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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면 레이아웃) 11월 9일에 열린 사범대 노래패 ‘길’ 공연의 한 장면. ‘길’은 이 날 공연에서 뛰어난 가창력으로 관객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
관악 노래패들에게 올해는 뜻깊은 해다. 1977년에 관악에서 최초로 결성된 노래패 ‘메아리’가 3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격변기에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섰던 ‘메아리’의 탄생은 이 땅에 ‘노래운동’의 효시를 알린 기념비적인 사건으로도 기록된다. 억압과 저항의 시대를 끝내고 군부독재의 종식을 이뤄냈던 1987년 6월 항쟁은 관악에 ‘노래패 르네상스’를 가져다 줬다. 법대 노래패 ‘동맥’을 필두로 인문대와 사회대, 사범대, 자연대, 약대, 공대에 이르기까지 주요 단과대에 빠짐없이 노래패가 결성됐다. 이들이 불렀던 ‘광야에서’나 ‘타는 목마름으로’와 같은 민중가요는 해방을 갈망하던 그 시대 대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다양해진 민중가요의 스펙트럼… ‘민중가요는 진화한다’세월이 흐르면 강산도 변하고 사람들도 바뀌는 법. 지난 11월에 찾은 사범대 노래패 ‘길’과 법대 노래패 ‘동맥’, 자연대 노래패 ‘소나기’ 공연 현장에서도 민중가요의 변화된 모습들이 한껏 묻어났다. 과거 민중가요가 대개 투박한 투쟁가 풍이었다면, 2007년 겨울 관악 노래패들은 달라진 시대상에 걸맞는 다양한 고민들이 담겨 있는 민중가요들을 위주로 노래한다. 새터 공연에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길의 전부’, ‘노래여 날아가라’와 같은 제법 잘 알려진 노래에서부터 ‘소낙비 내리는 날’, ‘아름답게 보이는 위선’ 등의 조금은 생소한 선곡들도 눈에 띄었다.관악 노래패들은 때로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민중가요’를 뛰어넘는 색다른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왼손잡이’, ‘너에게 가는 길’과 같은 다소 세련된 노래들도 무대에 올랐다. 잔잔한 아르페지오 주법의 통기타 연주에서부터, 깊은 울림이 전해지는 드럼과 베이스 합주에 이르기까지 노래패들이 구사하는 반주 기법도 다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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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5일 열린 법대 노래패 ‘동맥’ 공연. 이날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100여명 가량으로, 두레문예관 공연장 객석이 빈틈없이 채워졌다. |
그들의 공연에는 ‘이야기’가 살아있다
노래패 공연은 대개 ‘이야기가 있는 노래극’의 형식을 띤다. 이는 노래패 공연이 다른 밴드 공연과 확실히 구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지난 달 무대에 올랐던 관악 노래패들도 어김없이 ‘스토리가 있는 공연’을 보여줬다. 노래패들은 노래 연습 못지 않게 공연의 기조를 논의하는 데도 많은 시간을 쏟는다고 한다. ‘길’은 사범대 노래패답게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119SKY테러사건’이라는 공연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성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재수생들이 명문 SKY대학을 테러한다는 내용으로 학벌사회와 입시중심 교육에 비판적인 시선을 던졌다. ‘동맥’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노래했다. 평화롭게 노래를 부르며 살던 동맥 마을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사람들 사이에 반목이 일어나고 서로 다투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사회적 압제에 의해 사라져가는 연대의식이 한 편의 이야기책처럼 그려졌다. ‘소나기’ 공연의 제목은 ‘쩐의 전쟁’이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돈만이 대접 받으며 곧 정의인 세상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대학생과 가정형편이 어려운 대학생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대조적으로 보여줬다. 노래패 공연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전체적인 공연 기조를 염두에 두고 노래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는 것이다. 그들은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이 얼음 같은 세상’을 깨고 ‘그대가 지쳤을 때 힘이 되고자’ 노래한다. ‘흐르는 세월에 역류한 젊음의 피땀이 지나간 계절의 노을로 빛날지라도’ 노래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때로는 ‘작은 용기조차 거대한 힘으로 가로막는 벽들 앞에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헐벗겨진 세상의 모든 모습’ 속에서 ‘조금씩 메마르는 우리의 생명’들을 위해 ‘청춘의 힘을 다해 평화의 바람으로’ 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는다.“노래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생각을 전하고 싶어요”사범대 노래패 ‘길’의 양창희(국어교육 06) 씨는 “우리의 생각을 노래와 연극을 통해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다양해진 대학 문화 속에서 민중가요가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어떻게 어필할 것인가는 언제나 고민거리”라고 말했다. 양 씨는 “과거 노래패들이 사회 참여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 노래패들은 ‘민중가요’ 자체를 계승하고 향유하는 목적이 더 크다고 본다”며 “함께 어울려 부르기 좋고, 메세지를 담고 있는 민중가요를 같이 배우고, 사람들에게 알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람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법대 노래패 ‘동맥’의 김힘찬(법학 06) 씨는 이번 ‘동맥’의 공연을 “우리 주위에 사라져가는 것들이 많은데, 그 때 우리들의 태도나 마음가짐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민중가요는 가사나 그것이 담고 있는 가치가 다양해서 그만큼 많은 사람과 공유가 가능한 음악”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과 고민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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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3일 열린 자연대 노래패 ‘소나기’ 공연 장면. 이날 공연에서는 하모니카 연주와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돋보였다. |
“생소하기보다는 신선했다”
올해 처음 우연히 노래패 ‘길’의 공연을 접했다는 김정현(교육학·국민윤리 07) 씨는 “민중가요를 처음 듣는데도 불구하고 가사가 담백하고 따라 부르기 쉬워 공연 내내 함께 흥얼거렸다”며 공연의 희망적인 분위기를 좋게 평가했다. 같은 공연을 본 노승환(국어교육 06) 씨는 “아마추어지만 조명이며 노래며 결코 프로들에 비해 공연의 완성도가 낮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대학노래패의 특성을 잘 살려 ‘교육’이란 주제를 다뤄 자신들의 전공에 대한 고민을 담았단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동맥’의 공연을 본 권구범(법학 07) 씨는 “공연 내용이 쉽게 접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를 다뤄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공연의 주제와 가사의 진실성을 높이 샀다. 하지만 그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틀이 오늘날의 현실과 좀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정규직 문제와 같이 요즘 현실에 좀 더 부합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관악 노래패의 오늘, 그리고 내일과거 대학 노래패는 대학 저항문화의 상징이었다. 각종 집회에는 노래패들의 공연이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독재 대 민주’의 구도가 설 자리를 잃은 이후 오늘날 대학문화는 학생들의 다양해진 관심사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점차 다원화돼가고 있다. 이에 따라 노래패의 역할과 위상도 함께 변해 왔다. 2007년 겨울, 관악 노래패들도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듯 다소 파격적인 선곡을 시도하기도 하고 신선한 기법들을 도입하는 등 관객과의 공감대를 늘리려는 노력들을 보여줬다. 과거 노래패에서 쓰지 않던 드럼과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사용해 민중가요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들도 엿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는 점도 있다. 바로 노래에 ‘생각’을 담으려고 애쓴다는 것. 관악 노래패들은 사회적 담론들을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레 풀어내며 관객과, 때로는 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