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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2월 10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장애인활동지원법 시행령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자립생활 권리를 보장하라!” 2011년 2월 10일, 복지부 앞에 모인 장애인 활동가들이 느끼는 현실은 영하 5도의 혹한보다 차가웠다. 오전 11시 복지부 앞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장연)외 2개 단체는 장애인활동지원법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해 12월 날치기 처리된 장애인활동지원법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용기 소장의 휠체어는 자꾸 미끄러졌다. 결국 다른 이가 휠체어를 잡아준 상태로 연설이 시작됐다. 최 소장은 “장애활동지원법에 대한 복지부의 논리는 장애인의 처우 개선이 아닌 돈 계산”이라며 장애활동지원법이 장애인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장애인 활동가 이미정 씨 역시 장애활동지원법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옆에 선 활동가가 말을 명확히 반복해줘야 했지만 그 의미만은 또렷했다.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인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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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연사로 나선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용기 소장은 다른 이가 휠체어를 잡아 준 상태에서 연설했다. |
장애인활동지원법, 지원법이 아니라 제한과 차별의 법?
장애계는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지원법’이 아니라 ‘제한’과 ‘차별’의 법이라 말한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중증장애인이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활동보조인을 파견하여 제공하는 서비스다. 일상생활조차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손과 발’만큼이나 소중하다. 지난해 장애인활동지원법은 12월 소관 상임위의 법안 심사를 거치지 않은 채 본회의에 직권상정됐다. 정부발의 2주만에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됐다. 장애계의 요구가 반영된 여야 의원의 법안 또한 발의돼 있었으나 무시됐다. 현재 법률은 공포돼 올해 10월로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민주당 박은수 의원은 2월 1일 장애인활동지원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장총)은 장애계 간 연대를 통해 시행령, 시행규칙 제정안 마련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장애계가 반발하는 장애인활동지원법의 주요 쟁점은 무엇일까. 우선 전장연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장애인활동지원법이 장애정도와 연령에 따라 신청자격을 제한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장애인활동지원급여의 신청자격은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하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이다. 법안 통과 후, 장애계는 장애등급에 의해 서비스를 제한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시행령에서 복지부는 신청자격을 1급 장애인으로 제한하고 있다. 장총 정책연구실 은종군 팀장은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등급이 아닌 장애인 본인의 필요에 따라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리적 장애만을 반영하는 장애등급에 의한 제한은 장애인의 개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조치라는 것이다.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은 “1급에서 2급으로 등급이 떨어지면 단순히 서비스 시간만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활동지원서비스 자체를 제공받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실제로 한 지체 장애인은 병원진단이 1급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갑작스런 2급 진단 통보를 받았다. 그는 휠체어에 앉는 것은 가능하나 균형을 잡지 못해 장기간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가사활동 또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의신청을 했지만 ‘의자에 앉을 수 있지 않냐’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그는 하루 아침에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됐다. 활동지원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 사이의 사각지대 신청자격은 연령에 따라서도 제한된다. 장애인활동지원법에 따르면 활동지원서비스는 65세 이전까지 지원되고, 이후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자동 전환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수혜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활동지원서비스가 절실한 장애인이라도 65세가 되면 기존 서비스가 사라지고 노인장기요양급여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노인장기요양보험은 장기 요양이 필요한 65세 이상 노인과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가진 64세 이하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 이 제도는 노인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만큼 장애인에게 최적화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중증 장애인이라도 노인성 질환에 초점이 맞춰진 장기요양인정조사표에 의해 서비스가 축소되고, 심지어 수혜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특히 노인성질환이 없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이 표에 의해 등급이 떨어진 사례가 많다. 장애인활동지원법은 65세 이후 자동적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되지 못한 장애인에 한해서 일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장애인들은 서비스 시간의 축소와 자부담 확대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여기에 의존하던 장애인들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일이다.