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심심한데 만화나 볼까?

해방이후 좋은 우리 만화 1위, 2위.문화예술을 접하는 시각이 ‘순위’라는 계량적인 지표에 좌우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다양성과 창의성을 가능한 무한대로 발산해야 할 영역에서 무엇인가 기준을 두고 서열화한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그래도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된다면 초보들에게 있어서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고 해도 박스 오피스, 플래티넘, 베스트셀러 같은 기준보다는 전문가들의 심사에 더 믿음이 간다.

해방이후 좋은 우리 만화 1위, 2위?

문화예술을 접하는 시각이 ‘순위’라는 계량적인 지표에 좌우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가능한 무한대로 발산해야 할 영역에서 무엇인가 기준을 두고 서열화한다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된다면 초보들에게 있어서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고 해도 박스 오피스, 플래티넘, 베스트셀러 같은 기준보다는 전문가들의 심사에 더 믿음이 간다. 말머리가 좀 궁색하다. 사실 대중에게는「악동이」로 많이 알려진 이희재이「간판스타」와 국가대표급 만화가 허영만의「오! 한강」두 작품은 97년 미술 잡지인 『가나아트』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 ‘평론가들이 선정한 해방이후 좋은 우리 만화 10편’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한 작품이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기자는 즉시 책대여점에 들러 「오! 한강」을 비롯한 순위 안에 들었던 만화들을 빌려 봤었다. 단, 「간판스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1위인 작품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 조금 크다싶은 만화가게는 모두 들러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절판되었나보다 하고 그냥 넘어가버렸다. 그것 말고도 보고 싶은 만화는 쌓여있었으니까. (아직도 보고 싶은 건 많다) 그렇게 5년이 지나 올해 초 서점 「그날이 오면」에 들러 책을 사려는데 계산대 옆에 쌓여진 신간들 중에서 「간판스타」가 확 눈에 들어왔다. 88년에 나와 96년에 소량 재간되었다가 절판되었던 이 작품이 2001년에 복간되었던 것이다.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음은 물론이다. 「오! 한강」은 어지간한 동네 책방에 가면 갖춰 놓고 있다. 빌려 보는 사람은 많은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오! 한강」은 87년, 「간판스타」는 86년부터 88년까지 발표된 단편들을 단행본으로 엮어 88년말에 출판되었다. 생각해보면 대략 15년 전이니까 「드래곤볼」보다 약간 일찍 나온 셈이다. 출판 당시부터 두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오! 한강」은 민감한 시대 상황 속에서 처음으로 시도되었던 이데올로기 만화였고, 「간판스타」는 짙은 사회성에다 풍부한 서정성을 담아내는데 성공한 작품이라 큰 호응을 얻어 3일만에 초판 1만부가 모두 팔려나갔다. 하지만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어르신’들의 불편한 심기로 이 두 작품은 ‘성인용’ 딱지를 부여받아 – 연재되었던 잡지도 『선데이서울』류의 잡지였다 -「드래곤볼」 10분의 1만큼도 못 알려지게 된다. 대기업 계열이었던 출판사는 반응이 좋았는데도 재판을 찍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 현대사와 산업화의 그늘을 담다 「오! 한강」은 해방직전부터 87년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화가 이강토와 그 아들 이석주 2대에 걸쳐 다루고 있다. 해방부터 유신시절까지는(1권~3권 중반) 이강토, 80년대 민주화를 이루어내기까지는(3권 중반~4권) 이석주 각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소작농의 아들 강토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상경을 하여 좌익 청년들과 어울리다 남로당계열의 열렬한 공산주의자가 되어 혁명을 추구하지만 6.25때 포로가 된 후 박헌영의 숙청 소식을 듣고 남한에 남는다. 그렇게 현실 정치의 술수 앞에서 혁명의 신념을 잃어버린 허망함에 강토는 평범한 화가의 길을 가는데, 우연히 만난 죽산 조봉암으로 인해 다시 열정을 불태우다 이번엔 독재정권의 압제로 깨끗이 희망을 접고 냉소적으로 미술에 몰두하게 되는 사연이 첫 번째 이야기라면 두 번째 이야기는 그 아들 석주가 80년대 초반부터 87년 민주화를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다. 사랑과 이념에 고뇌하는 이야기가 거침없는 40년의 세월을 훑어 내린다. 「오! 한강」이 김세영이라는 스토리 작가와 함께한 대하(大河)만화라면, 「간판스타」는 빠른 성장을 이룩하고 시름 놓던 80년대 사회를 무게 있게 담아 놓은 단막극 모음이다. 몇 년 만에 귀향하여 동네 사람들의 칭송과 부러움을 받는 경숙이가 사실은 유흥업소의 ‘간판스타’라는 씁쓸한 반전을 보여주는 「간판스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환경미화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박만서씨의 소박한 삶이 처참하게 짓밟히고 다시 싹틔우는 너무도 슬픈 「새벽길」, 떳떳하게 살아가려는 의지가 현실적으로 장애가 되더라도 더 굳세어지는 「민들레」, 딸부잣집 천덕꾸러기 막내딸의 고운 심성이 빛나는 「김종팔 씨 가정 소사」외 「성질 수난」, 「운수 좋은 날」, 「승부」 등 모두 7개의 단편만화가 타이틀 「간판스타」이름으로 한 권에 묶여져 있다. 세미나 커리로, 교양서적으로 손색없는 만화 작품들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은 관악의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을 할 때마다 제도권 교육에서 외면당한 진짜 현대사를 꼭 공부하라는 말을 한다. 지극히 옳은 말이라 생각되어 책을 찾다보면 주위에선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청년을 위한 한국 현대사」같은 책들을 권해주곤 한다. 기자도 작년에 그러한 책들을 선배로부터 선물 받아 세미나라는 걸 하면서 하도 지루한 생각에 「오! 한강」같은 책들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재미있어 쉽게 읽히고 고민의 깊이가 결코 얕지 않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다룬 아트 슈피겔만의 만화「쥐」만큼이나 훌륭한 작품이라고 믿는다. 만화라는 핸디캡 때문에 「오! 한강」과 「간판스타」는 지금까지 손해 본 것이 무척 많았다. 이희재씨는 어느 한 인터뷰에서 ‘만화가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후졌지만 대중들에게 향유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를 인정하고 새로운 매체가 대중과 가까워지고 무르익으면 취급해줘야 한다’ 고 털어놓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학우들에게 강력히 권하고픈 만화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고 ‘가볍게’ 만화 한편 머릿속에 넣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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