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코너]
난곡, 분노, 그리고 무너진 성
통학생의 은밀한 비밀 폭로

난곡, 분노, 그리고 무너진 성

11월 11일, 난곡의 어린이들이 서로가 받은 빼빼로의 개수를 자랑하던 날, 나는 난곡으로 향했다.그리고 출발 전에 나는 결심했다.내가 난곡에서 아무리 어려운 광경을 보더라도 나는 난곡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생각하겠다고.그리고 그 것을 내 기사에 담아낼 것이라고 결심했다.그래서 난곡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곳을 찾아간다기보다는, 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공원을 찾아가는 마음이었다.

11월 11일, 난곡의 어린이들이 서로가 받은 빼빼로의 개수를 자랑하던 날, 나는 난곡으로 향했다. 그리고 출발 전에 나는 결심했다. 내가 난곡에서 아무리 어려운 광경을 보더라도 나는 난곡을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생각하겠다고. 그리고 그 것을 내 기사에 담아낼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난곡을 향해 가는 내 마음은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곳을 찾아간다기보다는, 서울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하늘공원을 찾아가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난곡에 도착했을 때 그러한 나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어린 것인가를 깨달았다. 난곡을 미화하려고 했던 나의 의도는 오히려 난곡의 어두운 모습을 외면하려는 짧은 생각일 뿐이었다. 난곡은 절대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으며 난곡의 주민들은 결코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를 이어나가기 위해 처절했으며 난곡은 그러한 삶의 현장이었다. 난곡에 처음 도착하자마 나를 맞은 것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동화장실, 그리고 사람들이 먹다버린 밥을 먹다 나를 쳐다보며 짖는 강아지, 그리고 6시로 멈추어 버린 허름한 시계였다. 이러한 세 가지의 조화 속에 나는 내 생각이 얼마나 미숙한지를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앞에서 사죄를 했다.결국 난곡을 취재하면서 나는 쉽게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 없는 질문에 그 분들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렇게 어렵게 취재를 하던 중에, 한분의 할머니를 뵈었다. 할머니의 짐을 들어드리며 나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원래 난곡 지역의 유지였다. 그러나 갑자기 남편과 아들을 잃은 채 난곡에 오게 되었고 장애를 가진 딸과도 같은 난곡 안에서 조차 떨어져 살게 되었다. 지금은 딸의 집을 따듯하게 해주러가는 길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갈라진 손에 들린 것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판자였다. 할머니는 이것을 딸의 문 앞에 세우기 위해 높은 고개를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이유모를 분노를 느꼈다. 난곡을 가기 전에 가졌던 멍청한 생각은 버리고, 분노를 가지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그리고 며칠 후 빈민주거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을 듣기위해 인터뷰를 갔는데, 그 때 나는 다시 한 번 내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너는 분명 난곡에 가서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너의 대안 없는 분노가 무슨 소용 있는가”라는 교수님의 말을 들은 그 순간 나의 모든 것을 정지시켜야만 했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나의 분노는 어떠한 대안을 제시하였는가. 나는 결국 분노만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런 소시민이 아닌가. 그러한 내가 무슨 권리를 가지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가. 내가 힘겹게 쌓아왔던 나의 조그마한 성은 이러한 두 번의 충격에 무너져버렸다.이제 나의 무너져버린 성을 다시 쌓아야한다. 그런데 이 성은 다시 무너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쌓아야할 것이다. 그 것은 20대의 내가 저널에서 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일 수도, 아니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일 수 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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