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 그 쓸쓸함에 대하여
법인화, 자세히 보니 허점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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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화, 자세히 보니 허점이 보이네

2월 25일, ‘국립 서울대학교’는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한다.‘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법인화법)에 따라 올 12월이 되면 국가소속기관인 서울대학교는 사라지기 때문이다.대신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출범하게 된다.서울대학교는 법인이 됨에 따라 ‘스스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고 법적으로 재산이나 권리를 취득할 지위’를 갖추게 된다.총장의 선출, 예산의 집행 등 대학의 운영과 경영 전반은 이사회가 담당한다.

2월 25일, ‘국립 서울대학교’는 마지막 졸업생을 배출한다.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법인화법)에 따라 올 12월이 되면 국가소속기관인 서울대학교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신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출범하게 된다. 서울대학교는 법인이 됨에 따라 ‘스스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고 법적으로 재산이나 권리를 취득할 지위’를 갖추게 된다. 총장의 선출, 예산의 집행 등 대학의 운영과 경영 전반은 이사회가 담당한다. 본부에서는 법인화를 자율적인 운영 및 개혁, 지속가능한 재정기반 구축의 계기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본부 측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법인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법인화를 찬성했던 서울대학교 교수협의회에서도 통과된 법인화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현행 법인화법안으로는 대학의 자율성과 재정적 안정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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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학내구성원들이 법인화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대학 자율성 증대 말로만?정부와 서울대학교가 법인화를 추진한 핵심적인 이유는 대학경쟁력 강화다. 법인화를 통해 대학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제고해 서울대를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서울대학교에서도 “세계의 대학들과 경쟁하기에는 정부기관으로서 국립대학 체제가 갖는 경직성과 비효율성 때문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법인화를 통한 대학의 자율성 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국가의 부속기관으로는 대학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인화는 국가에서 이사회로 대학의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법인화법 제12조는 이사회의 권한을 ▲총장의 선임, ▲임원의 선임 및 해임, ▲예산·결산, ▲정관으로 정하는 중요 재산의 취득·처분과 관리, ▲ 중장기 대학 운영 및 발전계획 등으로 설정해두고 있다. 인사와 예산, 조직 등 대학운영의 전반을 이사회가 담당하도록 하고 있는 셈이다. 법인 하에서는 이사회가 대학운영 전반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은 법인화법 통과 전부터 쟁점이 됐다. 애초 서울대학교에서는 내부자 중심의 이사회를 정부에 제안했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의 ‘자율적 구상’은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 의해 없던 일이 됐다. 교과부와 국무회의를 거치면서 이사회구성은 외부인사가 2분의 1이상을 차지하는 외부자 중심으로 변경됐다. 외부인사 중에는 교과부,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차관 1인씩이 포함됐다. 교과부 장관이 추천하는 감사 1인이 학교에 상근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오히려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교과부 대학선진화과 김성근 사무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재정지원을 하는 만큼 최소한의 감시는 필연적”이라며 “이사회에 포함된 정부 인사는 2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부가 대학에 간섭한다는 주장은 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인화에 반대하는 측의 생각은 다르다.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이사회에 양 차관과 재계인사가 있는데 실질적으로 누가 발언권을 가지겠느냐”며 “현 법인화법에 의하면 이사회는 정부가 장악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법인화를 환영한다는 뜻을 줄곧 밝혀온 본부 측도 이사회의 구성에 대한 불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본부 측이 발행한 법인화 설명 자료에는 ‘대학의 자율권을 신장하기 위하여서는 이사 중 외부인사를 2분의 1이상보다는 3분의 1 이상으로 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과부 장관 추천 인사를 상근 감사로 임명하기보다는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와 같은 구절도 뒤이어 나온다. 