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싸이코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했다. 그러나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 비롯한 매체에서 싸이코 드라마가 심리치료의 도구로 소개되면서 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 싸이코 드라마는 루마니아 정신과 의사로부터 시작된 집단 심리치료의 한 방법으로, 최근 이를 무대화한 공연이 많아지는 추세다. 서울대에도 싸이코 드라마를 하는 동아리가 있다. 이 동아리는 싸이코 드라마가 흔치 않았던 40여 년 전에 심리학과 소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사회대가 광역화된 이후에 심리학과 내부의 소모임에서 다양한 구성원을 가진 동아리로 탈바꿈했다. 오는 9월 23일, 24일 양일간 두례문예관 공연장에서 싸이코 드라마가 무대에 올려진다. 올해로 이 공연은 34회 째를 맞는다. 여름 내내 땀 흘려 공연을 준비 중인 디렉터 이지호(경제03)씨, 팀장 이상진(심리04)씨와 싸이코 드라마 동아리의 일원인 조효정(경제04)씨를 만나서 싸이코 드라마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봤다. 싸이코 드라마는 심리 치료의 한 방법 기자ㅣ 싸이코 드라마가 아직 생소한 분야라고 생각되는데, 싸이코 드라마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이상진(이하 팀)ㅣ 싸이코 드라마의 정의는 딱딱하게 말하자면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 행동적 문제를 연극의 형식을 통하여 탐색, 접근, 치료, 통합하려는 집단 치료의 한 방식’입니다. 가끔씩 TV에서 방영되는 심리치료극을 생각하면 됩니다. 기자ㅣ 싸이코 드라마를 기획한 의도는 무엇인지요? 디ㅣ 저희 동아리에서 서로 공감하고 소통해 보기 위해 기획했어요. 그런 자리가 밖에서는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잖아요. 함께 하다 보면 안에 있는 감정들이 올라와서 해소되곤 합니다. 팀ㅣ 원래 싸이코 드라마는 심리치료극 인데 우리가 하는 것은 그것과는 좀 달라요. 서로의 마음을 들어보고 이해해보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연 전 준비과정 들여다보기기자ㅣ 지금 공연 준비는 어느 정도 진행 된 상태인가요? 디ㅣ 전체공연은 몸풀기-마음풀기-상황극-본극-나누기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본극은 즉흥극이기 때문에 바로 시작하면 진행이 원활하지 못해요. 드라마 공간이 창조되어야 하거든요. 그것을 형성하는 과정이 사전마당이 되는거죠. 사전마당이 바로 몸풀기와 마음풀기입니다. 현재는 몸풀기 정도 준비가 되어있어요. 본극은 따로 발성연습 정도 밖에는 준비할 수 없지요. 마음풀기도 따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긴 마찬가지죠. 극 자체가 즉흥극이니 사실 준비가 어느 정도 됐다고 정확히 말할 수 없겠네요. 기자ㅣ 방학동안 연습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디ㅣ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저희는 그것을 ‘텔레’ 라고 부르는데요. 이것이 방학동안의 가장 중요한 연습이죠. 이번 9월 26일에 출발하는 T-GROUP이라는 훈련을 통해 더욱 업그레이드 시킬 예정입니다. 기자ㅣ 본 공연의 5가지 과정 중, ‘몸풀기’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디ㅣ 동아리 자체에서 연습 할 때는 체조 등으로 놀이를 해요. 공연은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마임을 준비해서 같이 따라하는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타대 동아리도 대부분 그런 식으로 진행하고 있구요.기자ㅣ ‘상황극’에서는 무엇을 하며, 상황극이 공연 전체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하나요? 디ㅣ 디렉터들이 상황극을 위해 감정과 관련된 즐거움, 공포 등 몇 개의 테마를 잡아요. 간단하고 짧게 대본을 짜는 편이죠. 다른 동아리에서는 구체적인 상황을 설정하기도 합니다. 마음풀기로 감정들이 올라오면 상황극을 통해 그 감정들을 직접적으로 건드리고 공감을 이끌어내서 관객들이 본극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합니다. 조효정(이하 조)ㅣ 구체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도 상황극으로 의미가 있지만, 저희는 추상적인 장면을 만들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한 테마 당 두세 명 정도가 나와서 본극 하기 직전에 상황극을 보여줘요. 주인공을 관객 중에 선정 photo2기자ㅣ 본극은 어떤 순서로 진행되나요? 디ㅣ 관객 중에 주인공이 선정되면, 주인공이 자신의 속마음을 그 자리에서 표현해요. 그리고 운동경기의 리플레이처럼 다시 표현해 봐요. 처음에 표현했던 것과 다르게 혹은 같게. 기자ㅣ 싸이코 드라마는 주인공을 관객 중에서 뽑는다고 하셨는데 주인공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디ㅣ 사전마당을 하면서 관객 중에 마음속에 표현하고 싶은 것이 생긴 사람들을 앞으로 초대를 해서 얘기를 들어 보는 식으로 선정해요. 지원자가 여러 명일 때는, 다른 관객이 많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한 사람을 선정하는 식입니다. 기자ㅣ 싸이코 드라마에 주인공 외에 보조자아가 있다고 알고 있는데, 보조자아는 어떤 것인가요? 디ㅣ 보조자아도 있고, 이중자아라는 것도 있어요. 보조자아는 주인공이 극을 진행하는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물이나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죠. 보조자아는 연기력이 뛰어날 필요가 없어요. 연기를 너무 잘하면 주인공이 마음을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이중자아는 주인공의 속마음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이야기하는 역할을 합니다. 