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최근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2008년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도입안을 확정했다. 앞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관련법안이 만들어지고 대학에 로스쿨 설립을 인가할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이 도입되기까지 많은 논의가 있었고, 여전히 도입 반대를 표명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법조 선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 있으며, 그 대안으로서 로스쿨이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은 것이다. 한편, 로스쿨은 사법 개혁의 목적 외에도, 대학 입시 과열 및 학벌 문제 해결, 기초 학문 육성 등 여러 가지 사회, 교육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요술 방망이’처럼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역사적 이유로 인해 우리와 비슷한 법조 시스템을 가졌으면서, 우리보다 먼저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서는 로스쿨이 어떻게 굴러가고 있을까? 일본 로스쿨 도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눈여겨 본다면, 시행 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법조 선발의 근간을 뒤바꾼 로스쿨지난 4월, 일본에서 드디어 법학대학원(로스쿨)의 시대가 열렸다. 근대 법조제도가 도입된 이래 로스쿨 도입만큼 법조 양성 시스템에 큰 변혁을 가져온 것은 없었다. 일본의 기존 법조 선발 제도는 우리의 그것과 유사해서, 매년 1차례의 사법시험을 합격하고, 1년 4개월의 사법수습을 받아야 변호사 자격이 주어졌다. 선발 규모는 연 1천명 정도로, 일본 인구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 우리 나라가 같은 인원을 뽑는 것에 비해 대단히 적었음을 알 수 있다.따라서 일본은 90년대초부터 사법개혁의 논의가 무르익었으며, 99년부터는 사법제도개혁심의회가 설치되어 로스쿨 도입, 재판원제(배심·참심제), 재판 신속화 등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 결실로서 올해 로스쿨이 개교한 것이다. 설립 목적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법률 전문가 및 다양한 배경을 가진 법조 인력을 양성하는 데 있다.72개 대학이 설립 인가를 신청하여 그 중 68개교, 총정원 5590명이 문부과학성에 의해 정식으로 인가되었다. 오사카 대학은 전임 교수 부족으로 보류 대상으로 분류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인가를 받았으며, 떨어진 네 대학 중 하나인 류코쿠(龍谷) 대학은 기존 사법시험전문학원(예비교)과의 제휴 관계를 맺어서 ‘시험 기술만 우선시한다’는 이유로 떨어지기도 했다.교토대는 정원 200명에 전임교수 50명 규모로 로스쿨을 설립했는데, 이 중 15명 정도가 실무가 출신이다. 도쿄, 와세다, 츄오 등 도쿄 소재 유명 대학들은 정원 300명에 전임교수 70명 정도의 규모로 개교하였다. 학생 교수 비율은 4:1 정도인 셈이다. 이 외에도 현(縣) 내 변호사가 한 자리 수에 불과한 카가와(香川), 시마네(島根)현에서는 지역 밀착 변호사 육성을 위해 30명 정원의 로스쿨을 설립하기도 하였다.photo2학부와 병존하는 ‘일본식’ 로스쿨일본의 로스쿨은 미국식 로스쿨을 모델로 했지만, 운영이나 시험 제도 등에 있어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의 로스쿨은 학부 법학 이수자와 비이수자를 별도 선발하는데, 3년 동안 93학점을 이수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법학 기이수자는 30학점을 인정하여, 2년만에 졸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토대의 경우 법학 기이수자를 70%에 상당하는 140명, 미이수자를 60명 선발한다. 이는 우여곡절 끝에 학부에 법학부가 남은 것과도 관련이 있다.혹자는 일본이 로스쿨을 도입하면서 법학부를 존속시킨 것에 대해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 대학에서의 법학부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우리의 법학부가 주로 법률학을 배우는 데 반해, 일본의 법학부는 법률학 뿐만이 아니라 정치학, 외교학, 사회학 등 일반 사회과학이 혼재해 있는 일종의 ‘사회과학대학’에 해당한다. 따라서 로스쿨이 생겼다고 해서 법학부를 없애야 한다는 당위 명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부에서의 법률학 축소에 따라 법학 전공 과목이 축소되고, 기존 학부 법학부 정원이 30% 이상 줄어들었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적성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는 법률 지식을 묻는 시험은 아니고, 사고력이나 독해력 등 법률 전문가로서의 소양과 교양을 갖추었는가를 평가한다. ‘추론·분석력’, ‘독해·표현력’ 시험을 각 90분 동안 치르는데, 우리 나라 행정·외무 고시의 PSAT와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각 학교 별로 논술 및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하게 된다. 