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현 자(서울대 강사, 종교학) 신화는 아마도 인류의 삶의 시작과 함께 존재해 왔으며, 인간 삶의 종말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리스에서는 기원 전 5-6 세기 경부터 인류와 생사를 같이 하며 그 삶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신화를 ‘야만적이고 황당무계한 이야기’, ‘파렴치하고 무도한 이야기’, ‘상식을 벗어난 기이한 이야기’로 취급하면서 문화의 영역 밖으로 추방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신화는,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엽기적인’ 이라는 수식어가 줄곧 그 곁을 따라 다니며, 배제되어야 할 ‘야만’으로 간주되었다. 주로 도덕성을 기준으로 한 신화/종교, 합리성을 기준으로 한 신화/과학, 객관적 사실성을 기준으로 한 신화/역사의 편가르기에서 나온 신화에 대한 이러한 가치폄하는 신화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연구하려 했던 20세기 초반의 신화학자들의 신화관에서도 나타난다. 열 개의 태양을 쏜 예( ), 자식을 지옥 속에 가두는 하늘 신 우라노스, 아버지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낫으로 자르고 자식들을 삼키는 크로노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외디푸스, 오누이이자 부부인 이시스와 오시리스, 황소와 사랑을 나누는 미노스 왕의 부인 파시파에, 이들의 사랑의 결실인 반인반우(半人半牛)의 괴물 미노타우로스는 9년마다 한 번씩 7쌍의 소년소녀를 집어삼키고, 등등. 자연에 내재한 온갖 힘들이 신으로 추앙되며, 인륜에 어긋나는 경악할 일들을 신들과 신화 속의 인물들은 태연하게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그런 신들이 때론 인류의 조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고대신화와 원시신화 곳곳에 나타나는 근친살해와 근친상간의 모티브들 및 인간과 동물의 혼륜은 신화를 읽는 이들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도덕적 견지에서 보면 분명 싹 쓸어 없애버려야 할 후안무치의 이야기들이며, 합리적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이 황당한 망상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낸 정신은 분명 도덕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병든 정신이자 자연계와 인간계를 구별하지 못하는 무지몽매한 정신, 본능적 욕구에 따라 움직이는 정신임에 틀림없다고 초기 신화학자들은 판단했다. 인도-유럽어에 대한 관심이 비등하던 19세기 후반에, 한편으로는 역사·문헌학의 전통 속에서 고대 문명 사회의 신화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속학자나 인류학자들이 채록한 무문자사회의 이른바 원시신화들을 대량으로 접하면서, 문화적 실재로서의 신화의 변별적 특징들을 파악하고 신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독특한 정신을 이해하려는 학문이 ‘비교신화학’이라는 이름으로 탄생한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신화학자들도 그들의 시대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으므로, 대다수의 학자들은 신화를 지적으로 덜 발달된 미개정신의 산물로 간주했다. 무질서하고 무분별한 본능과 감정들을 통제하여 질서와 평정을 유지하도록 해주는 것은 이성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성의 활동이 바로 인간성의 척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황당무계한 패륜의 이야기들은 고대정신이나 원시정신의 창조물이 아닌가.1) ‘지적으로 열등한 미개정신의 산물인 신화’라는 인식의 바탕에는 감성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합리주의적 사고, 그리고 인류의 과거 조상들과 현대의 무문자사회 구성원들을 지적 미개인으로 취급하는 오만한 현대 서구인들의 자문화중심적 지적 우월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발견이 인간 정신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꿈과 상징에 대한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고, 신화를 그것이 형성된 고대문화나 원시문화의 틀 속에서 그들의 사고방식과 언어를 통해 이해하려는 종교학자, 인류학자, 역사학자, 고고학자들의 지난한 노력들이 이어지면서, 20세기 초·중반 경부터 신화에 부정적 평가를 덧씌우게 만든 신화의 특성들이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되기 시작한다. 