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동네였던 난곡이 사라지고 있다. 비단 난곡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곳곳에서 ‘난곡들’이 사라지고 있다. 최신식의 아파트들은 하늘아래 첫 동네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이라도 하듯 높이 솟아 있다. 판잣집과 한숨들이 만들었던 가난한 스카이라인은 사라지고, 아파트와 빌딩들이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서울은 너무나 깔끔해 지고 있다.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일사천리로 진행된 재개발 도시정비 덕택에 순식간에 서울은 ‘가난한 사람이 없는 도시’ 로 변신한 것이다. 빈민 거주지는 꼭꼭 숨어라 그렇다면 고층빌딩과 큰길로 도배되고 있는 서울이 정말 깨끗해진 걸까. 서울대 도시공학부 정창무 교수의 말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 도시개발의 주목표는 ‘저밀 개발’이라고 한다. 도심에 많은 인프라를 구축해 효율을 높이는 고밀정책에 비해 도심에 공원이나 편의시설을 만들어 주변 거주환경을 보완하는 저밀개발은 주거공간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다. 주거공간의 감소는 집값 상승을 유도하고, 거주비 또한 상승시킨다. 이 과정에서 빈민들은 도시의 외곽지역으로 자연히 몰려갈 수밖에 없게 된다. 또한 서울시의 도시 재개발 역사에서 빈민의 주거는 항상 악화돼 갔다. 빈민들은 명목상의 주거복지정책에 의거해서 공공임대주택을 공급받지만, 거주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빈민들은 이전의 환경보다 더 악화된 반지하나 비닐하우스 촌에 정착할 수밖에 없게 된다. 빈민을 증가시킨 우리나라의 도시재개발 역사우리나라의 경우 도시화 현상은 일제 강점기 이후 서서히 이뤄지다가 1960년대 이후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공업화가 수반되지 못했던 60년대 이전의 도시화는 일제의 식민 정책, 8.15 해방 및 6.25 전쟁 등의 사회적 원인과 농촌에서의 인구유입으로 진행됐다. 60년대 이후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 노동집약적 산업은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을 증폭시켰고, 이는 도시의 주택 부족과 이주에 대한 고용기회의 부족을 낳았다. 그리고 이런 요소가 대규모 도시빈민의 출현을 야기시켰다. 1980년대에 들어서 서울은 행정구역의 확대로 더욱 팽창하며 이에 도시재개발사업이 실시된다. 도심재개발 사업으로 서비스업무기능의 고층빌딩이 들어서고, 주거지 재개발사업으로 불량주택의 개발과 부심의 아파트단지가 조성됐다. 이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높은 지대를 지불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빈곤 계층이 발생하고 빈곤계층의 집단 거주지인 도시빈민 주거지역을 형성해 나갔다. 1990년 이후 서울의 산동네는 급속하게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갔다. 도시빈민들은 공권력의 강압적 행정에 의해 20~30년에 걸쳐서 힘들게 일구어 온 삶의 터전을 피눈물을 흘리며 빼앗겼다. 사당, 봉천, 행당, 월곡, 청량리 등 서울시내 모든 산동네에서 주민들은 재개발계획에 대해 격렬히 저항했지만 철거용역반의 폭력을 통해 철저히 진압됐다. 재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원인은 거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주거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당초의 목적과는 달리 빈민 당사자들은 여전히 쾌적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산동네가 없어지고 들어선 아파트에 사는 원주민은 대략 20%정도다. 결국 80%라는 절대다수의 원주민은 또 다른 빈민촌을 찾기 위해 떠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물론 돈이 없어서다. 아파트를 살 돈은 물론이고, 사실은 유지비조차 낼 돈도 없다. 재개발 당시 정부 측에서 외치던 ‘주거 공간 정비사업’ 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재개발 딱지를 살 수 있는 중산층과 투기꾼과 부동산업자와 건축업자를 위한 것일 뿐. 개발이 도시의 숙명이라지만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강남에 비해 낙후한 강북의 개발에 힘을 쏟을 것이며, 이를 위해 뉴타운 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사업에는 주택재개발을 통해 난개발을 막고 주거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실상도 과연 그러한가? 뉴타운 사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것 또한 빈민들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빈민들은 분양권이나 입주권을 지급 받더라도 이를 팔고 다른 빈민촌으로 떠나야 한다. 여전히 빈민들은 투기꾼들의 먹이일 뿐이다. 또한 뉴타운 사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상지역을 서울 전역의 26개 지역으로 확대했는데 이는 ‘강북의 강남화’라는 모토 아래 도시개발의 문제들을 서울전역으로 확대하고 있을 뿐이다. 뉴타운 사업이 정말로 가난한 주민들을 위한 사업이라면, 빈민들이 살 수 있는 적은 평수의 임대아파트를 많이 짓는 등 다른 식의 개발이 모색돼야 한다. 낙후지역의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빈민들의 주거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도시 개발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