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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어느덧 아침이다.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오늘도 우유 하나가 사뿐히 놓여 있다.우유 배달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공짜로 넣어주는 우유다.사실 남들처럼 돈을 내고 받아먹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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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어느덧 아침이다. 기지개를 펴고 일어나서 현관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오늘도 우유 하나가 사뿐히 놓여 있다. 우유 배달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공짜로 넣어주는 우유다. 사실 남들처럼 돈을 내고 받아먹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안되는걸. 건넛집의 외할머니와 손자 가정도 매일 이 공짜 우유를 받는 모양이다.1) 얼마 전 새벽 그집 앞을 지나다가 우유곽에 붙은 쪽지를 슬쩍 훔쳐보았는데 “사내아이 키우시기 힘들죠, 걱정마시고 드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여자아이 키우기는 힘들지 않은걸까? 나는 부모님이 아닌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다. 아침부터 머리는 복잡하지만, 흰우유는 언제나 상쾌하다. 그나저나 아주머니도 우유 배달을 하는걸 보면 넉넉한 형편은 아닐텐데 고맙고도 죄송하다. 요즘엔 네이트온에 들어가도 대화 할 친구들이 없다. 초등학교 동창인 석원이의 최근 화명은 ‘아들이랑 대화하기 위해 컴퓨터 배운 엄마는 우리 엄마밖에 없을걸’ …. 엄마랑 채팅하면 재밌겠다. 석원이는 원래 집에만 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놈이었는데 어느 날 엄마가 ‘안녕 우리아들~’2)하고 대화창으로 말을 걸어온 이후 아이가 180도 달라졌다. 이제 더 이상 밤늦게 컴퓨터를 붙잡고 있지도 않는다고 한다.photo1 황금같은 토요일 오후가 아까워 종신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녀석은 부모님, 누나랑 함께 사랑의 집으로 봉사활동을 나갔다고 한다. 주말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반나절을 보내는 종신이네 가족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육’ 을 실천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언제나 화목해 보이는 네명의 가족이다. 3) 엄마와 아빠, 누나와 남동생 – 우리집엔 없는 아빠, 남동생이란 구성원이 있어서 그런걸까? 집에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을 하던 중, 재밌는 기사를 발견했다. 악플이나 인터넷 명예훼손과 관련된 소송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변호사들이 더 이상은 먹고살기가 힘들다며 ‘가끔은 인터넷으로 배설욕구를 표출하는 것도 건강에 좋습니다’ 라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젠 누구도 인터넷 공간에서 욕설을 내뱉거나 가면을 쓰지는 않는다.4) 그러고 보니 나도 그 광고를 본 것 같긴 하다. 두꺼운 뿔테를 쓴 의사가 나와서 무서운 얼굴로 ‘화를 풀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생깁니다’ 고 엄숙히 충고를 곁들이는 장면이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그 의사는 예전에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으로 고기를 먹는 사람이 줄었을 때에도 광고 속에 등장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체에 위험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안심하고 드십시오!’5) 그 광고를 볼 때 마다 채식주의자인 우리 엄마는 채널을 돌리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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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나도 엄마가 다른 집 부모님처럼 토요일에는 나랑 봉사활동도 가고 이야기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엄마가 처음 이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을 때 우리 모녀는 얼싸안고 좋아했다. 성별, 장애, 학벌로 인한 차별이 전혀 없는 원점에서 경쟁이 시작된다고 면접 자리에서 다섯명의 간부들이 선글라스를 벗는 제스쳐를 취하며 한목소리로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흐를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묘하게도 선글라스를 벗은 간부들이 모두 중년의 아저씨들이었단다.6) 또각또각 하는 구두 소리가 들린다. 아마도 윗집의 미자이모가 나들이를 나가나보다. 나는 정말이지 요즘 미자이모네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이모는 결혼해서 아이를 네명 낳았는데 요즘 세상에 네명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주위의 걱정이 앞으로 두명을 더 낳을 거라고 한다.7) 요즘엔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자식을 낳는게 유행이라 정부에서는 너무 기쁜 나머지 세자녀 이상 가정에게는 지원금을 두둑하게 주고 있다. 학교에서도 형제 자매가 많은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은 어찌나 많은지, 난 정말 외동인 것만 해도 섭섭한데 여러모로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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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 네이트온으로 준호가 말을 걸어온다. 준호네 형이 공씨디와 공테잎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공장에 다니는데 누구도 불법복제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요즘 공장이 존폐위기에 놓여있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불법복제나 공유파일은 정말 먼 옛날의 추억일 뿐이다.8) 준호녀석이 실실거리더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얘기를 해주겠다고, 실화라며 재잘재잘 떠든다. 혹시 준호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선물한 목도리를 어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둘러주고 목도리를 받은 할아버지는 또 준호의 여동생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고 마지막에 결국 여동생이 아버지에게 그 목도리를 다시 둘러줬다는 얘기를 하려는 걸까?9) 요즘 목도리 돌려하기는 완전 유행이 되어버렸다. 버스 안에서 발을 밟으면 ‘데이트 신청 할껍니다~’ 하는 유행어10)가 한물 간 자리를 메우는 요즘의 트렌드라고나 할까. 정말이지 얼마 전까지는 남자들이 발을 일부러 밟고 나서 데이트 신청을 노리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버스 타기가 싫어지기까지 했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더랬다. 네이버 톱기사로 ‘전직 환경미화원, 일회용품을 대거 쓰고 불법 투기하다 발각’ 이라는 기사가 올라와있다.재취업을 위해 전국의 산지에 스티로폼과 일회용 종이컵, 비닐봉지 등을 뿌리고 다녔다는 내용인데 기사 밑의 댓글에는 온통 ‘ 사랑은 떠나도 종이컵은 남는다’11) ‘쓰레기는 죽지 않는다, 다만 재활용 될 뿐’12) 이라는 훈훈한 이야기들이 올라와있다. 그나저나 석원이는 아직도 엄마랑 채팅중인가? 저녁 때 엄마가 퇴근하면 엄마한테 읽어줄 편지나 써볼까. ‘ 안녕 엄마! 엄마하고 대화하려고 손으로 편지쓰는 법 배웠지~’


1) 2003년, ‘나누는 마음’
2 2005년, ‘당신의 아이가 당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3) 2004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육’
4) 2005년, ‘천의 얼굴’
5) 2004년, ‘육류소비촉진’
6) 2004년,’기회의 평등-색안경’
7) 2006년 ‘저출산 고령화사회’
8) 2004년 ‘불법복제 예방-점묘화’
9) 2004년 ‘소중한 가정’
10) 2005년 ‘타인에 대한 배려’
11) 2006년 ‘일회용품 사용자제-환경수명’
12) 2004년 ‘병들의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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