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한국 정치는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김종필에 의해 좌우된 측면이 크다. 이른바 ‘3김’이라고 불리는 세 정치인은 각자의 지역에 확고한 기반을 둔 정치 행보를 보여 지역주의에 기생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정치9단’이라고 불릴 만큼 능수능란한 정치력을 과시하며 한국 정치 전반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3김시대가 몰락을 고하다김영삼이 92년 대선에서 당선되고, 다음 대선에서 김대중과 김종필이 공동정권을 창출하는 데 성공하면서 3김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대통령 퇴임 이후 현실정치에 일정한 거리를 두며 세인들의 관심 속에서 서서히 잊혀 갔고, 양김의 정치적 영향력은 점차 사라져 갔다. 2004년 총선에 비례대표로 출마한 김종필은 자민련이 비례대표 의석 할당의 최저 기준인 3%의 정당득표율에 못 미치는 2.8%의 지지만을 받음에 따라 10선 고지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따라 현실정치 무대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이에 대해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2004년 총선에서 3김의 손때가 묻은 정당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반면 민주노동당은 급부상했다’며 3김의 몰락은 한국의 정치지형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지적했다.지역주의 완화 여부에는 의견 엇갈려 이미 2002년 대선 과정에서부터 3김, 정확히 말하면 퇴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제외한 양김의 정치적 위상은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 경선에서 영남 출신의 노무현 후보가 광주에서 압도적 지지를 얻어 결국 당내 후보로 확정된 사실이 이러한 변화의 신호탄이 됐다. 결국 본선에서도 노 후보는 민주당에게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영남지역에서 30%에 가까운 지지를 얻어, 3김시대 이후 공고해진 지역주의 정치가 타파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그러나 이에 대해 민주노동당 정책기획실의 한경석 국장은 “사실 지난 대선 역시 지역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다음 대선에서도 지역주의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며 일단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리 정치에서 점차 지역주의가 해소되고 정책 구도, 이념 구도가 대두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다크호스 등장으로 정치의 불확실성 커져 대선주자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노무현이 급부상한 지난 대선은 우리 정치에서 ‘다크호스’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한다. 3김이라는 지역 맹주의 지위를 가진 강력한 ‘거물’들이 사라지면서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백화종 국민일보 이사는 자신의 칼럼에서 ‘3김 시대가 끝나면서 유권자들의 특정인과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약해져 후보 예측이 어렵고, 지지율이 합당한 이유 없이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게 우리 정치의 한 특색으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정치가 이벤트화 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정치의 이벤트화’라는 비판은 감성 정치, 이미지 정치의 대두와도 연관이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는 TV 광고 등을 통해 자신의 서민적 면모와 진실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을 썼는데, 이는 한국 정치에서 ‘감성 정치’가 등장하게 된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열린우리당 부설 열린정책연구원의 공용득 책임연구원은 “정치는 기본적으로 이미지 싸움이라는 속성이 있으며 때로는 이미지가 정책을 압도하기도 한다. 이런 요소는 지난 대선에 이어 다음 대선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다음 대통령은 CEO형?다음 대선에서도 지역 구도가 어느 정도는 유효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이고, 다크호스의 등장 여부 역시 주목된다. 감성정치는 지난 대선에 이어 또다시 유권자의 선택을 자극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 가운데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이 유권자들의 CEO형 리더십에 대한 선호다. 서울신문이 차기 대선의 예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리더십으로 ‘국가경영능력’을 지목한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서울대저널』이 서울대생 4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이러한 현상은 현 정권이 양극화의 심화와 함께 드러난 민생 문제들에 대해 확고한 해법을 내놓지 못한 데 따른 민심 이반의 결과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CEO형 지도자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양극화에 대한 국민의 문제 인식이 CEO형 지도자를 갈망하는 형태로 표출된 것에는 일견 모순된 면이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차기 대선에서 유권자들의 이러한 성향이 어떤 선택으로 이어질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