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 빈민주거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홍성태 : 기본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서울로 모여들면서 나타나게 된 것이 빈민주거다. 일제 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쳐 박정희의 조국근대화정책에 따라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그렇게 해서 청량리같은 많은 곳에는 자연발생적으로 빈민촌이 형성되고 강북 쪽에는 산동네들이 등장했다. 서울에 있는 산동네 중 난곡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원래 청계천변에 살던 사람들을 단체로 이주시킨 계획적 빈민주거지역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빈민촌과 정책적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나뉘어 있던 빈민주거는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서울시의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고 서울 시내에 택지를 늘리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변화를 맞게 된다. 먼저 평지나 들판의 빈민촌을 밀어내고 산동네, 미아리, 돈암동 등 오래된 곳들이 없어지고 그나마 남아 있던 곳들은 뉴타운 사업으로 사라졌다.저널 : 재개발과 빈민주거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홍성태 : 무엇보다도 이것이 사회적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인가, 공간 정의를 구현하고 주거권을 확장하는 방법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재개발 이후의 원주민 정착율인데 지금까지의 재개발 사업은 원주민 정착율을 평균 15%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빈민촌 재개발 사업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빈민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오히려 돈 있는 사람들의 투기가 되는 식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를 빼앗아서 중산층의 주거를 늘려주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투기세력이 천문학적 이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개발 세력들은 이러한 재개발을 통해 쉽게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개발을 주도한다.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0% 이상을 점하게 되면서 주택 보급률 자체는 105%를 넘어섰지만 자가점유율은 70%에서 55%로 줄어버렸다. 자기 집에 살던 사람들이 집을 잃게 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가시적으로 보이는 빈민촌은 없앴지만 새로운 빈민주거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저널 : 빈민주거의 음성화가 새로운 문제가 되는 것인가?홍성태 : 경기 활성화를 위해 건설경기를 촉진하다보니 가난한 동네에서 허름한 집을 짓고 살던 사람들이 재개발 이후 다른 곳에서 세입자로 살게 되고, 원래 세입자로 살던 사람들은 노숙자가 되든가 더 열악한 주거를 찾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숙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쪽방, 비닐하우스, 지하방, 옥탑방 등의 주거에 사는 사람들만 서울 인근에 150만 명이 넘는다. 서울 인구가 1100만명인 것에 비춰보면 엄청난 숫자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현상인데 빈민주거의 변화라는 것은 단순히 빈민 삶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작동케 한 힘이나 구조를 들여다 보면 곧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를 볼 수 있고 그런 문제들이 응축돼 드러나는 것이 빈민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저널 : 관이 주도적으로 빈민촌을 ‘밀어내’ 버리는 것이 가지고 오는 파장은?홍성태 : 빈민의 주거가 사라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여러 방면으로 큰 타격을 입히는데 빈민주거지역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값싼 주거공간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다양한 연결망을 맺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곳에서의 인적 관계는 곧 생존의 관계이며 온갖 삶의 정보들을 제공하고 정서적 유대와 만족을 가져다 주는 공간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카운슬링하는 그런 관계들을 하루 아침에 없애버리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굉장히 크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공간을 없앤다는 것은 이처럼 그들에게 복합적인 타격을 입히게 된다. 또한 도시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 본다면 6~70년대의 자연발생적 빈민주거나 도시의 변화상을 간직하고 있는 곳들을 열악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없애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저널 : 사실 현대사회에서 재개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기는 힘들다. 재개발의 발전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면?홍성태: 지금까지의 전면적인 뒤엎기식 재개발 대신 주거환경개량형 재개발 방식을 도입하는 쪽으로 나가야 한다. 기존의 주거를 좀 더 나은 쪽으로 바꾸는 방식이 기존 주민들을 그대로 살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2001년 국민의 정부 말기에 불량주택개량사업을 펼치겠다고 몇조원의 예산을 책정해 대대적으로 발표했지만 실제로 하나도 이뤄진 것이 없고 산동네는 계속 없어지기만 했다. 기존의 주택에서 문제가 있는 것을 보수하고 개량하는 식으로, 편의시설도 만들면 원래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쫓겨날 위험도 없다.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부자들의 배를 불리는 재개발 방식에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주택정책의 핵심은 중산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 돼야 하고, 그런 관점에서 기존의 빈민촌에 대한 개량 작업이 이뤄지면 이것 또한 하나의 주거문화로서 평가받을 수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가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을 철저히 환수해야 한다. 이것이 부동산 투기의 근원적 문제인데 이를 고치지 않으면 개발방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의미가 없다. 저널 :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주거 환경과 인식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홍성태 : 주거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겨 지는 것이 주거권이다. 하지만 주거권 문제보다 특수한 것으로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정주권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져야 한다. 정주권은 살던 곳에서 살던 방식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인데 ‘여기는 재개발 지역이니까 보상금 받아가라’ 는 식으로 강제수용해 버리는 것은 정주권을 생각하지 않은 행태다. 지금 대추리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그렇고 한양주택이 그랬다. 다수의 주민들이 개발을 반대하지만 공공의 목적이라는 이유로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악용되면 정주권이 보장되지 않고 세입자에게는 거주권도 보장되지 않는다. 이런 권리들이 올바로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 그 자체로 후진성의 지표라 할 수 있다. 인권에 관해서 아직까지 국가폭력이나 사회차별적인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거주권, 정주권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또한 토지나 주택이 개입된 문제를 재산권의 문제로 파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생태적, 문화적 권리로서의 거주권과 정주권을 인정하고 파악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저널 : 빈민주거 문제를 관통하는 가장 큰 핵심을 정리한다면?홍성태 : 정부는 주택 공급위주 정책을 실시해 왔다. 하지만 주택보급율과 점유율의 차이에서 알 수 있듯이 공급위주 정책은 실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혜택을 본 사람들도 많지만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도 수없이 많고, 터무니 없는 투기이익을 챙긴 사람들도 있다. 그로 말미암아 사회 전체의 주택 불평등, 주거 불평등 문제가 극단화돼 빈민주거가 기형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그 문제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전체 경제에 구조적인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동네를 밀어내고 들어서는 아파트촌은 한국적 토건자본, 천민자본, 투기자본주의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정책 이후 30여년간 그것이 서울 전역, 전국으로 확대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거시적인 관점에서 볼 때 빈민주거의 변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토건국가 한국의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