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3월 31일 있었던 비상총회.본부의 무대응과 사회대학생회의 본부점거 농성.대학신문의 보도.인터넷 리플논쟁.일련의 과정 속에서 ‘상호간의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존재했을까.국어사전은, ‘소통이란 의견이나 의사가 상대방에게 막히지 않고 잘 통함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다시 말하자면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쌍방향적인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을 소통이라 칭할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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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 있었던 비상총회. 본부의 무대응과 사회대학생회의 본부점거 농성. 대학신문의 보도. 인터넷 리플논쟁. 일련의 과정 속에서 ‘상호간의 소통’이라는 것이 얼마나 존재했을까? 국어사전은, ‘소통이란 의견이나 의사가 상대방에게 막히지 않고 잘 통함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의 이야기에 대한 쌍방향적인 이해가 부재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앞에 두고 일방적으로 외치는 것을 소통이라 칭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사회대 학생회를 필두로 한 농성단의 본부점거는 오늘로 14일차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농성단과 본부의 논의는 평행선만을 긋고 있다. 본부는 지난 두 달여간 끊임없이 면담을 요청한 학생들과의 대화자리에서도 요구안에 대한 이렇다할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본부와 정운찬 총장을 향해, 농성단은 다시 한 번 책임 있는 답변을 기대하며 요구안을 내밀었다. 농성단의 끊임없는 컨택(contact)에도, 본부는 또다시 반복하여 말한다. “비민주적인 사회대 학생회의 본부점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답변은 불가능하다” 소통의 부재는 비단 대학본부와 학생회 사이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투쟁을 꾸려나가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간의 소통 또한 제한적 범위에 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상총회를 열고 본부 점거를 하는 과정에서 학생회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반학우들을 상대로 그저 외쳤을 따름이다. 자보와 선전전을 통해 학우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학우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들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교육투쟁 승리라는 목표를 두고 쉴 새 없이 뛰는 중이란 것은 알지만, 급박하고 중요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소통을 기반으로 해야하지 않을까? 학생회의 사업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일반학우로 통칭되는 학우들도 마찬가지다. 학생회에서 무엇을, 어떤 이유에서 말하려는가에 대한 관심을 갖기보다, ‘총회’라는 자리를 대신해 줄 스누라이프 게시판이나 언론매체의 인터넷 기사 리플코너에서 그저 자신들의 생각을 외치고 논쟁을 즐길 뿐이다. 대학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대학운영을 가운데 둔 본부와 학생. 학생회를 선출한 학우들과 학우들을 위해 일하는 학생회. 그 어느 공동체보다 유기적으로 굴러가야 할 두 집단이 현재 그리고 있는 평행선은 취재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지금 관악의 교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나를 알리기 전에 너를 앎으로써 얻는 기본적인 소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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