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선거는 ‘그들만의 축제’였던 것일까? 평소 ‘서울대 간판’에 지나치게 주목하는 경향을 보였던 기성 언론들이지만, 최근 몇 달 동안 이어진 총장선거와 총장임명 과정에서 빚어진 문제점들을 보도하는 그들의 태도는 냉랭하기만 했다. ‘국립’ 서울대학교의 3만여 명에 달하는 학생과 교직원을 대표하고, 연 4천억원 정도의 예산을 집행하는 ‘장관급 교육공무원’인 서울대 총장의 위상을 감안할 때, 그에 상응하는 언론의 사전 검증이나 비판 및 감시를 위한 노력이 거의 전무했던 셈이다. 이로 인해 이장무 교수(기계공학부)에 대한 총장 임명을 수십 일이나 지연시킬 만큼 정부 내에서도 논란이 됐던 이 교수의 조부 고 이병도 박사의 친일행적 문제는 대중들 사이에서 거의 공론화되지 못했다. 총장선거에서 대통령 임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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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4대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한 이장무 교수 |
지난 5월 10일, 제24대 서울대학교 총장 선거가 있었다. 결선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이 교수가 1위를, 조동성 교수가 2위를 차지했다. (『서울대저널』 2006년 6월호 참조) 해당 법규에 따르면 교육부가 교육공무원인사위원회를 거쳐 1위와 2위 후보 중 한 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고,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관련 절차는 계속 지연됐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이 교수 조부의 친일행적 문제를 거론하며 총장 임명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혔고, 이에 여론의 부담을 느낀 정부가 임명 절차를 미루고 있었던 탓이다. 결국 정부는 “조부의 친일 행적 문제가 총장 임명의 결격 사유는 될 수 없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그 이후 7월 2일 교육부의 임명 제청을 시작으로 11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19일 이 교수는 정식으로 서울대 총장에 임명됐다. 직선제 이후 서울대 총장의 후보 선출에서 임명까지 걸린 기간이 짧게는 10일, 길게는 한 달 남짓이었음을 고려할 때, 정부 내에서도 당시 총장 후보였던 이 교수의 조부 친일행적 논란이 불거지는 데 대해 적잖은 부담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이 총장의 조부, 고 이병도 박사는 누구?이번 이 총장의 임명 과정에서 친일행적 문제가 제기돼 논란이 된 고 이병도 박사는 널리 알려진 국사학계의 거두다. 7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심화 선택과목인 한국근·현대사교과서에 그는 ‘실증사학’을 창시하고 ‘진단학회’를 설립해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항한 민족사학자로 묘사돼 있다. 그는 광복 이후에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 대학원장, 문교부 장관과 대한민국 학술원 회장을 역임했을 만큼 우리 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사회 지도층 인사가 됐던 수많은 인물들이 그렇듯, 그에게도 ‘친일’의 꼬리표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70년대 이후 그의 학문적 성과가 재평가되기 시작하면서 그의 부끄러운 과거도 속속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첨병 역할을 했던 조선사편수회에 수사관보와 촉탁으로 상당 기간 근무했음이 드러났고, 최근 우리 상고사가 재조명되면서 일제에 협력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한 그의 행적은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친일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오르는 불명예를 안았다. 보수 언론이 형성한 ‘침묵의 카르텔’, 그 석연치 않은 배경이번 총장 선거와 임명 과정에 대한 기성 언론의 관심은 전반적으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대통령의 시시콜콜한 인사 문제에도 ‘코드 인사’ 운운하며 과민 반응을 보여 온 보수 언론들의 지나친 침묵에는 석연치 않은 배경이 있어 보인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는 총장선거 과정은 물론이고 교육부가 이 교수에 대한 임명 제청을 하기 전까지 단 한 차례도 당시 총장 후보였던 이 교수의 조부 친일행적 논란에 대한 기초적인 사실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부족하나마 의미 있는 문제제기를 던진 「한겨레」, 「세계일보」 등을 비롯한 다른 언론사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보수 언론들은 교육부가 총장 후보에 대한 임명 제청을 하고, 국무회의 의결이 통과될 즈음인 7월 초에야 그동안 후보자 조부의 친일행적 논란으로 인해 임명 절차가 지연됐다는 사실을 단신기사로 알렸다. 그리고 7월 21일, 이 총장이 서울대학교의 장래 계획과 법인화에 대한 입장 표명 등을 위해 언론사 인터뷰를 했을 때 밝힌 선대의 친일 의혹에 대한 불충분한 해명을 짤막하게 보도했을 뿐이다. (「중앙일보」 7월 4일자 ‘서울대 총장 후보에 이장무 교수’, 「조선일보」 7월 12일자 ‘이장무 서울대총장 국무회의 의결’,「동아일보」 7월 22일자 “서울대 법인화 우선 검토… 국제 하계대학 내년 신설” 등) 이에 대해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일차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사회에서 서울대 총장이 갖는 사회적 지위를 보수 언론들도 무시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보수 언론들이 서울대 총장의 조부 친일행적 논란에 대해 ‘총장의 사과가 필요하다’와 같은 입장을 표명하면 ‘자신들 설립자들의 과거는 얼마나 반성했느냐’는 역공에 직면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부메랑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수 언론들의 이른바 ‘친일 콤플렉스’가 이 총장의 조부 친일행적 논란에 대한 보도 자체를 주저하게 만든 배경이 아닌지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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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은 이번 이장무 총장 조부 친일행적 논란을 보도하는 데 극도로 말을 아꼈다. |
