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은 됐지만 해명이 필요하다
‘궁궐 청소’하러 갔다 ‘궁궐 보수공사’에 참여하게 된 사연
단풍연이 선사하는 가을빛 판굿

‘궁궐 청소’하러 갔다 ‘궁궐 보수공사’에 참여하게 된 사연

대한민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청소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이 하나 둘씩 있을 것이다.학기 초에 교실 환경정리 때문에 방과 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야만 했던 기억, 며칠 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이유로 수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화단 풀 뽑기며 복도 윤내기에 동원됐던 기억, 교실 청소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교장 선생님의 불호령에 괜히 담임선생님의 꾸지람을 덩달아 들어야만 했던 기억…….

대한민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청소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이 하나 둘씩 있을 것이다. 학기 초에 교실 환경정리 때문에 방과 후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야만 했던 기억, 며칠 뒤 장학사가 학교를 방문한다는 이유로 수업 중임에도 불구하고 화단 풀 뽑기며 복도 윤내기에 동원됐던 기억, 교실 청소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교장 선생님의 불호령에 괜히 담임선생님의 꾸지람을 덩달아 들어야만 했던 기억……. 이렇듯 우리에게 청소는 ‘다른 사람이 시켜서 꼭 해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기억돼 있다.하지만 굳이 남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도 집이나 교실, 길거리도 아닌 궁궐을 청소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아름지기’. ‘아름다운 우리 것을 지키고 가꾸는 사람들’의 줄임말로 우리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힘쓰고 있는 비영리재단이다. 기자도 하루 동안 아름지기가 되어 궁궐 청소에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난생 처음 참여하는 궁궐 청소, 순탄치 않은 시작이윽고 사전 연락을 통해 약속한 날이 왔다. 핸드폰으로 맞춰 놨던 모닝콜을 가볍게 무시하고 단잠을 잔 까닭으로 시간이 촉박해졌다.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기숙사를 나서, 출근시간대 만원 전철에 끼어 목적지인 창덕궁 앞 매표소에 도착하고 보니 아침 9시 10분이었다. 약속 시간인 9시보다 다소 늦게 도착한 기자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봉사단에 합류했다. 곧바로 아름지기에서 제공한 앞치마를 두르고 입장할 채비를 갖췄다. 이날 모인 사람은 50여명. 기업에서 온 30여명의 봉사자는 연경당을 청소하기로 하고, 정기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분들과 오늘 새로 온 몇 명을 비롯한 나머지는 내의원전을 맡기로 했다.내의원전은 개방 앞두고 막바지 공사중오늘 활동이 예정된 창덕궁 내의원전은 원래 성정각으로 불렸으며, 세자가 학자들과 함께 유교 경전을 공부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한 때 갑신정변 당시 수구파와 개화파의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으며, 1910년 이후에는 왕실의 궁중의료기관인 내의원 건물로 이용됐다고 한다. 그동안은 요일을 지정해 제한적으로만 개방해 온 관계로 일반인의 관람이 자유롭지 못했다.때맞춰 이곳에서는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건물도 사람 손때를 타야 하는 법. 워낙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건물이라 손봐야 할 데가 많은 데다, 곧 내의원전 개방을 앞둔 시점이라 창덕궁관리사무소에서는 막바지 보수 작업에 힘을 쏟고 있었다. 당연히 공사기간 동안에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아름지기 앞치마를 출입증 삼아 조심스레 건물로 들어갔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침 내부의 천장을 뜯어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photo1창호지 떼어내기,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오늘 창덕궁 환경 가꾸기 활동에 참가한 아름지기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반자’에 붙어 있는 창호지 떼어 내기. 반자는 창틀처럼 생긴 나무 재질의 사각 틀로, 전통 한옥에서 천장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동안 아름지기가 해온 일들이 주로 거미줄 걷어내기, 마루 광내기 등과 같이 건물의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들 오늘 주어진 임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금방 요령이 생기기 마련이라, 모두들 손에 공구를 하나씩 쥐어 잡고 제 역할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나무틀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 창호지가 쉽게 떼어질 리 없다. 물을 머금은 붓으로 반자에 달라 붙어 있는 종이를 한참 불린 뒤에, 그것을 끌로 박박 긁어 내자 그제서야 창호지는 반자에서 떨어져 나간다. 접착하는 데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옆에 계신 아주머니에게 여쭤 보니 “쌀풀 아니면 밀풀로 칠했을 거야. 창호지도 닥나무로 만든 거니까 나무에 쉽게 달라붙는 게 당연하지”라고 대답하신다. 잘은 몰라도 우리 조상들의 접착 기술에는 ‘왕자풀’이나 ‘오공본드’도 범접할 수 없을 만한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photo2다양한 사람들이 오고 가는 교류의 장이기도 해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니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이제 창호지 떼어 내는 일쯤이야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쉽게 여겨질 법 하니, 주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눌만한 여유도 생겼다. 가장 먼저 대학생으로 보이는 참석자에게 말을 걸었다. 케이블채널을 통해 아름지기 활동을 알게 돼 오늘 처음 참가하게 됐다는 이연(경희대 생물학과 05) 씨는 “문화재라고만 생각했던 궁궐에 내 손길이 닿는다니 기분이 좋다. 경치도 좋고 바람도 선선히 불어 놀러 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며 연일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다. 웃는 얼굴이 남들이 보기에 고된 일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했다.3년 넘게 아름지기 활동에 참여했다는 신선균(아름지기 지기장) 씨는 이제 그 손놀림에서 관록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는 “10여명의 지인과 봉사모임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름지기의 총 12개 조 가운데 하나를 맡고 있으며, 석 달에 한 번씩 참여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연경당에서 활동해 왔다”고 밝혔다. 