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가을날 북촌 한옥마을은 한옥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카메라를 든 가족들부터 감탄사를 연발하는 일본인 관광객 무리에 이르기까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골목길로 접어들자, 길을 따라 양편에 늘어선 한옥들이 구경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깔끔하게 개보수한 신식 한옥들이 눈길을 끌었지만, ‘푸른눈의 한옥지킴이’ 데이비드 킬번 씨의 한옥집은 그곳에 없었다. 번지수를 추적한 끝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큰 트럭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좁은 골목을 겨우 발견했다. 모퉁이를 돌자,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아한 킬번 씨 부부의 가회동 31-79번지 한옥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회동 31번지는 ‘북촌 한옥마을’의 얼마 남지 않은 한옥밀집지역이다. 가회동, 삼청동, 계동 일대에 가득했던 한옥은 2000년 무렵에는 947개만 남았고, 현재 북촌의 한옥은 900채도 되지 않는다. 1985년에 북촌 전체에 1,518개의 한옥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급격히 줄어든 수치다. 킬번 씨의 부인 최금옥 씨는 “실제로 우리가 보기엔 500개도 채 안남은 것 같다”며, “매일 매일 한옥이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외국인임에도 앞장서서 한옥의 중요성을 알린 영국인 데이비드 킬번 씨와 부인 최금옥 씨는 북촌의 한옥을 지키려다 평생 씻을 수 없는 비극을 겪었다. 2005년 이웃주민들이 한옥 보수 공사에 열을 올리던 무렵, 허가받지 않은 포클레인이 무단으로 침입하는 등 불법이 자행돼 킬번 씨의 한옥이 일부 훼손됐다.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던 킬번 씨를 시공사 직원이 떠밀면서 사건이 일어났다. 킬번 씨는 이 일로 기존의 병세가 악화돼 실명 위기에 처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위에서 쉴 새 없이 먼지와 소음을 일으키고 고의적으로 집 앞에 오물을 두고 가는 등 집단 따돌림이 시작됐다. 이 사건으로 함께 살던 친정어머니가 큰 충격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현재 킬번 씨의 병세는 많이 호전됐으나, 아직도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상태다. 최금옥 씨는 “남의 나라 문화를 위해 헌신했지만, 이런 결과만이 돌아와 이제는 지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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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식으로 개, 보수하는 한옥들로 인해, 가회동 31번지는 소음과 먼지로 가득 차 있었다. |
간판만 세워 둔 한옥 개발제한 정책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현재 서울시에 의해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북촌은 조선시대부터 최상류층의 거주지로 인식돼 왔다. 1920년 이후에는 중소규모의 ‘도시형 한옥’이 대거 들어서게 됐다. 이 한옥들은 좁은 터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밀집해서 지어졌다. 1976년 서울시는 북촌 지역을 최초의 한옥밀집지역으로 간주하고 ‘민속경관지역’으로 지정했다. 최금옥 씨는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으로 ‘베니스헌장’을 꼽았다. 1964년에 국제기념물유적협위회는 회의를 열어, 역사적 기념물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여기고 미래세대를 위해 이를 보호하는 공동의 책임을 천명한다. 헌장은 역사적 건물의 보존과 보수를 지침하는 기본원칙을 국제적 차원에서 규정했다. 당시 선진국 대열에 들길 원했던 한국 역시 이에 서명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시의 북촌 개발제한 정책이 마련됐다. 1984년 4월에는 북촌 지역 건축물에 대한 형태나 외관에 대해 규제를 시작했다. 최금옥 씨는 이를 “북촌에 한옥보존마을이라는 간판만 단 것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구체적 대안 없이 개발제한만 내세운 정책은 이내 문제를 드러냈다. 1970년대 산업화가 본격화되면서 강남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던 시기에 북촌의 지가는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개발제한 정책으로 인해 북촌 내 건물을 함부로 개보수하지 못하게 돼 자산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주민들은 반발했고, 매일같이 데모를 했다. 중산층은 일찌감치 집을 팔고 떠났지만, 일부 상류층과 떠날 수 없었던 하층민만 북촌에 남게 됐다. 결국 개발정책은 한옥을 진정으로 보존하지 못하고, 폐해만을 남겼다. 건물의 재보수가 제한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불편하고 위험한 주거환경을 개선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주민 중 한명이 연탄가스로 질식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엉뚱하게도 제도의 허점을 노린 대기업들의 개발을 부추기기도 했다. 대기업들은 북촌의 저렴한 지가를 이용해 땅을 대거 사들이고 불법으로 개발을 시작했다. ‘한옥보존구역’이라는 간판 아래서 현대식 건물들이 지어졌다. 