일부 인터넷 언론의 ‘총장 임명 반대’ 보도 역시 신중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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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카페 ‘2006 사이버의병’이 이장무 서울대 총장 후보 취임을 반대하며 내건 공지이미지글 |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는 6월 15일 ‘친일파 후손, 서울대 총장 임명 옳은가?’라는 제목의 기사로 당시 총장 후보였던 이 교수 조부의 친일행적 논란을 최초로 보도했다. 이 장문의 칼럼에는 ‘일제가 조선 총독부 중추원 산하에 급조한 조선사편수회에서 부역한 씻지 못할 죄를 지은 이병도 박사의 자손들이 당당하게 국립 중앙박물관장에 이어 국립 서울대학교 총장까지 석권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구구절절 드러나 있다. 참고로, 이 총장의 동생인 이건무 씨는 지난 2003년 3월부터 얼마 전까지 차관급 정무직인 국립 중앙박물관장을 지낸 바 있다. 또한 「오마이뉴스」의 7월 7일자 기사에서는 당시 총장 후보였던 이 교수의 임명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인터뷰하며 그들의 시위 모습을 담았다.하지만 직선제 실시 이후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후보를 총장으로 임명해 온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이 교수의 총장 임명 반대는 애당초 현실성이 부족한 주장이었다. 이른바 ‘선출적 정당성’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조부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손자가 공무담임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연좌제 금지에도 배치되는 일이다. 하지만, 일부 인터넷 언론이 성급하게 ‘총장 임명 반대’ 여론을 부채질한 것 역시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보다 성숙한 문제 제기가 부족한 언론 보도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이 총장 조부의 친일행적 논란, 매듭지을 수 있는 방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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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무 총장은 7월 21일 기자회견에서 법인화 추진 등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이 총장은 임명 직후인 지난 7월 21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언론사 기자가 조부의 친일행적 논란에 대해 묻자 “논란 자체를 유감으로 생각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암흑기를 지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객관적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답변은 이 총장으로부터 진솔한 답변을 듣고 싶어 한 대다수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와 시민사회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의 활동 등으로 다시금 고조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고려할 때, 이 총장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한 이 총장이 선거운동 과정과 취임사를 통해 피력한 바 있는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의무를 다하는 겨레의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민족에 대한 최소한의 사랑과 의무마저도 저버린’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 방 사무국장은 “선대의 친일행위로 인해 후손이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연좌제에 해당하며, 이는 인권침해의 측면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대학교의 수장이라는 엄중한 공직을 수행하려는 이라면 보다 철저한 역사인식을 가져야 마땅하며, 본인의 과오가 아닐지라도 공직자로서 선대의 친일경력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밝히는 것이 올바른 자세”라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는 또한 “공과론으로 비겁하게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면서 “예를 들어 노벨상 수상자가 도둑질을 했다고 죄를 사면해 줄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이는 상식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선대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만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는 제언이다.언론들도 문제 해결 위해 책임 있는 자세 보여야물론 이는 이 총장 혼자서 짊어져야 할 짐만은 아니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기도 하다. 어두웠던 과거를 뒤돌아 봄으로써 교훈을 얻고 보다 건강한 미래를 지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들도 이해관계 때문에 사안을 적당히 덮어 둠으로써 ‘몸조심’ 하려 하지 말고, 문제 제기를 통해 사건이 공론화되고 해결점에 다다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의 7월 24일자 칼럼 ‘김삿갓과 서울대 총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후대는 선대의 허물을 고스란히 속죄해야 할 법적 책무는 없다 하더라도 그로 인해 피해와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 도덕적 의무는 가져야 한다. 그 후대가 최고의 공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의 경우 자신은 반나치 레지스탕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유태인학살에 대해 무릎 꿇어 사죄했고, 시인 김동환의 아들도 부친의 친일행위에 대해 가족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하지 않았던가. (중략) 연좌제가 명실상부하게 철폐된 대한민국에서 이 총장은 김병연처럼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할’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언필칭 국내 최고의 대학이자 한국의 지성을 선도한다는 서울대의 총장으로서 마땅히 평균 이상의 역사의식과 도덕적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이총장이 주창하는 ‘21세기 지식혁명 선도대학’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역사와 도덕이 빠진 지식은 얼마나 공허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