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이 아닌 폭력, 데이트 성폭력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 하나.성폭력은 낯선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그러나 실제로는 전체 성폭력 사건의 70-80%가 피해자가 아는 사람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특히, 20대에 겪게 되는 성폭력의 경우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피해자는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상처를 받게 된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 하나. 성폭력은 낯선 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 성폭력 사건의 70-80%가 피해자가 아는 사람에 의해서 발생한 것이다. 특히, 20대에 겪게 되는 성폭력의 경우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더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은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피해자는 모르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과는 또 다른 차원의 상처를 받게 된다. 그 중에서도 데이트 성폭력은 신뢰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의 애정까지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상처가 더욱 크고 그 처리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데이트 성폭력은 남녀 쌍방이 이성애의 감정이 있거나 그 가능성을 인정하고 만나는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10∼20대에 많이 발생한다. 가해자와의 사적인 관계 때문에 피해 당사자조차 성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법적인 처벌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성에 대한 그릇된 인식과 함께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전통적인 여성성·남성성 또한 데이트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요인이 된다. 우리 사회에는 성폭력은 남성이 성욕을 통제하지 못해서 발생한다는 그릇된 통념이 퍼져 있다. 그러나 성폭력 사례를 살펴보면 남성이 우발을 가장한 체 계획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일으킨 경우도 많다.(한국 성폭력 상담소) 실제로 70%이상의 남성들이 ‘성충동을 자제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다. 성충동을 충분히 자제할 수 있으면서도 여성을 ‘정복’하는 것에 대한 사회 전반에 깔린 허용적 분위기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남성성,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성도 한 몫을 담당한다. 데이트 성폭력은 TV, 영화, 대중가요, 소설, 잡지, 만화 등의 매체를 통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에서는 데이트 성폭력을 성애화, 낭만화 하기도 한다. 철진 :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끝까지 달라붙을 거다. 철진 : 애들아, 나 오늘 빠다 넘어뜨릴 거다. 여자한텐 우리형처럼 저돌적으로 접근하는 거야.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 중에서) -글자크기 작게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의 한 부분이다. 철진은 자신을 봐주지 않는 빠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넘어뜨리겠다’고 큰 소리 친다.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행동이 성폭력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데이트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을 정당화하려고 하며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이라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 번 여성의 몸을 가지고 나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순결이데올로기가 이를 든든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아래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A씨는 집안 어른의 중매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어른들의 성화로 몇 번의 데이트를 했으나 이상하게 그가 싫었다. 어느 날 A씨가 그만 만나야겠다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는 마지막으로 교외로 드라이브나 가자는 제의를 했다.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순순히 차를 탔다가 강제로 순결을 빼앗겼다. 그는 그런 행동을 한 후 A씨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의 차를 탔던 자산이 미워 죽어버릴까 자취를 감추어버릴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더럽혀진 몸을 가진 여자가 어디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할 수 없이 그 사람과 결혼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성폭력 상담원 훈련』에서 재편집) – 글자 크기 작게 데이트 성폭력은 때로는 낭만적 사랑으로 왜곡되기도 한다. 지혜안의 만화 ‘에스힐름 이야기’는 성의 영주 루트가 결혼식을 맞은 이본느에게 초야를 강요하여 자신의 여자로 만들어 버리는 내용이다. 만화에서는 이본느의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로워하는 루트를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내었다. 만화는 이본느가 루트의 사랑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행복하게(?) 끝이 난다. 낭만적으로 묘사된 성폭력 앞에서 우리는 흔히 낭만 속에 내재된 성폭력을 간과하고 오히려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매체 속에서 보여지는 가해자의 애틋한 모습에서 죄를 탓하기보다는 동정으로 감싸안으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이 실생활로 이어져 데이트 성폭력을 바로 보는 데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는 환생으로 이어지는 사랑을 다룬 다소 이색적인 멜로 영화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인우의 친구 대근은 인우에게 여자 친구 태희가 확실하게 넘어오게 해야 한다며 “찍어!”라고 충고한다. 어떡하면 쉽게 여자를 여관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지도 친절하게 덧붙이면서. “야, 너 그거 무시 못한다-. 그건, 신의 뜻이야! 생각해 봐. 여자한테만 처녀막이 있는 이유가 뭐겠냐? 하나님이 좀 생각이 많은 분이시냐? 남자랑 여자랑 공평하게 만들 생각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남자한테도 총각막 같은 거 하나 씌워 놓으셨겠지. 더구나 태희 같이 결벽증 있는 애한텐 그게 직방이라니까!”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대본 중에서)-글자 크기 작게 재밌다고 웃어넘기기 쉬운 부분이지만 지독한 남성주의를 엿볼 수 있다. 대근의 말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인우. 그러나 대근의 충고와는 반대로 태희에게 자고 싶다며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태희는 “나도-.”라고 대답한다. 데이트 성폭력에서 지나칠 수 없는 또 한가지는 동의의 문제이다. 대체로 성폭력과 성관계는 ‘동의’의 여부로 구분되고 있다. 대부분의 데이트 성폭력 가해자들은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밤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성관계를 원한다는 뜻이 아닌가?’, ‘여관까지 같이 갔었다.’ 등을 내세우며 피해자도 암묵적으로 동의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암묵적인 동의는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인우와 태희는 함께 여관으로 간다. 그러나 함께 여관을 갔을 지라도 마음이 변하면 성관계를 거부할 수도 있다. 단지 함께 있고 싶어만 할 수도 있다. 또, 간단한 스킨쉽 만을 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은 남녀간에 일어나는 은밀한 것이며 성과 관련하여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것(특히 여성들에게)을 금기시 해 왔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성관계가 제대로 된 의사 소통 없이 어림으로 이루어지게끔 했고, 이것은 종종 성폭력으로 이어졌다. 무성적 존재로 요구되어진 여성이 위기 상황에서의 공포, 모멸감, 무력감 등을 극복하고 ‘no’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또한 포르노그라피 등에 의해 전달된 잘못된 성지식은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의 ‘no’를 ‘yes’로 받아들이게 한다. 남성들은 “성관계를 요구할 때, 여성들은 대부분 ‘좋아’하면서 응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여성의 ‘싫다’는 큰 의미로 전달되지 않으며 침묵은 동의로 여겨진다,”라고 고백한다. 남녀 모두 성적 경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것이다. 성관계는 동의를 넘어선 ‘자발성’의 문제다. 단순히 ‘했다’, ‘안 했다’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행위의 가정과 결과에 대해 얼마나 성숙하게 처리했느냐가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그저 묵묵히 있었다거나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동의한 것은 결코 아니다. 제안에 대한 동의도 중요하지만 자발적인 행동이었는가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데이트 성폭력은 단순한 폭력, 범죄를 넘어서서 한 남성과 여성의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만을 주장하기 이전에 서로를 존중하고 의견을 나누려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 더 이상 성에 대한 생각을 감추려고만 하지말고 성적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로서 당당하게 표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아무리 깊은 애정도 성폭력으로 이어지게 되면 그것은 결국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폭력’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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