종교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원시, 고대 신화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단지 비합리적인 것들을 인간성의 차원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끊임없는 방법론적 성찰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으며 원시·고대 사회들의 신화를 분석하면서, 그들은 20세기의 서구인들 못지 않은 고도의 지적 정신을 만났으며, 인간사회와 자연계를 상호관련된 유기체로 간주하는 환경생태적 사고를, 이성과 감성이 함께 작동하여 어우러지는 조화의 세계를 만났다. 신화적 사고는 지혜가 아직 열리지 않아서 인간과 동·식물을 뒤섞어 같은 종(種)으로 혼동하는 미개 사고가 아니었다. 원시인이나 고대인들은 ‘같은 속(屬)에 속하는 종(種)들 사이의 미세한 차이까지도 구별할 수 있는, 생계 수준을 넘어서는 세밀하고 정확한 식별력’을 가지고 있었다. 신화 속에서 사람의 이야기가 동·식물이나 천체, 그 밖의 자연현상들과 결부되어 즐겨 다루어진다면, 그것은 신화적 사고가 사회집단과 자연 종(種)과를 동일 종으로 혼동해서가 아니라, 한편으로는 사회집단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성격들과 차이들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 종(種)의 수준에서 드러나는 여러 특질과 차이들을 깊이 파악하여 이 두 다른 질서의 세계를 서로 대응시켰기 때문이다.2) 또 신화 속에서 신들의 모습이 종종 동·식물이나 천체 또는 자연현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자연을 인간의 인식이 그 변화무쌍한 움직임의 원리를 속속들이 다 파악할 수 있는 대상, 그리하여 지배, 착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그 무한하고 다양한 힘들에 의존해 있는 경외의 대상, 인간의 이성으로는 그 무궁한 변화의 원리를 다 알 수가 없는 신성한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3) 신화는 추상어나 개념어, 일반어보다는 주로 하늘, 돌, 불, 바람, 번개, 물푸레나무 등과 같은 구체어들로써 표현된다. 한때 신화적 사고의 지적 열등성의 징표로 간주되었던 신화언어의 이 특징이4) 오히려 하나의 이야기 속에 과학, 철학, 역사, 종교, 문학, 예술이 모두 녹아드는 다차원의 세계를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냉혈동물 파충류인 뱀이 자기 꼬리를 입으로 물고 있는 우로보로스 이미지는 대극이 합일되는 정-반-합의 철학을, 갈등을 화해시키는 조화의 윤리를 말하며, 주기적으로 허물을 벗는 뱀의 생태는 싹이 터 성장하여 결실을 맺고 죽었다 소생하는 식물의 삶을, 차고 기울었다 다시 생겨나는 달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것들은 또한 죽은 후 영적으로 재생하여 인간의 유한한 조건들을 벗어나고자 하는, 즉 영생을 추구하는 종교적 욕구와도 친연성이 있다. 그리하여 뱀, 식물, 달의 이미지와 영생의 관념이 서로 연결된다. 마치 인간의 몸이 이제는 더이상 영혼을 타락시키고 구속하는 족쇄가 아니라, 그 움직임을 통해 오히려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을 이해할 수 있듯이, 신화는 미개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정신의 총체적 활동의 결과물이므로 우리는 그 구성 요소들의 연결을 추적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은 다양한 질서의 세계들을 어떻게 서로 연관시켜 작동시키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르네상스 이후부터 현대까지 서구 사회를 지배해왔던 정신적 흐름은 아시다시피 경험주의적 인식론, 실증주의 역사관 등, 이른바 합리주의적 사고에 토대를 둔 사상조류들이었다. 그러나 극단적인 과학적·이성적 사고는 20 세기에 그 한계와 위험을 곳곳에서 노출시켰다. 산업자본주의의 확대와 과학 기술의 발달이 초래한 대량 학살의 전쟁과 무자비한 환경파괴, ‘이성적 존재인 인간’ 이라는 반쪽자리 모습의 인간 이해와 이로 인한 성(性)차별, 인종 차별 등등. 그래서 지난 세기를 마감하면서 세계의 언론들은 20세기를 ‘피와 눈물의 세기’라 명명했으며, 과거 몇 세기가 가져다준 이러한 문명의 질곡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는 온갖 종류의 재앙이 일상을 위협하는 ‘위험한 사회(risk society)’에 살고 있다. 합리주의적 사고가 가져다 준 인류의 여러 갈등과 자연생태계 파괴는 서구인의 지적 관심을 감성의 영역, 상상의 영역으로 돌렸으며, 다가올 미래의 환경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대안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게다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동안 인류학의 발달이 가져다준 성과가 역사학의 주 관심을 엘리트문화에서 민중문화 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들이 그동안 무시되어 왔던 비이성적 영역, 일상생활의 영역 쪽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렸으며, 서구인들로 하여금 환경파괴를 피할 수 있는 대안들을 자연과 어울려 살았던 과거인들의 삶 속에서 찾으려 애쓰게 하였는데, 신화는 이 여러 영역을 동시에 아우르고 있던 것 중의 하나였다. 