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세이 비누로 세수를 하고, 엘라스틴 샴푸로 머리를 감고, 오전에 오기로 한 웅진코웨이 아줌마를 기다려 정수기 필터 교환을 하고, 어제 한 빨래 걷어 다리미로 다리고, 유리창 좀 닦다가 “참, 나의 꿈도 소중해” 하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적어도 TV광고를 통해 본 이영애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읽어 봤음직한 이 글은 누군가가 여러 광고에 등장하는 이영애의 이미지를 이어 쓴 ‘이영애의 하루’ 의 일부이다. 다른 CF스타들의 이미지들을 붙여 놓아도 그럭저럭 재미있는 또 다른 하루가 나올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하루는? 눈이 가는 곳마다, 발이 닫는 곳마다 같은 의미에서는 아니지만 우리의 하루 역시 엄청나게 많은 광고로 둘러싸여 있다. 버스나 전철 속에서, 모니터 앞에서, 혹은 손에 든 잡지나 신문 등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수많은 형태, 다양한 종류의 광고를 접하게 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아침에 깨어나서 밤에 잠들기까지 알게 모르게 약 3천여 개의 광고를 접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숨쉬는 공기가 산소와 질소와 광고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에서 광고는 생활에 매우 깊숙이 들어와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광고를 접하고 사느냐가 아니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그 광고들이 우리의 생활에, 나아가서 사람들의 의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다. 가! 가란 말이야! 한 여배우가 행복한 표정으로 말한다. “여자라서… 너무 행복해요.” 어떤 업체의 냉장고 선전이다. 즐겁게 요리를 하고있는 주부가 보인다. 느닷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응, 난데.. 먼저 저녁 먹어”. 실망하는 아내의 모습. 한 회사의 조미료 선전이다. 이 외에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떠올릴 수 있는 광고에서의 전형적인 여성상은 많다. 아이를 안고 이유식을 고르고 있는 엄마에서부터 열심히 집을 청소하는 주부, 바쁜 가족을 성실히 뒷바라지하는 모범적(?)인 아내에 이르기까지… 여기서, ‘한석규의 하루’를 써본다면 어떨까? 그 하루는 아내의 맞은 편에 앉아서(아내는 빵에 버터를 바르고 있다.)신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여느 남자 배우들의 하루는 술 마신 뒤의 피로를 줄이기 위해, 혹은 피곤한 몸을 달래기 위해 드링크류를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까? 여성은 광고 속에서 흔히 사회적 기능을 갖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광고에서남성들은 기획적, 이성적인 면이 부각되는 반면 여성은 보조적이며 종속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여성은 종종 어린아이처럼 재현되거나 어린이들과 함께 등장하여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비추어지며, 광고에서 전개되는 이러한 고정 관념은 소비자에게 전형적인 여성상이나 남성상을 심어 준다. 자부심이 다릅니다? 한편, 하나의 제품이 판매되는 ‘상품’이 아닌 ‘가치’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가구에서부터 옷이나 신발, 담배, 심지어 그냥 사먹는 비스킷에도 ‘정통 유럽풍’ 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다. 이동전화 앞의 세 자리 번호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자동차는 탈 물건이 아니라 지위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살고 있는 집도 거주공간이라기보다는 품격을 나타내는 지표인 것처럼 광고된다. 생활광고의 경우, 일상생활의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가 자신의 준거 집단으로 삼는 표준형 혹은 이상형의 생활 양식이나 가치를 지향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광고에서 제시하는 그 가치는 우리사회에 실제 존재하는 모순을 덮어 버리고 감추어 버린다. 제품을 사서 소비함으로써 그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광고하지만 그 사회적 불평등은 소비로 결코 해결 할 수 없다. 광고 비평의 한계 광고가 현재 사람들의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고, 또 그래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더구나 그릇된 관념, 가치들을 생산해내고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비평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광고는 광고주가 광고비를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광고주 없이 광고란 것이 존재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의 모든 방송사, 언론사들의 제정의 막대한 부분을 담당하고있는 광고주의 광고에 대해 비평을 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광고는 원래가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만들어졌고, 현대 사회에서의 광고는 단순히 제품 판매 촉진의 역할을 넘어 한 기업 자체의 이미지나 경쟁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광고주는 자신의 기업홍보나 상품 판매에 최대한 효과적일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광고를 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광고를 놓고 이렇다, 저렇다 내지는 이래라, 저래라 하는 비평 혹은 요구를 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다. 광고의 사회적 책임 “광고는 상품을 판매하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더 의의 있는 일을 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베네통 광고물의 제작자인 올리비에로 토스카니의 말이다. 실제로 베네통은 일련의 광고를 통하여 인종문제, 환경문제, 생명 문제 등을 소재로 반자본주의적 성격 혹은 진보적인 성격을 강조하였고, 사회적 금기의 담론화를 시도하였다. ‘박카스’ 광고 제작자들은 ‘지킬 것은 지킨다’, ‘여긴 우리자리가 아니잖아’ 하는 광고들에 대한 놀랄 정도의 반응으로 다음 광고를 제작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고 한다. 모든 광고가 이처럼 파격적으로 사회적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하기를, 혹은 캠페인 성 공익광고 같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현대사회에서 광고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 광고가 하고있는 역할과 그 영향 등을 누구보다도 신중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인식하고 있을 광고주나 광고 제작자들이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생각을 좀더 키웠으면 하는 것이다. 광고 소비자빠르게 팽창하고 발달하고 있는 광고 산업에 비해 아직 광고 비평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고 광고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소비자들 역시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비평하는 것 만큼 광고를 비평하는 것은 어색하고 어쩌면 별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 할 지도 모른다. 사실, 소비자들은 그 제품을 구매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행동으로 광고에 직접적인 의사 표현을 하는 셈이긴 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그것 외에도 광고에 대해 또 다른 의사 표시를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럴 필요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 소비자들 역시 수동적으로 광고를 보고, 수용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광고 안의 여러 의미구조들을 파악해 내고 비평할 수 있다면 보다 더 발전적인 광고 문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