아름지기 활동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고 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관리가 잘 안 되는 문제도 있어서, 특히 우리 문화재를 외국 사람들에게 알릴 때 떳떳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아름지기를 통해 문화유산 보존에도 동참한다는 뿌듯한 마음도 있어 앞으로도 계속 참여할 것”이라며 평소 느껴왔던 바를 스스럼없이 말했다.일행 중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팔을 걷어 부치고 열심히 작업을 돕고 계셨다.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한 아주머니는 남편의 퇴직 후에 부부가 함께 산행 등으로 시간을 보내다 인터넷에서 아름지기를 접하고는 오늘 처음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녀는 “처녀 때였던 1970년도에 와 보고 창덕궁에 처음 왔다. 부부가 시간이 있어 참여하게 됐는데, 세계문화유산을 가꿔간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어서 좋다”며 소감을 밝혔다. “젊은이들도 소중한 경험을 해 보길 바란다”는 당부의 말씀도 덧붙였다.photo3봉사활동 뒤에 주어진 ‘공짜 특별관람’의 재미도 쏠쏠해드디어 일사불란했던 작업이 끝나고 찾아 온 휴식시간. 창덕궁 관리사무소에서는 매주 창덕궁을 찾아와 환경 가꾸기 사업을 하고 있는 아름지기 회원들에게 무료로 특별관람구역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창덕궁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지라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구역이 매우 제한돼 있고, 출입이 통제된 몇몇 구역은 관람인원에도 제한이 있으며 그마저도 비싼 관람료를 내야 한다고.아름지기 권경미 간사는 몇 시간동안 이어진 작업으로 조금은 지쳐 있는 참가자들을 옥류천으로 안내했다.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 북쪽 깊숙한 곳에 흐르는 개울로, 인근의 태극정, 소요정 등의 정자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개울 한 가운데 놓여 있는 소요암에는 숙종의 친필시가 유려한 필체로 새겨져 있어 주변의 운치를 더해 주는 듯했다. 게다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 줄기 소슬바람이 계곡에 굽이쳐 흩어질 때 문득 느껴지는 가을의 정취란.photo4“아름지기는 문화유산 가꾸는 파수꾼이 될 것”권경미 간사는 봉사자들과 함께 창덕궁 후원을 거니는 중간 중간에 재단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름지기는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활동을 하는 비영리재단으로서, 현재 창덕궁 가꾸기 사업 말고도 4대궁 안내판 개선사업을 문화재청과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낙선재 조경사업과 정자나무 주변 가꾸기 사업도 하고 있으며, 안국동과 경남 함양에 전통 한옥을 건립하는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며 재단이 활동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있음을 알렸다.그녀는 “아름지기도 처음엔 창덕궁에서 휴지, 낙엽을 줍는 것에서 시작했다. 창덕궁 관리사무소에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 점차 궁궐 전각의 장판을 교체한다든지 도배하는 일도 맡겨 줬다. 지금은 창덕궁 보존과 관리의 많은 부분을 아름지기가 맡고 있는데, 다른 어느 나라에도 세계문화유산의 관리를 민간단체에 맡기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그만큼 아름지기의 열정과 전문성이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라며 아름지기에 대한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또한 “창덕궁에 직접 와 보면 밖에서 듣던 것과는 또 다르다. 스스로 느끼는 것이 많을 것이다. 창덕궁은 정궁인 경복궁과 달리 이궁이라 자연환경과 잘 조화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건축이나 조경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꼭 와 보길 바란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도 아름지기 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 비단 창덕궁 가꾸기 사업뿐만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것과 같은 색다른 체험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며 학생들이 아름지기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부탁했다.아름지기 일일체험, 독특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으리라이번 ‘기자가뛰어든세상’ 코너를 통해 애당초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남이 시켜서 해야만 했던 청소도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궁궐 청소가 평소에는 접할 수 없는 독특한 일이면서도 이런 메시지를 잘 담아내는 데 적합할 것 같아 기꺼이 일일체험을 자청했던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기자의 눈앞에 궁궐 보수공사의 현장이 떡 하니 펼쳐졌을 때, 그리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임무로 주어졌을 때 순간적으로 기자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벅차게 느껴졌다. 이건 ‘청소’가 아니라 ‘막일’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옆 사람을 곁눈질하며 방법을 익히고, 있는 힘 없는 힘 다 동원해 가며 일에 집중하니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 ‘처음 해 보는 일이고, 힘들 것 같은 일도 막상 해보면 어렵지 않다.’ 물론 즐거운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가장 든든한 뒷받침이 되는 것 같다.우리 주변의 문화재에 대해 ‘애착’을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도 이번 체험을 통해 얻게 된 크나큰 자산이다. 문화재를 사진으로만 보거나, 혹은 직접 찾아가더라도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내 손으로 문화재를 가꾼다는 것은 소중한 문화 체험이 될 수 있었다. 이 기회에 모두들 교통카드 한 장만 달랑 들고 창덕궁을 찾아가 보자. 3호선 안국역으로 가면 된다. 매주 첫째 셋째 화요일 아침 9시 ‘아름지기’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아참! 물론 인터넷 예약(www.arumjigi.org)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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