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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을 일구는 철학하는 농부
대학자치활동 보고서

더불어 사는 삶을 일구는 철학하는 농부

“자신의 얼굴이 천상 농부의 그것”이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윤구병 씨.서교동 기분 좋은 가게에서 만난 그는 아이 같았다.“내가 올해 나이가 마흔 셋이에요, 43년생이니깐” 예순아홉의 나이가 무색하게 윤구병 씨의 얼굴과 말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행복을 찾아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16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그의 얼굴에는 활력이 넘쳤다.검게 그을린 얼굴, 굳은살이 박힌 손은 교수의 것이 아니라 천상 농부의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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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얼굴이 천상 농부의 그것”이라며 환하게 웃고 있는 윤구병 씨.

서교동 기분 좋은 가게에서 만난 그는 아이 같았다. “내가 올해 나이가 마흔 셋이에요, 43년생이니깐” 예순아홉의 나이가 무색하게 윤구병 씨의 얼굴과 말투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 행복을 찾아 대학교수직을 버리고 16년 동안 농사를 지어온 그의 얼굴에는 활력이 넘쳤다. 검게 그을린 얼굴, 굳은살이 박힌 손은 교수의 것이 아니라 천상 농부의 그것이었다. ‘변산공동체학교’, ‘문턱없는식당’, ‘보리출판사’를 일구며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꾼다는 그의 얼굴에서는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국립대 교수직을 버리고 농부가 되다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누구나 그에게 교수직을 버리고 농부가 된 이유를 묻는다. 교수라는 직업을 버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답 없는 질문, 질문 없는 대답이 15년 동안 평행선을 그으면서 가는 교수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삶에 대한 절실한 고민을 질문하지 않는 학생들, 질문을 받더라도 대답을 해주지 못하는 교수직을 정년퇴임할 때까지 지키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왜 사는가’와 같이 삶에서 중요한 질문이 사담으로 여겨지고 ‘플라톤의 생몰연도’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는 강의실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들이 답변한 것을 짜깁기 해 적어주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매일매일 같은 일이 되풀이되자 그는 행복을 찾아 삶의 길을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농부가 되기로 결심한 건 1995년의 일이었다. 윤구병 씨가 수많은 직업 중 농부를 선택한 것은 유년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나 구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는 10살까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아버지로부터 농사를 배우며 살았다.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던 여섯 형들이 한국전쟁에 휩쓸려 죽자 그의 아버지는 남은 세 아들들은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학교도 다니지 않고 산과 들을 뛰어다녔던 시간이었지만 그는 이 시간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 중 하나로 회상했다. “이 시기에 삶의 시간을 자율적으로 통제하는 힘을 길렀다. 내 삶은 내 것이고, 내 삶의 시간은 내가 계획해서 채우는 것이 몸에 뱄다. 도시의 시간에서 사는 아이가 아니라 자연의 시간에서 사는 아이로서 클 수 있었던 것이 굉장히 큰 복이었다.” 행복을 찾아 강단을 떠난 그는 유년시절처럼 자연의 시간 속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산, 바다, 물이 두루 갖춰진 변산에 터를 잡고 ‘변산공동체학교’를 만들고, 그는 그렇게 농부가 됐다. 행복을 찾아 농부가 된 윤구병 씨에게 지금 행복한지를 물어봤다. 그는 대뜸 자기 얼굴을 가리키며 자신의 환한 얼굴이 지금 행복하다는 증거란다. “시골에서 16년 동안 사는 동안 하루도 같은 일을 해 본적이 없다. 생명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른 일들로 꽉 차 있어서 순간순간 다르다. 도시에서의 시간은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더 큰 통제력을 갖춘 사람들이 정해둔 시간을 내 시간으로 바꿔놓은데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시간 속에서 지내다가 삶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하겠냐.” 물론 그는 자연에도 통제는 있다고 말한다. 씨 뿌릴 시기, 김 맬 시기, 수확 시기는 자연히 정해준 때에만 할 수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농사꾼들을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는 때를 놓치면 안 된다. 하지만 그밖에는 자연이 시시콜콜 통제를 하지 않는다. ‘너 왜 지각해’, ‘너 왜 시간 안 지켜’ 같은 통제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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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로 심는 모는 간격이 좁아 유기농이 힘들기 때문에 변산공동체에서는 손으로 모를 심는다.