현행 법인화법으로는 자율성을 원하는 만큼 확보할 수 없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대학의 자율성 확보를 위해서 굳이 법인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훈 교수(법학과)는 2010년 6월 경북대 교수회 주최로 열린 대학발전포럼에서 “국립대는 헌법적·실질적으로 국가기관성과 법적주체성을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 국립대 법인화가 대학의 자율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자율성은 관계 법령의 개정과 행정실무 개선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법 개정만으로도 국립대학의 예산집행, 운영, 조직구성 등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게 주장의 핵심이다. 예컨대 ‘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의 지도·감독을 받는다’라고 규정한 고등교육법 제5조에서 ‘지도’ 문구를 삭제하는 방법 등을 통해 대학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총장직선제도 폐지, “낙하산 총장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법인이 되면서 폐지되는 총장직선제도 중요한 쟁점 중 하나다. 총장직선제는 총장추천위원회가 추천한 후보를 이사회에서 표결해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으로 변경된다. 기존 총장직선제는 학생의 참여가 배제되는 등의 한계는 있지만 학내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제도 중 하나로 평가 받아왔다. 학장직선제도 폐지된다. 법인화가 되면서 인사권을 총장과 이사회가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박배균 교수(지리교육과)는 “교수와 직원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당선된 총장은 그 선출의 민주성 때문에 국가권력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부여 받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권력이나 기타 외압을 막아 대학의 자율성을 지킬 수 있었다”며 총장직선제를 평가했다. 총장직선제가 없어짐에 따라 학내민주주의는 물론이고 대학의 자율성도 침해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정부나 외부인사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정부나 재계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총장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 교수는 “간선제가 도입되면 KBS와 같이 낙하산 인사가 총장으로 선임될 가능성도 있다”며 간선제의 위험성을 경고했다.총장직선제와 학장직선제 폐지는 교과부에 의해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1순위 과제로 꼽혀왔다. 2009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 개최한 법인화 설명회에서 이화여대 박정수 교수는 ‘총장직선제를 바탕으로 하는 학내 정치과잉 상태와 교수자치제에 근거한 단과대학·학부·학과의 정치적 할거상태를 극복하는 것’을 법인화의 주요과제로 제시했다. 실제로 2010년 9월 28일 교과부에서 발표한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은 학장직선제 폐지를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총장의 권한을 강화해 대학운영의 효율성을 도모하겠다는 이유에서다. 한편 총장직선제폐지를 정부가 강하게 추진함에 따라 직선제 폐지가 법인화의 숨겨진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갑수 교수는 “총장직선제와 법인화는 공존할 수 있음에도 총장직선제를 무조건 폐지하려는 것은 법인화의 숨겨진 목적이 총장직선제를 폐지해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선출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2005년 법인화가 된 일본의 경우에는 법인화 이후에도 총장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사회 구성도 내부자 중심이다. 법인화가 돼 지배구조가 변경됐지만, 여전히 학교 운영의 중심은 구성원인 것이다. 충남대 김필동 교수는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의 과정과 구조’에서 일본의 법인화를 ‘내부자 지배구조를 유지하되 권력추가 학부 및 교수집단에서 총장으로 이전되는 형태로 귀결됐다’고 평가했다. 재정확충 말하지만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없어…본부와 교과부가 든 법인화 추진 필요성 중 하나는 획기적인 재정 확충이다. 본부 측은 ‘기존 국립대 회계는 각각 분리돼 통합적인 지출이 힘들었고, 한 해마다 결산이 돼 연속적인 지출이 힘들었지만 법인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산학협력과 기술 이전, 수익사업의 활성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서울대는 매년 국가에서 항목별로 예산을 지원받고, 지출되지 않은 항목은 국고로 반납해 왔었다. 회계항목도 국고회계, 기성회계, 산학발전기금, 발전기금으로 나눠져 있어 통합적인 지출이 힘들다는 점도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국유재산법을 통해 제한됐던 수익사업이 가능해진 것도 큰 변화다. 법인화법 제28조는 ‘교육·연구 활동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해두고 있다. 학교채 발행도 가능해졌다. 법인화법만 놓고 보자면, 본부 측의 설명대로 ‘지속가능한 재정기반 구축’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재정확충이 얼마나 가능할지를 곰곰이 따져보면 다른 의견이 나온다. 우선 서울대학교는 법인화 이전부터 산학협력재단을 통해 ‘서울대학교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해 수익사업을 해오고 있다. 교수회관 등에서 부분적으로 시설임대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최갑수 교수는 “법인화 전부터 돈이 될 만한 것은 다하고 있다”며 “일반 기업들도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데 대학이 수익사업을 통해 큰돈을 벌기란 무리다”고 지적했다. 수익사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서울대학교의 생각보다 후퇴됐다. 