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입김이 새어나왔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두꺼운 산악용 담요를 덮고 난로의 세기를 최고로 조절했지만 말할 때마다 새어나오는 입김은 좀처럼 멈추지 않았다. 2010년 12월 행정관 앞에 들어선 천막 안에는 그렇게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파란 비닐, 플래카드가 조잡하게 장식된 천막은 매서운 한겨울 추위를 막기에 충분하지 않아 보였다. 처음 천막을 찾은 건 1월 25일, 세 번째 천막강연회가 열린 날이었다. 입구의 비닐을 젖히고 내부로 들어섰다. 천장이 낮아 머리를 부딪치지 않기 위해 허리를 구부정히 굽히고 들어갔다.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는 건 얼어서 터질듯 부푼 음료수 통들이었다. 비닐 벽에 기대있는 스티로폼들은 밖에서 스며드는 바람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강연회에 참석한 사람은 기자 3명을 포함해 총 5명에 불과했다. 참가자들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김제동의 토크콘서트’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열띤 토론과 배움의 장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해졌다. 천막 바깥에서 들려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유달리 크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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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5일, 천막강연회의 모습. 천막강연회에 참석한 학생은 다섯 명에 불과했다. |
강연을 맡은 박배균 교수(지리교육과)가 등장했다. 주제는 ‘한국에서의 토건 국가의 출현과 배경’이었다. “참석한 인원에 비해 유인물을 너무 많이 준비했다”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막걸리라도 한 잔 하면서 해야 하는데…”라는 농담을 건네곤 강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담요를 나눠덮고 모여앉아 의견을 나누었다. 내용 자체는 유익했으나 강연은 사실 법인화와는 큰 관련이 없어 보였다. 기자는 강연회의 목적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총학생회 연대사업국 안진영(응생화 08) 씨는 “천막강연회는 법인화에 따른 기초학문고사에 대한 우려와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대안적 지식을 길러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도록 하는 것이 강연회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설 연휴가 지난 2월 15일, 다시 천막을 찾았다. 낮 12시가 되자 학생, 교수, 교직원들이 천막 앞에 속속 모여들었다. 추운 날씨에 목도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채였다. 그들은 천막 농성이 시작된 이후 단 하루도 선전전을 거르지 않았다고 했다. ‘서울대 법인화법 졸속통과 규탄한다!’, ‘대학 기업화의 광풍을 멈추어라’ 등의 피켓을 모두가 나눠 들었다. 열을 맞춰 본부 앞에서 출발한 이들은 자하연, 중앙도서관 등을 거치며 구호를 외쳤다. 서울대법인화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학교의 운명을 결정짓는 민감한 사안인 만큼 농성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무관심해 보였다. 천막농성이 시작된 후, 저녁에 천막을 여러 차례 찾았다. 천막을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밤을 보내면서 그들이 겪는 고충이나 느낌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막은 비어 있었다. 당시 총학으로부터 확대간부수련회, 법인화 집회, 새터 준비 때문이라는 답변을 여러 번 들어야만 했다. 다시 천막을 찾은 날 역시 행사 준비 때문에 아무도 없었다. 결국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지내진 못했지만, 천막에 들어가도 좋다는 허락은 받아낼 수 있었다. 사람의 온기가 없는 천막은 이전보다 더욱 차가운 밤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허겁지겁 전구의 불을 밝히고, 전기장판과 난로의 전원을 켜야 했다. 난잡하게 얽힌 전선과 수없이 꽂혀있는 콘센트, 외벽의 비닐과 스티로폼들을 보면서 자칫 화재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새벽 4시쯤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였지만 얇은 비닐 틈으로 들어오는 외풍과 간간이 들리는 차량의 소음에 자꾸 잠이 깼다. 천막을 지키는 이들이 겪었을 고생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날 오후 4시에는 ‘법인화법안 폐기를 위한 공동 행동의 날’ 문화제가 열렸다. 교수, 학생, 교직원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아크로를 찾았다. 나이도, 소속도, 직업도 각기 달랐지만 이들은 한 목소리로 국립대 법인화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아크로에는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행정관 근처에서 캐치볼을 하는 학생들, 큰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차량들도 시위대와 함께 왔다. 공교롭게도 이 날 문화관에서는 정시모집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됐다. 설레는 대학생활을 기대하는 신입생들과 대학의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사회를 맡은 총학생회 연대사업국장 김훈녕(사회교육 08) 씨는 “오늘 많은 학생들에게 홍보가 많이 된 만큼 앞으로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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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5일, 아크로에서 열린 문화제의 모습. 서울대 교육투쟁특별위원회가 카드섹션을 선보이고 있다. |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돼 간다. 더 이상 하얀 입김은 새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어렴풋이 찬 공기가 남아있는 천막에 들어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천막농성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안진영(응생화 08) 씨는 “2월 말 국회에서 서울대 법인화 법안과 관련된 내용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인 대안이 나오기 전엔 무기한으로 천막농성이 진행되지 않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