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내 어문계열 6개 학과(노어노문학과, 독어독문학과, 서어서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 학생들의 연극 축제인 ‘서울대외국어연극제’가 올해로 8회를 맞이한다. ‘인문학의 위기’와 ‘대학문화 실종’의 극복을 도모하고, 2002년부터 실시된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로 인한 각 과와 학생들 간의 괴리감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서울대외국어연극제’.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러한 시선에 대해,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총기획팀과 각 학과의 연출자들을 만나보았다. 왜 굳이 ‘외국어’로 연극을 하는 거지? 원어민도 아닌 학생들이 ‘외국어’로 연극을 한다는 점에 대해 달가워하지 않는 시선이 있다. 연극이란 관객과 연기자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매체인데, ‘외국어’ 대사는 관객들에게 난해함을 던져준다는 의견이다. 더욱이 그들의 ‘외국어’가 과연 정확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노문이슬반 연출자 안서현(노어노문 01)씨는 외국어로 연극을 하는 것이 오히려 외국 연극작품을 이해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된다고 답한다. “저희는 창작극이 아닌 기존에 있는 극작품을 공연합니다. 기존에 있는 극작품을 올린다고 했을 때 그 작품이 쓰여진 나라의 고유한 전통이 있습니다. 또한 어느 나라에나 극 전통의 흐름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문학적인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번역된 외국 연극작품을 대학로에서도 많이 공연하지만, 한국어로 번역된 공연보다 원어로 공연하는 것이 그러한 전통들을 살리는 데에 더욱 충실할 수 있습니다.” 안씨는 원어 연극이 그 나라의 시대와 문화, 그리고 정서를 재현할 수 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photo1총기획 노유니아(서어서문 00)씨는 ‘외국어연극제’에서 ‘연극제’보다는 ‘외국어’에 따옴표를 두고 싶다고 말한다. “외국어연극제에 올려지는 작품들 중에는 이미 번역되어 있던 작품들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초연하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연습기간 전부터 학부생들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교수님까지 모여 원서를 강독하고 직접 번역을 합니다. 이렇게 번역된 작품들에 대해서는 번역 후에도 교수님들과 대학원생들의 1:1 발음지도를 받습니다.” 이렇듯 작품선정에서부터 번역, 강독, 대본암기, 공연까지 거치고 나면 배우들의 외국어 실력은 한층 성장한다고 한다. 한 작품을 통째로 외워버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사실 외국어연극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내부에서도 ‘왜 꼭 외국어로 연극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 이후, 노어, 불어, 서어, 독어 같은 제2외국어 학과는 외국어연극제 인원충원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직 과가 배정되지 않은 학부생들에게는 자신의 전공도 아닌 외국어로 연극을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적은 탓이다. 하지만 연극에 있어서 이 시대의 관객들과의 호흡도 중요하지만, 그 작품의 배경과 정서를 얼마나 방향성 있게 이해하는가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살리기 위해서는 ‘외국어’ 연극제가 중요한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흰 프로가 아니잖아! 프로 연극인들이 아닌 건 사실이다. 연극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연극을 공부하는 연극학도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식 연극 동아리도 아니다. 어찌보면 한달 간의 외국어연극제를 위해 잠깐 뭉쳤다 흩어지는 프로젝트 그룹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마추어’들이 그저 즐기기 위해 가지는 쇼가 아니냐는 목소리에 총기획 노유니아 씨는, “프로들에 비하면 많이 미흡하겠지만 뒤처진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실제로 어문계열 6개 학과 중에서 노어노문학과, 불어불문학과, 그리고 영어영문학과가 각각 ‘에르떼수스’, ‘레쥐스트’, ‘번데기’라는 이름의 학과 내 극회를 가지고 있다. 나머지 학과들도 연극 관련 학회를 가지고 있으며, 외국어연극제를 앞두고는 조명과 분장 부문에 관련한 외부강사들을 초빙하여 워크샵을 가지기도 한다. 매일의 연습에서 스트레칭과 발성연습은 기본이며, 좋은 발성을 위한 복근훈련과 유연성 훈련까지 꼼꼼히 하는 것을 보면 과연 프로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훈련량이다. photo2노문이슬반 연출자 안서현 씨 역시 “우리가 공연하는 작품의 문화적 배경과 극 전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우리가 제일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라며 자부심을 밝혔다. 