그리고 로스쿨을 졸업하면 법무 박사 학위를 받게 되는데, 이는 석사에 준한다. 그리고 기존 사법시험을 대체한 신사법시험을 치러서 합격해야 법조 자격을 얻게 되는데, 이는 기존의 기교적 문제를 배제하고, 실제 문제 해결 능력을 테스트하게 될 것이라 한다. 즉, 로스쿨을 졸업해야 신사법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단, 응시 기회는 3년에 한한다. 또한 시험 합격 후에는 1년의 수습을 거쳐야 한다.빠르고 압축적인 수업 방식로스쿨의 수업은 토의를 중시하는 소수 교육을 통해 법제도에 관한 원리적·체계적 이해 및 논리적 사고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법조 인력을 양성하려 한다.이 때문에 교토대의 경우에는 수업을 기초과목, 기간(基幹)과목, 선택과목, 실무과목 등 크게 네 부류로 나누고 있다. 기초과목은 법학 미이수자를 위한 과목이며, 이를 수료한 뒤 기간과목을 수강하게 된다. 기간과목에서는 기초과목에서 배운 이론을 실제 사례에 접목시키는 방법을 배우며, 법학기이수자는 기초과목을 수강하지 않고, 바로 기간과목을 듣게 된다. 선택과목에서는 정치학이나 사회학을 통해 법학의 이해를 심화하거나 혹은 환경법, 특허법과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깊이 배우게 된다. 실무과목에서는 소장 작성이나 모의 재판 같이 사무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을 다룬다.실제 수업 방식은 대체로 미국의 그것을 답습했다고 볼 수 있다. 소위 ‘소크라테스 문답법’이라 불리는 교수와 학생간의 질문과 답변이 수업 시간 내내 끊임없이 오고 간다.일전 ‘민법총합(民法總合)’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었는데, 수업은 매 시간 상당히 복잡한 케이스를 다루며, 수업은 끊임없이 교수로부터의 질문으로 진행된다. ‘갑은 어떠한 청구를 할 수 있는가?’, ‘그 청구의 법률적 근거는?’, ‘그 요건은’ 식으로 법학적 사고의 수순을 밟으며 학생들이 그 능력을 습득할 수 있게끔 나아가며 상당히 빠른 템포로 진행된다. 학생들은 사전에 그 케이스 문제에 대해 면밀히 공부하고 오지 않으면 질문에 답하지 못할 뿐더러 수업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실제 수업의 몇 배에 달하는 예습이 필수적이다. 물론 이 수업은 법학 기이수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으로서 학생들이 기본적 법률 지식을 갖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수업이며, 비이수자를 대상으로 한 1학년 수업의 경우에는 강의의 비중이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3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내용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자기 학습이 상당히 중요하다.photo3법조계 진출을 원하는 학생 늘어로스쿨 도입은 법조계 진출의 문을 넓힘으로써, 상대적으로 법조계 진출에 무관심했던 교토대 학생들도 로스쿨 진학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기존 수험생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교토대 법학부 4학년 타츠미 다카히로(巽*選*隆博)군은 ‘공부량이 많지 않은 기존 수험생들은 로스쿨로 전향하고 있다’면서 3학년 이하 학생들은 바로 로스쿨 준비를 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99년부터 본격 논의가 되어 왔고, 5년간 기존 사법시험을 병행 실시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합격자를 얼마나 할당할 것인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기존 수험생들의 혼란이 큰 것이다. 최근 2006년 합격자를 로스쿨 졸업자 중 50%, 기존 사법시험에서 50%를 뽑겠다는 법무성의 발표가 있었으며, 점차 기존 사법시험에서의 합격자 비율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한편, 여러 사정으로 인해 로스쿨에 진학하지 못한 사람에게도 신사법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하기 위해 ‘예비시험’이라는 일종의 로스쿨 검정고시도 존재한다. 학계에서는 이것이 편법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하지만, 일각에서는 예비시험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약자 배려를 위해 예비 시험을 도입한 취지가 몰각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로스쿨 난립으로 수험 기간만 길어졌다’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68개교, 총정원 5700명에 이르는 로스쿨이 설립되면서 곳곳에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로스쿨 도입 후 연 3,000명 정도의 법조 인력 양성을 목표로 했던 일본 정부는, 각 대학들의 요구에 못 이겨 적정 정원 4,000명을 넘어서서 로스쿨 설립을 인가해 버렸다. 