니라고 거부한다”며 “오타쿠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피하는 편이 인간관계를 맺는 데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례는 다른 곳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필명 새얀(18) 씨는 “애니메이션의 ‘애’자도 모르는 후배들이 애니 감상부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주위에서 오타쿠라고 놀림 받았던 일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승주(대진대 일본학과) 씨는 “비주류 장르의 취미를 갖고 있으면 무조건 오타쿠라고 한다”며 오타쿠를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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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에는 계급이 없다
오타쿠로 몰리는 첫 번째 단서는 일본 문화다. Mirai 씨는 “반일 감정과 함께, 일본 문화가 10·20대로부터 유입됐기 때문에 (우리의 취미에 대해) ‘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깔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타쿠들은 취미에 사회가 부여한 상급과 하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터트렸다. 정웅모 씨는 “잘 사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면 모두 쓸데없는 유희로 치부하는 사회적인 경직성도 한 몫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타쿠라는 개념이 한국에 들어온 후 몇 년이나 지났지만 사회에는 여전히 오타쿠에 대한 거부반응이 존재한다. 새얀 씨는 “가치관과 기호는 1000명이 있으면 1000명이 다 다르다”고 말한다. 한 발 나아가 Mirai 씨는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다른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명제를 사회가 잘 수용하지 못해왔다”며 “서로가 서로에게 다른 것을 같게 만들도록 강요하는 폐단만 없어야 함”을 지적했다. 인터넷문화가 발전하면서 개인은 지난날보다 선택할 수 있는 문화 양식의 폭이 커졌다. 어느 때보다 열린 마음이 필요한 때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용운 씨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많아야 세상이 재미있다. 같은 사람만 있으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다만 서로 다른 사람들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개인의 다채로운 색깔이 인정받는 사회, 그 속에 오타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