더불어 사는 힘을 배우는 변산공동체학교변산으로 내려간 그는 뜻이 맞는 몇몇 이들과 함께 ‘변산공동체학교’를 만들었다. 변산공동체학교에서는 경운기를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100년 전 조상들이 짓던 방식 그대로를 사용해 농사를 짓는다. 겨울이면 구들장을 사용해 난방을 한다. 자연을 가장 적게 훼손하는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는 목공소, 도자기 가마, 도서관, 학교 등이 갖춰져 있다. 공동체 이름 뒤에 ‘학교’가 붙는 것은 어른, 아이 모두 배워야 한다는 그의 생각 때문이다. “변산공동체가 학교인 것은 어른들도 공동체를 통해 배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과 더불어 사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어른들도 이 두 가지를 배워야한다. 그래서 ‘공동체’가 아니라 ‘공동체학교’다.” 현재 변산공동체학교는 한솥밥을 먹는 식구들 50명이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있다.변산공동체학교는 별다른 통제가 없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처음에는 기상 시간, 작업 시간, 식사 시간 등을 정해 구성원들의 생활을 통제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식사시간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구성원의 자율에 맡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길가에서 자라는 강아지풀도 누가 시켜서 열매를 맺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서 목숨을 붙이고 사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의 통제가 싫어서 도망쳐온 사람들에게 통제를 부여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통제가 없는 것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이들 스스로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 공부를 하다가 밭일을 하러 가는 것도 자유라고 말했다. 일정 나이가 지나면 독립해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공동체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교육 과정 중 하나인 셈이다. 좋아만 보이는 공동체생활에 어려움이 없는지 물어봤다. 그는 어떻게 힘든 점이 없을 수 있냐며 웃으며 대답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살다보니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내가 서글서글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데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도시생활에서는 피할 곳이 있기 때문이었다. 직장에서 서로 어긋나더라도 집에 가거나 친구와 술을 마시면서 욕하고 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공동체에서는 24시간 같이 살아야 하고, 공동체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여기서 처음 배웠다.” 학력, 출생 지역, 문화적 배경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든 하루 종일 함께 살다보니 인간관계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공동체도 인간관계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단다. 그나마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라는 설명도 곁들인다. 아직 마을공동체의 전통이 남아 있어 ‘더불어 사는 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더불어 살지 않는 한 도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윤구병 씨는 인간들 사이에서의 관계 뿐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맺음도 강조한다. 그는 농사를 통해 다른 생명체를 돌보는 걸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상생하는 다른 생명체와 상생하는 방법이라고 여긴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 없이는 살 수 없다. 아침저녁으로 상에 올라오는 것이 다른 생명체의 생명에너지인데 그걸 섭취해서 우리가 산다. 우리가 채소와 작물을 기르는 것도 생명체들과 상생하는 과정 중 하나다. 보리, 밀, 콩은 우리에게 생명에너지를 주고, 우리는 그들의 씨앗을 보존해 다음 세대의 싹을 틔우게 한다. 이 과정에서 상생이 일어난다.” 변산공동체학교에서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것은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사는 방법을 몸소 실천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다. 농업이 다른 생명체와 상생하는 기본이라는 그의 생각은 현대 도시 문명이 위험하다는 경고로 이어진다. “도시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와 상생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생명체를 ‘기르는 일’은 잊어버리고 공장을 통해 ‘만드는 일’에만 익숙해짐으로서 도시는 그 생존기반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는게 그의 진단이다. “도시사람들은 씨앗이 무엇인지 구분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농촌에는 사람이 없다. 오년, 십년 후에는 농촌의 생산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도시 사회는 타격받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가 변산공동체를 꾸린 것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봤기 때문이다. 그는 “변산공동체가 인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주는 길목에 위치 서 있다”며 변산공동체학교의 역할을 설명했다.변산공동체 외에 그는 상생하는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일을 시작했다. 문턱없는 밥집이 대표적이다. 문턱없는 밥집은 점심 때면 가격을 정하지 않고 유기농 식재료로 구성된 비빔밥을 판매하는 식당이다. “도시사람들에게 웰빙열풍이 불어 유기농 식재료를 많이들 찾는다. 그런데 유기농 식재료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만 접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을 쉽게 해칠 수 있는 육체노동자들이야 말로 싼 가격에 유기농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해요.” 가격이 없기 때문에 1000원을 낼 수 있는 사람은 1000원을, 그마저도 낼 수 없으면 내지 않아도 된다. 단 하나의 원칙이 있다면 음식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 “지금처럼 낭비하는 사회에서 식량위기가 온다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굶주리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음식을 낭비하지 않는다면 열 명 중 두 명만 굶주리면 되죠.” 가난한 도시사람들에게 좋은 음식을 싼 가격에 공급하면서도 가장 생태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리고 문턱없는 밥집에 공급되는 재료들은 유기농 작물 중 모양에 하자가 있어 상품화 되지 못 한 것이기 때문에 농민들의 삶에도 도움이 된다. 문턱없는 밥집을 통해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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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도시 사람들은 다른 생명체와 상생하는 법을 잊어버렸다”며 도시문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서로 나누는 삶이 행복한 삶윤구병 씨에게 ‘행복’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남을 위해서 노예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삶, 여러 사람과 즐겁게 오순도순 살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스스로 삶의 시간을 통제하면서 여러 사람과 함께 사는 변산공동체학교에서의 삶이 바로 행복이라는 의미다. 행복만큼 ‘좋은 사회’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있을 것이 있고 없을 것이 없는 것이 바로 좋음이다.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으면 나쁜 것이다.” 결국 있어야 할 것이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것이다. 그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있어야 할 것 중 하나로 나누는 삶을 꼽았다. “백인들이 들어와 호피인디언부족 학생들에게 시험을 보게 했어요. 그런데 호피인디언부족 학생들은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모르는 사람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서 시험을 봤지요. 지금의 시험과 비교했을 때 어느 것이 좋아 보이지요? 이렇게 도와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그는 대학생들이 몸을 좀 더 놀려야 한다고 권유한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불균형이 너무 심해졌다.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만 많으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이 구조를 깨야한다. 육체노동보다 정신노동에 높은 가치를 주는 교육도 바뀌어야 하지만 학생들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정신노동을 하는 이 중에 세상을 병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신노동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세상을 나쁘게 만드는 사람은 되지 말라.” 한편 그는 기자들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라는 주문을 반복했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살면 행복할 수 없어. 주변 눈치 보지 말고 하고 사는 게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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