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12004년 가을 대동제 ‘단풍 놀이터’가 무난히 막을 내렸다. 지난 축제처럼 학우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지만, 축제 분위기는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학교로’ 선본 당선 이후 ‘축제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서울대 축제는 재미없다’는 근거 있었던 통념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한때 ‘오직 축제 한 번 뽀대나게 해 보자’고 부르짖던 ‘광란’의 선본이 총학생회까지 잡았던 것에 생각하면 불과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구나 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학교 분위기로 치면 서울대보다 더 한 교토대의 축제는 어떤 모습일까?축제 연휴 6일!올해로 46회째를 맞이하는 ‘교토대학11월제’는 매년 1차례 11월 하순 경에 열린다. 보통 11월 23일이 국경일인 ‘근로감사의 날’이기 때문에 주말과 공휴일을 잘 조합해서 축제기간이 결정되며, 올해는 11월 20일부터 11월 23일까지 나흘간 열릴 계획이다. 그리고 4일간의 축제 기간 중 평일은 공식 휴강일이고, 거기에 전야제 하라고 앞에 하루, 축제 했으니 피곤하다고 뒤에 하루씩 더 휴강하기 때문에 총 6일간의 축제 연휴가 생긴다.정식 축제 기간인 4일동안에는 미리 짜여진 일정대로 학교 이곳 저곳에서 행사가 진행된다. ‘축제 광장’에 세워지는 중앙 무대에서는 학내 밴드 및 춤, 치어리딩 동아리의 공연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 주변에는 관객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장터가 열리고 작은 동아리들의 즉석 공연(마술이나 써커스 등)이 열려서 눈과 입이 심심할 새가 없다. 그리고 주변의 강의동에서도 릴레이 연극이나 동아리들의 부스, 찻집 등이 설치되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한편 외부 인사 초정 강연회도 많이 열리는데, 대개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하게 되지만, 전문 공학 분야 강연회가 열리기도 한다.교수님께 술 한 잔 얻어 먹자~photo2중앙 무대에서 열리는 행사 중 눈에 띄는 것으로 전야제 및 폐막제가 있다. 축제 전날 밤 6시부터 응원단의 축하 공연을 필두로 전야제가 시작되며, 학내 써클의 화려한 공연이 계속 이어진다. 그네들은 매일 서너시간씩 연습하기 때문에 그 실력은 거의 프로급이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에는 큰 불을 피워서 축제가 시작했음을 선언한다.전야제 행사 중 특징적인 것으로 ‘敎官酒場’이라 불리는 행사가 있다. 말 그대로 교수가 술을 대접하는 곳인데, 교수들이 술 내지 술값을 기부하고, 이를 큰 독에 모두 부은 다음 학생에게 한사람씩 직접 따라 준다. 천막의 벽면에는 술을 기증한 교수의 이름이 죽 걸려 있다. 친구의 설명에 따르면 60년대 학원 투쟁이 치열할 때 학생과 교수 사이의 반목이 심했는데, 그것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이야 본래의 의도와 관계 없이 그저 교수님께 술 한 잔 얻어 먹는 기회가 되었지만 나름의 유서가 있는 행사다. 우리 학교는 그간 학생, 교수간 사이가 좋았는지 이런 기회가 없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축제 마지막날 밤에는 폐막제가 열리는데 형식은 대체로 전야제와 비슷하고, 또 한번 큰 불을 피운다(일본의 축제에는 불과 관련된 이벤트가 많은 편이다). 마지막으로 축제 기획자의 변을 듣고 모여있는 사람들이 다 함께 만세삼창을 하면 축제는 끝이 난다.‘11월제 사무국’, 오직 나흘을 위해!교토대 축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맡아서 운영하는 곳이 바로 ‘11월제 사무국’이다. 총학생회라는 조직이 없는 교토대에서 매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이를 전담하는 단체가 필수적이다. ‘11월제 사무국’은 일종의 동아리 형식의 단체로 매년 신입생을 선발하고, 1년 내내(?) 11월제를 어떻게 해 볼까에 대해 고민한다.photo3본부국, 종합기획국, 축제광장국, 자주제작국 등의 세부 조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본부국은 사무국 자체 행사의 진행, 종합기획국은 다른 동아리 행사도 포함한 전체 기획, 축제 광장국은 축제 광장의 노점이나 실외 공연을 담당한다. 한편, 자주제작국은 우리로 치자면 ‘따이빙 굴비’ 식의 연극 릴레이 공연을 담당하고, 축제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책임을 맡고 있다.이렇듯 사무국은 달리 정통성이라든가 대표성은 없는 단체이다. 단지 ‘관습적’으로 축제를 준비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가능한 한 학우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통일 테마 결정’인데, 축제의 지침이 되는 테마를 학우들의 제안과 투표를 통해 뽑는 것이다. 참고로 이번 11월제의 테마는 ‘넘어질 꺼면 앞으로 넘어져라(관용구로서 이왕 할꺼면 제대로 하라는 뜻)’이고 작년은 ‘역시 교토대로군’이었다. 특별히 테마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지만, 공모 과정에서 관심을 환기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동아리 행사가 있어 더욱 풍성한 11월제대표성을 높이려는 시도 중에는 자체 행사 외에 다른 동아리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도 있다. 공연이라든가 발표회가 축제 기간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무국에서는 동아리들이 어떤 행사를 준비하는지 파악하고 이를 돕는 역할을 한다.