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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는 잠 못 이루고, 관객들은 숨죽이며…
로댕을 깨부숴라

공주는 잠 못 이루고, 관객들은 숨죽이며…

높이로 치면 우리학교 교문의 5배가 넘고, 넒이는 자그마치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무대.600여명의 출연진과 400여명에 이르는 국내외 제작스텝.1500여벌의 의상.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은 1년만에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연장’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작년 겨울, 공연계를 넘어 모든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이후 또 다른 대규모 공연 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높이로 치면 우리학교 교문의 5배가 넘고, 넒이는 자그마치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무대. 600여명의 출연진과 400여명에 이르는 국내외 제작스텝. 1500여벌의 의상.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은 1년만에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연장’이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을 준비를 마쳤다. 작년 겨울, 공연계를 넘어 모든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뮤지컬 이후 또 다른 대규모 공연 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에스트로가 작곡한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작곡가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 ~1924)는 66세에 암에 걸려 수술을 받으러 브뤼셀로 떠났다. 그의 가방속에는 오페라 의 피날레를 스케치한 36페이지의 원고가 들어있었다. 브뤼셀에서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심장은 이같은 부담을 견디기엔 너무 약해져 있었다. 밀라노를 떠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11월 29일 그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당시 푸치니가 남긴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 대본작가와 친구들에게 보낸 여러 통의 편지를 통해서도 푸치니가 이 오페라의 마지막 장면을 위해 바친 땀과 열정, 운명적인 고뇌를 모자람 없이 짐작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그의 건강은 수술을 통해서도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고, 결국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오페라 의 마지막 2중창의 완성을 보지 못한 채 푸치니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남긴 스케치를 가지고 마지막의 2중창과 피날레의 미완성된 부분을 작곡한 것은 그의 제자 프라노 알파노(Franco Alfano)이다. 그는 푸치니가 남겨놓은 23페이지 분량의 단편적인 스케치를 바탕으로, 앞선 장면에서 제시된 몇 가지 동기들을 활용해가며 이 거대한 오페라를 마무리지었다. 1926년 4월 25일 밤, 밀라노의 스카라 극장에서 이 작품이 초연될 때,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관객들이 류의 죽음을 애석해하는 장면에 이르자, 지휘봉을 놓고 무대 정면으로 돌아서서 “마에스트로가 쓴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라고 말했다. 관객들은 말없이 일어서서 극장을 나갔다. 공연은 엄청난 성공이었다. 푸치니가 마지막 사랑의 2중창을 미완으로 남겨 놓은 표면적인 이유는 후두암에 따른 건강악화였지만, 푸치니의 권위자 모스코 카너를 포함한 많은 푸치니 학자들과 전기작가들은 “사랑의 듀엣”이 미완성으로 남은 이유를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결국 천성적으로 비극작가일 수 밖에 없었던 푸치니로서는 오페라의 마지막을 카타르시스(katharsis, 비극의 정화) 대신 사랑의 희열어린 승리로 끝낸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의 정신세계 범위 안에선 수용하기 힘든 문제였다는 것이다. 푸치니는 비극의 작곡가였다. 그의 12편의 오페라 가운데 진정한 코미디는 오직 한 편뿐이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 역시 하나뿐이다. 그러나 에선 “사랑의 듀엣”이 드라마의 절정이며 카타르시스가 되어야 했다. 원작에는 없으면서도 전형적인 푸치니적 헤로인이라 할 노예 류의 죽음 장면의 경우는 멜로드라마의 대가답게 완숙한 작곡 솜씨로 빠르게 마무리를 지었으나, 류의 죽음 다음에 전개되는 두 주인공 투란도트 공주와 칼라프 왕자간의 피날레 2중창의 작곡은 결국 완결짓지 못했다. 푸치니로서는 완전히 자신의 정서적 영역 바깥에 있고 자신의 인격과는 조화되지 않는 이같은 듀엣을 작곡한다는 것이 심리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푸치니 연구가들의 의견이다. “색채로 역사를 서술하고 음악으로 동서양과 고금을 관통할 것” 오페라는 이탈리아 말로 ‘작품’이라는 뜻이다. ‘음악으로 된 작품’이라는 뜻의 Opera in musica의 준말로 이 말은 17세기 중엽, 오페라가 발생하고 나서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장르의 명칭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오페라가 처음 나왔을 때는 Dramma per musica, 즉 ‘음악을 통한 연주’ 로 불리었는데 이는 ‘오페라’라는 명칭보다 새 장르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바그너는 ‘오페라는 연극의 한 형태’라고 규정지은 바 있지만, 오페라에서 연출분야가 발달한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나온 현상이다. 조명, 무대 장치, 의상과 같은 시각적인 면에 점점 관심이 집중되는 경향에는 1980년대 이후 널리 보급된 영상매체가 큰 작용을 했다. 무대장치는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디테일이 현란한 쪽으로 가고있다. 연출에 있어서도 악보에 철저한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는 기발한 시각적 아이디어를 많이 보여주는 사람이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화려하고 완벽한 무대를 연출하기에 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투란도트는 전설적인 시대의 중국을 그리고 있어 까다로운 고증을 거치지 않고도 연출가의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 수 있다. 투란도트 공주의 도도함은 몇백 계단의 거대한 세트로 무대위에 구현되며 주된 배경이 되는 궁궐의 장엄함은 그 규모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전설 속의 중국’이라는, 푸치니의 이전 작품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몽환적인 배경은 스스로의 예술가적 자질에 큰 회의를 품게 할 정도로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그 무엇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것이었다. “색채로 역사를 서술하고 음악으로 동서양과 고금을 관통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힌 장예모 감독의 연출이 주목받고 있는 것도, 그가 영화 작업에서 보여주었던 시각적인 즐거움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구축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관심때문이다. 월드컵의 열기여, 다시 한번! “월드컵이 열렸던 곳에서 공연하는 상징성, 혹은 흥행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겠지만, 야외에서 공연되는 것이 음악적 요소에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무대를 맡은 고광진씨는 음향부분에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무대와 조명뿐 아니라 음악으로도 완벽한 공연으로 평가받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페라가 대중적으로 크게 환대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번 공연을 통해서 오페라가 스포츠 경기와 마찬가지로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공연 자체의 질에 대비해 보았을 때 만만치 않은 관람료가 아닌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소위 ‘예고편보다 재미없는 공연, 돈이 아까운 공연’은 되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렇지만 결국 공연의 성패는 공연이 치러지는 단 한순간에 결정되는 것이기에 공연에 거는 기대는 투란도트가 낸 첫 번째 수수께끼의 답에 있지 않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투란도트 ; “그것은 어두운 밤을 가르며 무지개빛으로 날아다니는 환상. 모두가 갈망하는 환상. 그것은 밤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아침에 되면 죽는다.” 칼리프 ; “그것은 희망 (La Spren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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