또한 ‘아마추어’연극이라기보다는 ‘학생’연극이라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학생들이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하기 때문에 곳곳에 학생들이 고민한 흔적과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프로적인 면모보다는 실험적인 측면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품의 참신한 해석도 가능한 것입니다. 외국어연극제를, 새로운 해석을 위한 시도로 봐주시고 그 가능성을 존중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프로’가 아니라는 것이 공연의 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대본강독은 물론이고, 작가 연구와 그 작가의 다른 작품 공부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 이들을 누가 단순히 ‘아마추어’라고만 부를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한 ‘육감만족’인가 photo36개 학과가 ‘함께’ 모여 ‘같이’ 한다는 의미의 ‘육감만족’은 올해 외국어연극제의 부제이다. 작년에 이어 ‘육감만족’이라는 부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 전의 부제들도 ‘6개의 시선’, ‘6개의 손가락’처럼 6개 학과가 함께 한다는 의미를 꼭 지녀왔었다. 총기획보 송희근(서문어울반 03)씨는 “외국어연극제는 6개 학과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개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외국어연극제의 의미를 밝혔다. 각각 연습은 따로 하지만 ‘외국어연극제’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연습 중에 점심을 함께 하기도 한다. 과별 모노로그 공연(연극에서 독백을 뜻하는 말로, 외국어연극제에서는 연습에 앞선 워밍업으로 볼 수 있다)이 있을 때면 관극도 하고, 연습 중반에 이르는 8월 초에는 ‘어울마당’이라는 전야제도 연다. ‘어울마당’에서는 각 학과의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서로의 연극을 보여주기도 하며 얼굴을 익힌다. 선후배 간의 교류 또한 외국어연극제의 큰 결실이다. 현재 대학사회 내의 위기의식으로 자리잡은 것 중의 하나가 선후배간의 괴리감이다.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로 인해 학과 체제와 반 체제가 뒤섞인 이후 전공진입 학생들과 기초과정 학생들 간의 교류공간이 줄어든 것이다. 총기획보 송희근 씨는 “외국어연극제는 학과 행사인 만큼 해를 거듭할수록 학과 선배들에게 물려받아야 할 것이 많습니다. 선배들은 그 동안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후배들의 연습실을 찾아 조언과 지도를 해줍니다. 그만큼 고학번과 저학번 학생들의 교류 기회가 많아지니 자연히 그들 사이의 단절감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더 큰 만족을 위한 시도는 계속된다. 쭈욱- 외국어연극제를 준비하는 사람들 내부에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면, ‘이게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라는 고민이었다. 어느 단체나 그런 고민이 있겠지만, 외국어연극제 구성원의 특성상 신입생 모집단위 광역화 이후 그런 고민은 더욱 커졌다. 아직 전공진입을 하지 않은 학생들이 학과 행사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는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올해 외국어연극제를 준비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올해의 외국어연극제 구성원들을 보면 스텝들은 대부분 03학번이고 배우들은 대부분 04학번이다. 순수 학부생들 만으로도 준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국어연극제가 몇 년 정도 더 지속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총기획보 송희근 씨는 “8년의 역사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외국어연극제도 그 동안 양적으로 질적으로 많은 성장을 일궈왔습니다.”라며, “외국어연극제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외국어연극제가 6개 학과만의 단합행사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외국어연극제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들, 외국어연극제를 인문대 축제 중 하나로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외국어연극제의 폐쇄성을 발견할 수 있다. 6개 학과의 단합과 고학번, 저학번 선후배의 교류증진을 도모하지만 아직 전(全)서울대인의 축제로 보기에는 부족하다. 외국어연극제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2년부터는 배우와 스텝 모집 단위를 6개 학과가 아닌 서울대학교 학생 전체로 확장시켰고, 9월 공연 전에 열리는 술시음회와 장터에서는 모든 학우들에게 각국의 전통 술과 전통 음식을 맛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시도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이며 계속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외국어연극제가 ‘외국어로 하는 연극제’의 의미를 뛰어넘어 대학사회 내의 하나의 공동체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