비현실적인 서비스 상한시간 제한 현재 활동지원서비스의 상한시간은 180시간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에서는 이에 대해 ‘한정된 재원의 효율적 사용을 위해 상호 조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하지만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은 “180시간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체장애 1급 김 모씨(37)는 근육이 점차 소멸되고 있어 팔을 위로 들어 올리거나 상체를 앞으로 숙이지 못하는 등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한다. 잠을 잘 때도 30분마다 자세를 바꿔줘야 하기 때문에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 현재 180시간의 상한선 때문에, 그는 아침 출근 준비와 퇴근 이후 취침 전까지의 시간만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신변처리를 위해서도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보니 활동보조인이 없는 낮에는 물 한잔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 지체장애 1급 장애인 조 모씨(36)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신경마비로 인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루 24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지만 현 180시간의 상한선으로는 하루에 약 3시간의 서비스밖에 받지 못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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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장애인총연맹 은종군 팀장은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계의 요구가 반영돼있지 않다”고 밝혔다. |
민주당 박은수 의원의 일부개정안과 장애인활동지원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공통적으로 ‘부양의무자’ 조항 삭제가 요구됐다. ‘부양의무자’란 법적으로 수급자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사람이다. 시행령에서는 2촌 이내 혈족까지를 부양의무자로 정의하고 있다. 은종군 팀장은 “현 부양의무자의 범위는 부양자, 피부양자 모두에게 부담을 준다”며 “적어도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1촌까지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부양의무자 조항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최저생계비조차 벌지 못해 기초생활급여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도 피부양자가 있으면 서비스 대상에서 제외된다. 심지어 자식이 마흔이 넘은 장애인이라도 예순이 넘는 부모에게는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가 주어진다. 전장연 남병준 정책실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시행령에 2촌 이내 혈족까지 부양의무자 범위를 확대했다”며 “이는 장애인들의 상황을 명백히 무시한 개악”이라고 분개했다. 야간보호 및 긴급보호, 보호인가 감시인가 장애계는 장애인활동지원법을 ‘독을 바른 떡’에 비유한다. 야간보호 및 긴급보호 서비스의 신설은 활동지원법을 먹음직스러운 떡으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 서비스는 자립생활을 역으로 억압하는 독소조항이다. 야간보호와 긴급보호는 시설급여로 서비스된다. 시설급여란 수급자를 일정한 시간동안 활동지원기관에 입소시켜 보호하는 서비스의 일종이다. 은 팀장은 “자립을 위한다면서 시설급여와 같은 형태를 늘리는 것은 명백한 퇴보”라고 비판했다. 장애인들은 시설 입소를 기피한다. 공동생활 규정이 엄격한 시설이 감옥처럼 느껴지는 탓이다. 이어서 그는 “시설에서는 외출에서부터 식사까지 모든 활동을 시간에 맞춰야 하는 제약이 따른다”며 장애인들이 시설 보호보다 개인적 자유를 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전장연 남 실장 역시 “법안이 오히려 자립생활지원의 목적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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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으로부터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다. c.장애인신문 |
장애계를 더욱 분개하게 한 것은 활동보조 사업지침의 변화다. 올해 복지부는 ‘활동보조 사업지침’에서 직업생활, 학교활동 및 교육에 대한 지원은 활동보조지원법의 영역이 아님을 명확히 했다. 학교와 직장이라는 공간은 원칙적으로 교과부와 노동부가 관할하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장애인활동지원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대표는 “장애인들은 학교 입구까지 활동보조인과 동행하고, 학교 안에서는 특수교육보조원의 보조를 받아야 한다. 장애인은 마라톤 대회의 바통이 아니다”며 복지부의 유권해석을 규탄했다. 전장연 남 실장은 “직장에서 고용노동부에 의해 지원되는 ‘근로지원인 서비스’와 교육과학기술부가 제공하는 ‘특수교육보조원 서비스’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특히 특수교육보조원 서비스는 학습보조로만 서비스가 제한된다. 이동과 신변처리와 같은 직장과 학교 내에서의 일상생활은 활동보조를 받기 어렵다. 또한 ‘근로지원인 서비스’의 경우 대상인원의 수가 적어서 대다수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남 실장은 서비스를 명확히 구분짓고, 독자적인 계획수립을 하지 않는 복지부를 비판하며 “일방적 행정논리로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하는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장애인활동지원법 규탄 기자회견에서 장애학생지원네트워크 김형수 대표는 “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인들에게 손과 발이나 다름없다”며 “손과 발조차 마음대로 못 쓰게 지침을 만든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강조했다. 장애계 입장에서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집행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법이다. 수혜자인 장애인들의 현실적 상황은 고려되지 않았다. 기자회견은 “복지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장애인들은 일상생활에서 제한과 차별을 감내하며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장애활동지원법에 붙은 ‘지원’이라는 단어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