애초 서울대학교는 ‘수익사업에 의하여 발생하는 수익금에 대해서는 법인세 면세’, ‘자체 재원 확충 노력을 조성하기 위하여 자체수입에 상응하는 추가지원’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통과된 법인화법에서는 ‘서울대에 특혜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유로 법인세 면세 조항은 사라졌고, 추가지원 부분은 장려로 후퇴됐다. 법인화 이후 수익사업을 통한 수익금이 크게 증대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지점이다. 발전기금도 마찬가지다. 본부 측은 ‘더욱 활발한 기부금의 확충’을 통해 재정확충을 위한 자구적 노력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기부금의 확충 방법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다. 사실 발전기금 모금은 법인화 이전부터 학교의 1순위 과제였다. 이장무 전 총장의 임기 중 벌였던 ‘Vision 2025’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전방위적인 노력의 결과 이장무 전 총장은 공약대로 임기 중 3000억원을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발전기금은 2008년 1031억원을 기점으로 해 2009년 803억원, 2010년 708억원으로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이 추세대로라면 법인화 이후 기부금이 늘 것이라고 쉽게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 재정지원이 생각만큼 안 늘면 등록금 인상 가능성도수익사업을 통한 재정확충이 여의치 않을 경우 눈 돌릴 곳은 정부재정지원 확대와 등록금 인상이다. 정부재정지원은 법인화 이후에도 계속된다. 국가부속기관에서는 벗어나지만 여전히 국가가 설립하는 ‘국립대학법인’의 지위를 가지기 때문이다. 법인화법 제30조에서는 ‘학교의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위하여 매년 인건비, 경상적 경비, 시설확충비 및 교육·연구 발전을 위한 지원금을 출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본부 측은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싱가포르국립대가 서울대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했다’며 ‘국가의 재정적인 지원은 서울대학교 법인화의 필수 요건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정부재정지원이 법인화의 성공여부를 가르는 요소인 만큼 앞으로 어느 정도 선으로 지원될지가 중요해진다. 2009년 교과부에서 작성한 비용추계에 따르면 서울대학교에 지원되는 국고는 연간 7.6%씩 증가된다. 이 계산대로라면 2010년 3,152억원 수준인 국고지원액은 2015년에는 4,072억원까지 증가한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재정 중 국고지원의 비율을 따지면 다른 수치가 보인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국고지원비율은 30% 초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법인화의 성공 모델로 들고 있는 동경대의 국고지원비율이 50% 대임을 고려해보면 정부재정지원은 법인화 후에도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박배균 교수는 “2008년 고등교육 예산은 GDP 대비 0.6% 수준으로 OECD 평균 1.1%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법인화는 고등교육예산을 더 이상 늘리지 않고 현행 수준을 유지하려는 속셈이다”고 지적했다.등록금 인상을 통한 재정확충 가능성도 제시된다. 그러나 당장 등록금을 폭발적으로 인상시키기는 어려워보인다. 대학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등록금 상한제, 등록금심의위원회 등이 2010년 이후 신설됐기 때문이다. 김성근 사무관은 “등록금은 등록금상한제에 의해 3년간 물가 상승률의 1.5배 이상 인상될 수 없도록 제한돼 있으며 학생과 학부모가 참여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도 만들어져 있으므로 등록금 인상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등록금 폭등을 막는 제도적 안전망 중 하나인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문제가 발생했다. 1월 17일, 본부는 학생대표의 불참 속에 등록금심의위원회를 강행했다. 당시 학생대표는 등록금심의위원회 구성의 불평등한 구성 등에 항의한다는 의미로 불참했다. 본부 측은 학생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등록금심의위원회를 강행하는 이유로 등록금이 동결됐고 학사일정이 촉박하다는 점을 들었다. 등록금 폭등을 막는 제도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단기적으로는 등록금이 폭등하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등록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 10위권 대학으로의 목표를 제시한 ‘2007~2025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 보고서’는 ‘서울대가 법인화 체제가 되는 경우 저렴한 등록금은 더 이상 지속가능한 원칙이 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최갑수 교수는 “당장 등록금의 폭등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국고지원이 획기적으로 늘지 않는 한 5년 후만 돼도 등록금은 상당히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최 교수는 “법인화는 결국 값싼 등록금으로 누구나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국립대학체제를 완전히 무너뜨려 교육의 공공성을 크게 훼손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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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내에서는 기초학문 고사, 등록금 인상 등 법인화 문제점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있어왔다. 사진은 2007년 교수협의회에서 개최했던 법인화 대토론.