이성과 감성의 작용은 상호무관한 것으로, 영혼과 육체의 실체는 각기 다른 것으로 간주했던 근대정신, 메마른 이성이 직면했던 한계와 폐해는 오늘날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만든다. 다행히도 뇌과학의 발달 덕분에 이제 우리는 지성의 산실로만 생각했던 인간의 두뇌가 사실은 본능, 감정, 이성과 관련된 세 개의 뇌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뇌의 활동과 무관하지 않은 본능적 몸짓, 희로애락의 감정, 냉철한 지성이 모두 상호관련되어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뇌의 이러한 구조는 몇 천년 전 인도의 요기들이 이미 통찰했던 뇌의 구조와 일치한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그 결과 고대인들의 삶이 근대정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소위 근거없는 주술이나 미신에 함몰되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5) 게다가 때 맞춰 컴퓨터공학의 발달이 한 곳에 앉아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므로, 과거에는 접촉이 어려워 영역별로 분리되어 이루어지던 여러 분야들 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온갖 질서의 혼합으로 인해 미개성의 표시로 인식되었던 통합적 사고양태가 역설적이게도 첨단과학시대의 사고양태, 전 시대 문명의 질곡을 해결해 줄 대안적 사고양태와 유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의 규범들을 벗어나 마음껏 상상의 공간을 즐기고자 하는 욕구에서 생겨난 새로운 놀이문화인 온라인 게임은 모든 현실적 제약을 초월한 내용들로 가득찬 신화를 불러들이고 있다. 21 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이 까닭없이 고대 신화에 열광하겠는가? 주석) 1) 오늘날 현대신화를 거론하며 우리 시대의 신화를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신화’하면 원시 신화나 고대 신화를 떠올리며, 서구에서 통상 신화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연구대상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학자들 사이에서 고대 신화는 대개 고대라 일컫는 역사적 시기의 신화들을 의미하며, 원시 신화는 현대의 무문자 사회에서 발견되는 이야기 전체를 의미한다. 이처럼 흔히 원시신화니 고대신화니 하는 것들은 시대적 구분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고대의 문헌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 전해지는 특정 유형의 문학형태 ㅡ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ㅡ를 고대 신화로, 그리고 현대의 무문자사회에서 사람들의 입과 귀를 통해 전해지던, 또는 전해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원시 신화로 이해하더라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Claude L vi-Strauss, La Pens e sauvage, Paris Plon, 1962, p.53. 3)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현자, 「잃어버린 낙원을 찾아서, 레비스트로스와 엘리아데의 신화」, 『宗敎學硏究』, 第20輯, 韓國宗敎學硏究會, 2001년 참조. 4) 고대사회나 원시사회를 연구한 많은 학자들은 이 사회들은 현대 문명사회에 비해, 또 그 사회 내에서 개별적 특수어들에 비해, 일반어나 추상적 관념어가 덜 발달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리하여 추상적 관념어의 빈곤을 종종 원시인들의 지적 열등성을 말해주는 근거로 내세우곤 하였는데, 일반어 또는 추상적 개념들은 구체적인 실재물의 속성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을 때, 또 그 속성들을 구별할 수 있기 위해 보다 잘 깨어있는 관심을 가졌을 때 생겨나기 때문이다. Claude L vi-Strauss, 앞의 책, 1962, pp.3-5 참조. 5) 인도의 요가 전통에서는 인간의 뇌를 하뇌, 중뇌, 상뇌로 나누어, 하뇌는 생명활동과 관련된 것, 중뇌는 감정과, 상뇌는 지성 및 영성과 관련된 것으로 설명해왔다. 이러한 설명은 뇌를 파충류 뇌, 변연계, 신피질 뇌로 명명하여, 첫 번째는 생명활동을, 두 번째는 감정조절을, 세 번째는 이성과 논리를 관장한다는 현대 뇌과학자들의 설명과 일치한다. 뿐만 아니라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가교를 건설하는 뇌과학과 생물학의 연구자들은 상반되는 두 생리상태 및 심리상태에서 작용하는 두 호르몬의 상호작용을 음양의 원리로 설명하기도 한다. 뇌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다양한 감정, 고통과 호르몬 분비작용과의 상관관계에 관해서는, Jean-Didier Vincent, Biologie des passions, Paris, Odile Jacob(Point), 1986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