당사자가 그것이 맞다면 그것을 반복하고 아니라면 고쳐서 이야기 하는 거예요. 기자ㅣ 보조자아와 이중자아가 정해져 있는 건가요? 디ㅣ 보조자아와 이중자아는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따로 정해진 것이 아니에요. 주인공이 느끼기에 자기 속마음을 잘 풀어줄 것 같은 사람, 자기가 생각하는 사물(인물)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그 역을 맡게 되요.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주인공이 동아리 부원 중에 찾아보고 없으면 관객 중 한 사람이 그 역할을 합니다. 머리의 기억은 지우고, 마음의 기억은 남겨라photo3기자ㅣ 공연내용을 비밀에 부치는 ‘묵계’라는 게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의미를 가진 약속인가요? 팀ㅣ 싸이코 드라마는 주인공이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잖아요. 말하기 힘든 마음 속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극이 끝나고 나서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면 주인공이 상처를 받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이 끝나고 ‘머리의 기억은 지우고, 마음의 기억은 남겨 갑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요. 느꼈던 마음 속 따뜻함은 기억하고 풀어놓은 사람의 이야기는 잊자는 의미죠. 디ㅣ 싸이코 드라마는 주인공이 자신을 덮고 있는 가면을 벗는 것이죠. 극이 끝나고 ‘나누기’를 하는데요. 나누기는 자신이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점, 자신의 비슷한 경험 등을 말하는 순서에요. 그러나 충고나 비판이나 분석, 욕설은 금하고 있어요. 주인공이 속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팀ㅣ 정식 공연에서는, 세 가지 원칙이 있어요. 공연 시작 전에 휴대폰을 꺼야하고 화장실은 공연 시작 전에 갔다와야하고 중간에 나가면 안돼요. 중간에 나가는 사람이 생기면 주인공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방지해야 돼요. 세 가지 원칙을 정한 것도 묵계가 존재하는 이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기자ㅣ 공연에서 관객의 참여가 매우 중요할텐데, 관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나요? 디ㅣ 의외로 참여도가 상당히 좋아요. 처음에 뻘쭘한 게 있기는 하지만 다같이 하기 때문에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몸풀기, 마음풀기 과정을 통해 친해질 수 있어요. 기자ㅣ 특별히 동아리 활동이나 공연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은 없나요? 팀ㅣ 준비할 때 힘든 것은 없어요. 공연하기 몇 일전에 홍보하는 것이 힘들어요. 아무래도 몸을 쓰는 일이다보니. 디ㅣ 공연에 대한 부담이 커요. 공연의 배역이나 시나리오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몇 년 전에는 한 연극동아리가 우리 공연을 구경 와서 ‘연기를 못한다’며 수군대던 일도 있었어요. 조ㅣ 연습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힘들어요. 극 자체를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극에 필요한 감수성을 키워 가는 것을 바탕으로 연습을 하기 때문에 준비가 힘들죠. 디ㅣ 사람들이 ‘싸이코 드라마를 싸이코가 하는 거다’라고 생각해서 상처를 받았어요. ‘정상증’ 이라는 말 아세요? 사람들이 정상인척 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렇게 불러요. 싸이코 드라마는 그것을 깨고, 다같이 미쳐보자는 의미가 없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우리가 이상한 사람들은 아니에요. 팀ㅣ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가장 힘들다면 힘든 점이죠. 그래서 그런지 공연 때 관객이 적고. 기자ㅣ 마지막으로, 관객들이 공연을 어떻게 보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팀ㅣ 저희는 보다 많은 분들에게 심리극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많은 분들이 심리극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계신다고 생각해요. 심리극은 관객이 주인공인 극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편견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와서 공연을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때로 자신의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특히, 사람 간의 소통이 급격히 줄어든 최근에는 그러한 욕망이 더욱 클 것이다. 싸이코 드라마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내가 아닌 남이 되어 볼 수 있다. 또한 서로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상황을 공감해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험을 공연장에 가는 것만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 이상진 씨는 “저희 공연은 어떻게 참여하느냐에 따라 사람마다 의미가 매우 달라질 수 있어요. 어떤 사람은 불편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잊지 못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싸이코 드라마는 관객의 참여에 따라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관객이 직접 만들어 가는 공연인 것이다. 우리의 작은 용기가 보태진다면, 오는 9월 우리는 타인과의 행복한 소통의 기회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