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대에서 10월 12일 있을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미한 리영희 명예교수를 만나 현 한반도 정세 전반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신동민, 이유나 기자(이하 기) : 최근 퇴원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멀리까지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요즈음 건강은 어떠신가요? 리영희 교수(이하 리) : 2년전에 뇌출혈에 신경마비가 겹쳐 쓰러졌었는데, 여기 버클리까지 올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신 : 이렇게 기자 대선배님을 앞에 모시고 인터뷰를 할 수 있게되어서 참 떨리기도 하고 기쁘기도 합니다. 장시간 여행에 힘드시겠지만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기 : 선생님께서는 창작과 비평사에서 마련한 한완상 선생과의 대담에서 한미일 3국 군사 동맹 체제가 북한의 개혁 개방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리 : 이는 한마디로 미국에 의한 ‘북한 봉쇄 말살’ 정책입니다. 한미, 미일 방위조약 등으로 3국은 북한에 군사적 압박을 40년 이상 가하고 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자연히 세계 최강 미국에 대해 체제 붕괴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없죠. 북한이 미사일 등 개발에 집착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기 : 2000년 클린턴 행정부 당시 ‘조미공동코뮤퀘’가 만들어지면서 북미관계는 평화협정 체결, 국교 수립 분위기가 일어나는 등, 상당한 발전 국면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출범하고, 9. 11사건 이후 북한이 ‘악의 축’으로 지목되는 등, 북미관계는 현재 상당히 정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래서 최근에 제네바 합의가 종결되는 내년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른바 ‘2003년 한반도 전쟁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리 : 부시정권이 이라크에 대한 군사전략을 북한에까지 적용한다면, 이라크를 말살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도 군사행동을 취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라크에 대한 전쟁에 대해 미국 국내에서도 비판적 의견이 많습니다. 또한 세계적인 여론이 전쟁 반대를 표명하고 있죠. 결국 이런 비판을 무시하고 미국이 전쟁을 강행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즉 9. 11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이죠. 또한 최근 일본이 미국의 강경노선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구요, 남한 역시 전쟁에 반대를 하죠. 결국 부시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전쟁을 강행하려는 야심은 있겠지만, 그것이 현실화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기 : 결국 최근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미국의 켈리 특사 파견 등이 현재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군요. 리 :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 사람들이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극단 반공세력은 소수일 뿐입니다. 또한 햇볕 정책이후 남북간의 정세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요. 미국은 쉽게 남한 사람들의 전쟁 반대 의지를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기 : 6.15 남북 공동선언이후 남북관계는 가히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산가족의 꾸준한 상봉, 경의선과 동해선의 연결 등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6.15 공동선언의 의의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리 : 6.15는 6.25전쟁이후 최대의 사건입니다. 남북한 군사 대치관계를 공존, 협력, 평화가 대체하게 된 것이지요. 기 : 얼마 전 남한에서는 6.15의 문구, 즉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두고 여야간에 논쟁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요. 한국내의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 보십니까? 리 : 6.15의 핵심은 남북한이 ‘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낮은 단계의 연방제, 남북 연합 등의 용어는 하나의 레토릭일 뿐이죠. 벌써 남북한이 통일되었습니까? 그것은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형식적인 문제일 뿐이죠. 처음부터 그러한 용어를 가지고 싸울 필요가 없어요. 김대중 대통령이 그러한 단계 개념을 공동선언에 넣을 필요도 없었어요. 그러한 체제 논쟁은 남북한 쌍방 체제가 접근하여 상호 이질감을 해소한 이후, 이후 정치적 통합과정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는 문제이죠. 현 시점에서는 논할 가치가 없습니다. 기 : 선생님께서는 통일은 공존과 협력을 위한 과정이지 그 자체가 궁극적 목표이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를 좀더 자세히 이야기해주십시오. 리 : 나는 통일이라는 말을 안 씁니다. 상호 협력, 보다 많은 사회 개방과 같은 상호간의 과정이 진행되고 나서야 통일이 될 수 있는 것이죠. 그전에 통일을 우선 시하는 것은 힘의 의한 통일, 혹은 한 체제의 붕괴에 의한 통일을 의미할 수밖에 없어요. 독일처럼 통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정책으로 추구해서는 안됩니다. 남북한이 서로 과정을 하나 하나씩 밟고 나가는 것, 이 자체가 통일이죠. 기 : 창비사와의 대담에서 선생님께서는 통일을 위해 남한과 북한이 서로 한발씩 다가가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그것은 무엇일까요? 리 : 우선은 북한은 사회 개방을 통해 개인의 자유의 폭을 확대해야합니다. 문명 사회의 보편적 가치인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자유, 즉 ‘시장경제’의 일부분을 택해야 하는 것이죠. 또한 통제사회에서 개인의 창의력과 자유 권리를 보장하는 열린사회로 이행해야 합니다. 신의주 특구 등 개발을 통해, 그리고 각 종 경제 개혁 조치 등을 통해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현재 북한은. 남한은 현재 극단적인 미국식 개인주의에 빠져있습니다. 전혀 ‘공통 사회’의 문제를 생각지 않는, ‘식인종적 자유, 자본주의’의 양태를 보이는 것이죠. (경쟁 을 통해)서로 잡아먹는 자유, 이것을 인권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이 때문에 사회 전반적으로 힘과 폭력과 거짓, 부패와 타락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에요.‘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기 : 결국 자본주의와의 사회주의 체제 접목문제로 귀결되는 것이군요. 리: 그렇죠. 북한은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로, 남한 역시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갖춤으로써, 양 체제간의 괴리를 줄여 서로 비슷한 사회를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양체제 같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통해 수렴론적으로 통일이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죠. 북한의 극단, 한국의 우익 반공, 모두 말이 안되는 것이에요. 기 : 결국 그러면 선생님은 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찬성하고 있는 것이군요. 리 : 햇볕정책을 찬성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론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양 체제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햇볕정책의 원칙에는 찬성합니다. 이렇게 서로 가까워지려는 시도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입니다. 또한 북한에서도 처음에는 햇볕정책을 통한 남한의 지원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달라요. 내가 북한에 가서 보니 남한의 도움을 고마워 하고 있거든요. 북한 역시도 햇볕정책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죠. 기 : 대선배님과 함께 있으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선생님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는데요. 청년학생들은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남다른 역할을 해왔습니다. 4.19, 5.18, 80년대 학생운동 등은 이를 대변해 줄텐데요. 마지막으로 이 시대의 청년학생들인, 서울대, 혹은 대학생들에게 한반도 평화 통일과 관련하여 메시지를 주셨으면 좋겠습니 다. 리 : 6.25 전쟁 때 성년이었을 지금의 늙은 세대는, 아직까지도 실체가 없는 반공주의에 휩싸여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전혀 이러한 사상적 굴레에 쌓여있지 않죠. 젊은 학생들은 이러한 반 민족주의적인 반공주의 세력의 ‘주술’에 휩싸여서는 안됩니다. 사상, 이데올로기의 자유 등과 같이 정신적으로 보편적 가치를 계속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죠. 이것이 평화적인 남북 관계를 이끌어 나가는 가장 중요한 대학생의 자세일 것입니다. 기 : 오랜 시간 함께 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심포지엄 때 더 좋은 말씀해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