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성, 진부하기만 하다고?
‘성(性)’은 논란을 일으키기에 딱 좋은 소재다. 게다가 ‘성’이란 단어에 어떤 수식어들이 붙느냐에 따라 ‘성’은 논란에 있어서 ‘일당백’을 자처한다. ‘청소년 성폭력과 성교육, 청소년 자위행위, 청소년의 성문화 등등’. 그 많은 수식어 중에서도 ‘청소년’이란 아슬아슬한 단어가 붙으면 성도 왠지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심각한 논쟁거리는 엄청난 양의 이슈와 진부한 논란지점에서 그만 시시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중·고등학생을 일컫는 ‘청소년’은 언제부턴가 이런 진부한 연극의 주인공이 됐다. 이 연극에는 성적으로 호기심 많은 중·고등학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성에 관련된 보호와 교육이 주된 플롯이라면 이는 충분히 진부하다. 그러나 여기선 진부하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 한다. 청소년과 관련된 많은 법에서 ‘청소년’의 정의는 다양하다. 청소년기본법상으로는 9세 이상 24세 이하, 민법 상으로는 미성년자라 일컬으며 만 20세 미만이지만 청소년보호법 상으로는 만 19세 미만,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상으로는 역시 만 19세 미만인 자를 ‘청소년’이라 말한다. 청소년의 범위가 이렇게 다양한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은 청소년이 단순히 중, 고등학생만의 대명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특히 청소년의 성과 직접 관련된 청소년보호법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사회 통념과 달리 청소년을 ‘만 19세 미만인 자’로 규정했다. 또한 올해 5월 개정된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서는 만 13세 미만인 자의 보호를 강화했다. 즉, 청소년의 성은 더 이상 중·고등학생만이 주인공인 무대가 아니다. 통념적으로 청소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던 아동은 법적 보호 차원에 명백히 포함되며, 요즘은 그 보호가 더 강화되는 추세다. 이는 아동을 성과 관련시킬 때, 그 방법이 거의 ‘보호’의 틀 안에서 이뤄짐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아동이 포함된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면, 단순한 보호의 틀 밖에서 이뤄지는 플롯이라면, 이제 연극은 진부할래야 진부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아동, 성적으로 ‘순수’하지 않을 수도
| 아이가 주로 바닥에 엎드려서 손으로 자동차나 여러 가지 물건들을 밀고 노는 걸 좋아하는데, 가끔씩 보면 자동차를 밀지도 않고 가만히 엎드려서 두 다리를 쫙 펴고 힘을 주고 있더라고요. 다리를 주무르면서 말을 시켜도 아랑곳하지 않고. 혹시나 해서 귀저기를 풀어봤더니 고추가 발기가 되어 있더군요. 이거 심각한거죠? |
| ###IMG_0### |
| 2004 한국 아동가족상담센터 |
한국 아동가족상담센터에 등록된 3세 가량의 아이를 둔 한 부모의 상담요청 글이다. 요즘 상담센터와 소아정신과 고민상담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와 관련해 소아정신과전문의들은 “아동들은 우연히 성기를 스칠 때 쾌락을 느끼고, 이로써 자신의 신체 일부분인 성기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즉 아동들도 성인과 비슷한 성적 쾌락을 느끼는 존재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이러한 성적 행동은 그 방법과 목적에 있어서 성인의 행동과는 다르다. 그들의 성적 행동은 자신의 신체를 발견하고 탐색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동의 자위행위를 이해할 순 있어도 아직까지 낯선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대생 정 모(서문 05) 씨는 “아동이 자위행위를 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서울대생 역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의 바탕에는 ‘아동은 순수한 존재’라고 규정지은 통념이 한 몫을 한다.