이 때문에,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50% 정도만이 법조계에 진출할 수 있게 되어, 로스쿨 졸업 후에 다시금 경쟁에 내몰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이는 수험기간을 3년 더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photo4이 때문에 로스쿨에 대한 매력도 떨어져서, 2005년 로스쿨 입학 지원자가 작년에 비해 급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일본 사법시험전문학원(예비교) 관계자들도 로스쿨이 도입되면 로스쿨 준비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제공하고, 졸업생의 신 사법시험 준비를 위한 강의 또한 실시함으로써, 오히려 시장이 확대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로스쿨 도입이 수험 기간 장기화만을 가져 올 수도 있는 것이다.다만 이렇게 로스쿨이 난립(?)한 덕분에 로스쿨 지망생들이 한 가지 혜택을 보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서도 비싸다고 말이 많은 로스쿨 학비가 경쟁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사립대의 경우 연 200만엔에 달하는 학비를 경쟁적으로 인하하여 일부 대학에서는 150만엔선까지 내려오기도 했고, 금융업계와 제휴하여 장기 학자금 대출을 제공하는 대학도 상당수다. 그리고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서 장학금 혜택을 다투어 내놓고 있다. 차후 로스쿨 졸업생 중 사법시험 합격자 비율이 학교의 위상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추측 때문에 대학들이 우수 인재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국립대인 교토대는 입학금 282,000엔에 1년 수업료 804,000엔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엄격한’ 준칙주의와 함께 변호사 선발 인원 늘려야우리나라에서도 벌써 대학간 로스쿨 설립의 위한 물밑 작업이 경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로스쿨 도입을 못할 경우 2류 대학으로 눈에 비칠 우려가 있고, 로스쿨이 대학 재정에도 숨통을 틔여 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변호사 선발 인원이 정해져 있고, 대학의 요구에 따라 무리하게 로스쿨 입학 정원을 늘린다면, 로스쿨 졸업 후에 다시 시험의 경쟁에 내몰릴 수 밖에 없다. 이는 로스쿨 도입의 명분을 몰각시키고, 단지 수험 기간의 연장만 가져오게 될 것이다.그렇다고 선발 정원을 2000명 이내로 유지한 채 이에 맞추어 극소수의 대학에만 로스쿨 설립을 허용하면, 허가 기준의 불명확성에 따른 탈락 대학의 반발이나 로스쿨의 서울 집중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 따라서 법조 선발 인원을 연 2500~3000명 이상으로 대폭 늘리면서, 일정 요건을 갖춘 대학에게는 가능한 한 로스쿨 설립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설립 요건을 충실히 하고, 정기적으로 심사해서 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불량’ 로스쿨에 대해 인가를 취소하는 엄격한 준칙주의가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로스쿨 도입 취지에 비추어 보건대, 당국에 의해 검증된 로스쿨에서 적정한 이론 및 실무 교육을 받은 자에 대해서는 변호사 자격을 가능한 한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합격률이 70~80%선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 대학간 컨소시엄 형성을 통해 연합 로스쿨을 설립하는 것을 장려하여, 지나친 로스쿨 유치 경쟁을 막고, 교육의 질 향상을 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또한, 학부 법학부의 존속 여부와 기존 대학원 법학과와의 관계 설정도 학벌 문제와는 별개로 깊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로스쿨이 도입되면 미국처럼 무조건 학부는 폐지되어야 한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기초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발전과 관련 지어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사법 체계 전반이 미국식이 아닌 이상 ‘한국식’으로의 변용은 불가피하다.일본의 전철을 곱씹어야 로스쿨을 고시 낭인을 줄이고, 변호사 수를 늘임으로써 법조 서비스 질의 향상시키고 대학 입시 경쟁까지 해소시키는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로스쿨이 현재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중의 하나임은 분명하지만, 로스쿨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는 금물이다. 로스쿨 도입이 사실상 확정된 이상, 로스쿨 도입의 취지를 확실히 하고, 우리 법조 시스템에 어떻게 무리없이 정합적으로 도입하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일본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 사법(司法)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성공과 실패에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겪었던 귀한 경험을 고맙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