교토대의 동아리 문화에 대해 잠시 언급하자면, 교토대는 동아리 활동의 천국이다. 학생과에 등록된 동아리만 해도 300여개에 달한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체육 동아리인데, 동아리 중에서도 ‘클럽’이라고 불리는, 학교 대표 동아리들은 연습량이 많기로 아주 유명하다. 이 동아리들은 ‘서울대 야구부’처럼 학교 이름을 걸고 전국 대회에 출전하는데, 사립대에는 대체로 밀리지만, 소위 ‘七大戰’이라는 7개의 舊 제국대학 대항전에서는 1,2위를 다툰다. 이 외에도 별의별 동아리가 다 있어서, 저글링 동아리, 철도연구회, 슬리퍼 연구회 등 우리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동아리들이 꽤 많다.저학년들은 동아리 활동에 거의 투신하는데, 중·고등학교 때부터 누구나 써클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일본의 학생 문화의 특징과 더불어이는 3학년때까지 놀다가도 4학년 때 좀만 ‘빡세게’ 하면 졸업이 가능한 교토대의 학사 행정 탓이기도 하다. (교토대 학생들은 흔히 자유방임주의라고 말한다) 연극 동아리나 음악 동아리는 중앙 무대나 특설 무대에서 ‘따이빙 굴비’ 형식의 공연을 가질 수 있고, 악대나 치어리딩 써클은 전야제나 폐막제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굳이 공연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각 동아리별로 부스를 만들어 동아리 소개나 간단한 전시를 하기도 한다.빠질 수 없는 ‘노점’photo4한편 축제 기간 동안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동아리들은 가장 만만한 노점(장터)을 연다. 이 역시 사무국의 허가를 받아 ‘축제 광장’에 천막을 치고 영업을 하는데, 음식으로는 타코야키에서 치지미(어원은 한국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전이나 부침이 아닌 사투리 ‘찌짐’이 공용어가 되었다)에 이르기까지 온갖 음식이 다 있다. 호객 행위를 한다거나 미리 지인들에게 티켓을 파는 영업 방식도 우리랑 비슷하다. 다만 잔디밭에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하는 일은 없는게 아쉬울 뿐이다. 아마 술을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 것 같다. 이외에도 몸으로 때우는 물풍선 게임이나 미술 동아리에서 세운 풍자 조형물을 보면 흡사 우리 나라를 연상케 한다. 사무국에서는 벼룩 시장을 열어서, 헌 책이나 음반을 서로 사고팔게 하기도 하고, ‘스탬프 랠리’나 ‘퀴즈 랠리’ 같은 행사를 통해 참가자로 하여금 이것저것 둘러보게 한다. 이렇듯 전반적으로는 한국의 대학 축제와 비슷한 느낌이 많이 들지만, 교토대의 경우 완전 축제 모드로 변신하기 때문에 수업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장점이다.‘교토대 축제는 재미없다’photo5나는 이방인으로서 이것저것 재밌게 보면서 돌아다녔지만, 교토대생들은 ‘교토대 축제는 재미없어’라고 곧잘 이야기한다. 나도 한 두해 지나고 나면 시들해지긴 하겠지만, 재미라는 것도 자신이 찾기 나름 아닐까? 사무국에서 준비한 강연회라든가 여러 동아리들이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들을 호기심을 갖고 돌아보면 분명 재미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서울대에도 마찬가지로 해당할 것이다.우리처럼 주중에 축제가 열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 신입생이 아닌 교토대생들은 자신이 직접 무언가 참여하는 것이 아니면 잘 오지 않는다. 축제에서 놀라고 학교에서 공식 휴강해 버리지만, 오히려 많은 학생들은 학교 밖 여행을 떠나는 기회로 삼기도 한다. 축제하는 사람 따로, 보는 사람 따로인 것이다.(우리 학교도 비슷하지 않은가?) 다만 주말에는 일반인들이 많이 찾아와서 동아리 발표회 등을 관람하기 때문에 결코 사람이 적지는 않지만 말이다. 특히 부모님 손을 잡고 따라 와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전시회를 보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축제가 구성원들만 즐기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느끼게 해 준다. 일종의 대학과 지역의 교류인 셈이다.대동제의 존재 양식에 대해 시사점도물론 단점도 있지만, 교토대의 축제 주관 및 진행 방식은 우리에게도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11월제 사무국이 동아리 형식의 단체로서 매년 독립적으로 축제를 꾸려나가면서도, 여타 동아리 간의 의견 조율, 학우 참여 유도를 통해 대표성을 유지하려는 점은 높이 살 만 하다. 특히 올해 총학생회의 공약이었던 ‘전문위원회 제도’가 전학대회에서 부결되면서, 앞으로의 ‘축하사’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앞으로 축하사의 총학생회와의 관계 정립 및 활동 방식에 관해 교토대 11월제 사무국이 축제를 준비하는 독립 단체로서의 그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 밖에 동아리 행사 위주의 축제 구성이라든가 봄, 가을 대동제의 통합 및 주말 행사를 통한 일반인 참여의 확대 등도 고려해볼 만 하다. 11월제가 ‘대동제’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즐긴다’는 사실은 우리 대동제와 동일하다. 평소 학교에서 받는 느낌과 다르지만, 늘 일상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축제가 아닐 것이다. 모처럼 학교 안에서 모든 학우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으로서의 축제. 학교의 또다른 의미를 알게 해 준다. 그러하기에, 축제는 계속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