기초학문보호, 서울대만 잘 한다고 되지는 않아기초학문의 보호 부분도 법인화 초기부터 쟁점이 됐던 사안이다. 법인화가 되면 돈 안 되는 기초학문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줄곧 제기됐다. 산학협력, 수익사업 등으로 재정을 확충해야 하는 만큼 돈 안 되는 기초학문은 소외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정부나 본부 측은 이런 지적이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인화법을 통해 기초학문 보호와 육성을 법인의 의무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화법 제31조 1항은 ‘기초학문 등 필요한 분야의 지원·육성에 관한 4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공표하고, 매년 실행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고 돼있다. 본부 측도 ‘정관 제정 시 기초학문 등의 보호 규정을 마련해 대학의 간접연구경비 중 일부를 기초학문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기초학문을 보호하는 제도적 버팀목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제도적인 보완책이 마련됐음에도 법인화 자체가 기초학문에 친화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법인화법에 따르면 서울대학교는 4년 단위로 대학운영성과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학운영계획을 수립해 매년 성과를 평가받아야 한다. 평가결과는 예산 지원과 직결된다. 1년마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최갑수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는 기초학문이 당장 고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기초학문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야 하는데 매년 대학운영성과를 평가 받아야 하는 법인화 체제 아래서 장기적인 지원이 계속될 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기초학문의 보호가 가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기초학문이 서서히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서울대학교에 이어 각 지방 거점 국립대들이 법인화가 되면 기초학문이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예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북대 교수는 “경제규모가 전국의 3%도 안 되는 전라북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전북대가 법인화 된다면 결과는 뻔하다”며 “지방 국립대는 법인화 이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상대적으로 기반이 열악한 지방 국립대의 경우 법인화 이후 재정적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재정적 위기를 겪게 되면 돈 되는 학문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상대적으로 성과가 빨리 나오고 돈이 되는 응용학문에 지원이 집중될 수 있다. 최갑수 교수는 “전국적으로 서양사학과 교수는 200명 정도 된다. 그런데 이 교수의 대부분이 국립대에 있다. 사립대들은 서양사학과 교수 자리가 비어도 뽑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립대가 무너지면 서양사 졸업생들이 설 강단이 줄어든다. 학문의 재생산이 되지 않고, 결국 서양사 같은 기초학문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04년 법인화를 진행한 일본의 경우는 이런 지적을 뒷받침해준다. 2010년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행한 ‘국립대학법인화 후 6년, 현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라는 보고서에는 ‘인문학분야의 교원수 감소가 현저하다’고 시인하고 있다. 2004년 법인화 이후 인문학분야의 교원수는 703명이 감소해 법인화 이전보다 11.4%나 줄어든 상황이다. 기초학문 고사를 ‘기우’로 치부하기엔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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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화 이후 일본 도쿄대학의 ‘타임즈세계대학평가’ 순위는 2004년 12위에서 2010년 26위로 하락했다.

법인화, 정말 대학경쟁력에 도움이 되나?법인화가 대학 경쟁력 강화와 별다른 관련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4년 법인화를 진행한 일본의 경우 ‘더타임즈 세계대학평가(the times world university ranking)’에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국립대인 도쿄대학의 경우 2004년 12위던 순위가 2010년에는 26위로 하락했다. 교토대학도 29위에서 57위로 추락했다. 법인화 이후 논문의 수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서울대학교가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내세웠던 목표가 더타임즈 세계대학평가 10위 진입이라는 점을 상기해봤을 때 우리가 주목할 만한 변화다. 일본국립대학에서 법인화 후 하락한 것은 순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발표되는 논문의 수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 보고서에 따르면 국립대학법인의 학술연구 논문 수는 2004년도에 59,758건, 2005년도 63,066건이 소폭 증가한 후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08년에는 56,735건으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이를 ‘연구 쪽에 그늘이 지기 시작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 외부자금 획득, 평가나 홍보 등에 쓰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법인화가 반드시 연구경쟁력 강화와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지점이다.대학경쟁력 향상을 위해서는 법인화보다 ‘지식공동체’를 복원하는 것이 더 시급한 과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배균 교수는 “대학의 경쟁력은 지식공동체가 얼마나 살아있는지에 달린 것”이라며 “지식공동체는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조화로운 발전과 대학 간 균형발전 등을 통해서 이뤄지는데 법인화는 이것을 망쳐놓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한 박 교수는 “법인화가 된 이후 진행될 과도한 경쟁도 대학경쟁력을 떨어뜨릴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교수들이 과도한 연구비 수주 경쟁 등으로 인해 정치적 로비로 내몰릴 가능성이 크고, 성과에 치중한 나머지 학문의 상업화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찬반격론 속에 올 12월 법인 출범을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설립준비위원회의 구성이 끝나면 정관 등 세부사항을 논의할 예정이다. 정관에는 ▲업무 및 집행, ▲재산 및 회계, ▲교육 및 연구, ▲임원과 교직원에 관한 주요 사항, ▲평의원회, 학사위원회 및 재경위원회에 관한 사항 등 법에서 정해놓지 않은 대부분의 내용이 포함된다. 최갑수 교수는 “지금 당장은 정관에 공공성, 참여성이 담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법인화를 근본적으로 폐기하려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절대로 끝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대학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쓰는 곳”이라며 “대학이 기업과 권력의 논리에 종속되기 시작하면 국민으로부터 대학과 학문은 신뢰를 잃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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