| ###IMG_1###” /> |
| 한 소년의 순수함을 보여주는 영화 <아이스케키> |
영화 에 등장하는 말썽쟁이 소년 ‘장한이’, 영화 에 등장하는 어린소년 ‘영래.’ 장한이는 아픈 형을 살리기 위해 생명수를 찾아 떠나고, 영래는 서울로 가는 차비만 있으면 서울에 있는 아빠를 만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순수함’으로 무장한 아동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이렇듯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흔히 아동은 ‘순수함’의 대명사다. 이렇게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어른들의 윤리의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성인의 전유물이라 여겨지는 자위행위를 아동과 동시에 떠올린다는 발상자체가 낯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동·청소년의 성은 ‘교육’과 ‘보호’가 최고?앞서 말했듯 아동의 성이 ‘보호’의 이야기가 아니고서 논의되는 것은 낯설다. 그러나 ‘낯설다’는 것은 동시에 아동에게도 성욕이 존재함을 인식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서 문제는 낯설고 당황스럽기 때문에 이것마저 ‘보호’와 ‘교육’의 틀로 넣으려는 사회적 대응이다. 즉 보호의 틀에서만 논해져서 낯설어진 아동의 성을 다시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재보호’하려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이에 대해 소아정신과전문의 김영화 씨는 “혼내거나 훈육하는 일반적 교육이 아니라 성기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을 바로 해주고, 얼마든지 그것에 대해 부모에게 물어 봐도 된다고 느끼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아동기의 성적 행위에 비해 중·고등학생의 행위는 그리 낯설지 않다. 청소년 시기에 큰 심리적, 생리적 변화가 일어남은 이미 모두가 아는 진부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보호, 교육의 틀 밖에서 이뤄지는 청소년의 성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변화가 보여 요즘 대중매체, 성교육과 같은 부분에서 드러나 큰 논란거리가 됐다. 사람들에게 청소년의 성에 대한 낯설음을 그러나 청소년 성의 진짜 모습을 가져다 준 것이다.
| ###IMG_2### |
| ‘성교육닷컴(www.sungkyo6.com)’의 메인사진 |
이런 낯섦의 대표로 논란 속에서 종영된 이란 드라마가 있다. 본 드라마의 소재는 ‘성교육닷컴(www.sungkyo6.com)’이란 실제 운영되는 홈페이지에 학생들이 직접 올린 고민, 질문을 토대로 했다.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지식을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의 고민, 질문들을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생각하게 했다는 점은 이 드라마를 이슈화하기에 충분했다. 의 정종연 PD는 “이것은 기존의 성장 드라마가 아니다. 성장 드라마는 청소년을 미완성의 존재로 보고, 끊임없이 계몽시키고, 이끌려 하고 있는 반면에 은 청소년을 있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청소년들의 시각에서 그들의 일상과 생각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자 한다”고 제작 취지를 밝혔다. 이 낯설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큰 호응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YMCA 청소년성문화센터의 김은주 씨는 의 의의는 인정하면서도 “요즘은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성교육이 에서 보여주는 솔직한 주제들과 거의 비슷하게 이뤄지고는 있지만 여기에서 다뤄지는 소재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며, 이 소재들을 모든 청소년이 경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며 그 선정성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아동과 청소년, 성적 주체성을 찾으려는 존재아동, 청소년을 ‘성적 주체’라 칭하기에 있어서 역시 낯설음은 존재한다. ‘주체’라는 단어에는 책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어야 하며 사회적 권력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의사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아동, 청소년을 성적 주체라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핵심은 그들이 성적 주체성을 찾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 성과 관련해 미완성의 존재로 인식되는 그들일지라도 적어도 성적 주체성을 찾는 존재인 점을 감안해, 그들을 항상 ‘교육’과 ‘보호’의 객체로 세워 놓아선 안될 것이다. 아동을 포함하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이 있다. 줄거리는 그들이 성적 주체성을 찾아 떠나는 실수 많은 모험담이고 결국 그 주체성을 인정받는다는 해피엔딩. 이 연극의 해피엔딩이 당연하고 진부하다고 여겨질 때 비로소 아동, 청소년의 성에 대한 무조건적 ‘틀’이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동, 청소년들의 성적 ‘주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많은 실수와 어려움을 가져오겠지만 적어도 사회가 만든 ‘틀’에 걸려 넘어지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