최 씨는 “원주민들의 재산권이 박탈된 자리에서 기득권들이 독점적으로 땅 투기를 했다”며 위선적인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이어서 최 씨는 “문서 서류상에만 ‘불법건축물’이라고 쓸 뿐, 이미 지어졌다는 이유로 묵과해버렸다”고 정부와 재벌의 결탁을 지적했다. 그렇게 북촌 일대의 많은 한옥들은 급격히 줄어들어, (언제?) 2,756개였던 한옥이 1990년에는 겨우 1,242개만 남았다. 사람 사는 마을이었던 북촌, 재벌들의 투기장이 돼… 1990년대에 접어들어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서울시는 그제야 개발제한 정책을 완화한다. 이는 북촌 정책 자체의 변화라기보다는 건축법의 전반적 규제 완화의 결과였다. 그렇게 북촌에는 대규모 신축건물과 연립주택이 들어서게 되고, 점차 전통지역으로서의 가치를 잃어간다. 서울시는 한옥보존사업을 재검토해 2001년부터 ‘북촌 가꾸기 사업’을 시행했다. ‘북촌 가꾸기 사업’은 한옥 등록제를 통해, 주민들이 한옥을 등록하면 서울시가 수리비 등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주고 일정 의무를 부여하게 하는 제도다. 하지만 최금옥 씨는 “국민의 혈세를 들여 좋은 계획을 세우는 것 까지는 좋지만, 시행과정에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라고 비판했다. 당시 서울시가 정책을 재정비하고 북촌 일대를 재검토했을 때, 북촌의 한옥은 거의 사라지고 유일하게 ‘가회동 31번지’만 1920년대 지어진 전통한옥이 양호하게 보전돼 있었다. 서울시는 31번지를 ‘한옥특별보호구역 S1지역’으로 표기하고 특별공고로 공표한다. S1지역 안에서는 일부 개발제한 조항이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최 씨는 “이미 개발한 구역은 G6, G7 등이라고 명명해 사실상 사면시키고, 보존구역은 축소시켰다”며 “한옥보존이라는 본 목적은 온데간데 없었다”고 평가했다. 오를 것이라 기대했던 S1지역의 지가는 여전히 동결된 상태였다. 이때 경제력을 갖춘 외지인들이 몰려와 개발제한정책으로 낮게 유지된 땅값으로 한옥을 보존용이나 별장용으로 매입했다. 대학교수나 사업가 등으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등장해 한옥을 대거 사들이기도 했다. 이들은 한옥 매입을 주 활동으로 하지만 이는 주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최금옥 씨는 “개발제한정책으로 떨어진 땅값을 이용해 한옥을 사들이고는 직접 살지 않아 밤에 한옥은 텅텅 빈다”고 밝혔다. 주거 지역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유령마을’이 된 현실을 진정한 보존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름다웠어. 그 아름다운 한옥들을 부수고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버린 거야.” 최금옥 씨와 킬번 씨는 1988년 북촌에 처음 들어와 한옥을 사던 때를 회상했다. 한옥에서 살면서 킬번 씨는 한옥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한옥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수도 없이 찍었고 외국잡지에 기고도 냈다. 최 씨는 “우리는 새가 와서 울어주고 장미가 피고 바람이 불고…이런 것들에 행복을 느껴 한옥에 사는 사람들이다”며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집을 투기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사람들의 낮은 인식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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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눈의 한옥지킴이’ 데이비드 킬번 씨는 전통과 현재의 공존을 역설했다. |
전통과 단절된 문화 인식 속에서 무너지는 한옥 북촌에 들어서자마자 한옥에 반했다는 킬번 씨는 ‘전통’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킬번 씨는 “문화란 과거와 상호작용하는 동시에 현재에 맞춰가며 만들어가는 것이다”라며 문화의 발전이 과거에 기반을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도시에서 이뤄지는 개발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킬번 씨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이 가운데 영감을 얻어 과거의 재산을 잘 지켜나가야 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인식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전통의 보존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환경에 잘 맞춰서, 그 진정성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킬번 씨는 한국의 획일적 개발 문화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그는 “개발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왜 굳이 전통 문화유산을 없애고 새 건물을 지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고만 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킬번 씨 부부의 한옥은 지금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여도 계속 보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며 최금옥 씨는 집안 곳곳을 보여줬다. 킬번 씨의 한옥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앞뜰이 있었고, 한옥집 구석구석 최 씨의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었다. 하지만 최 씨가 방문을 열자 금이 간 콘크리트 벽이 눈에 들어왔다. 최 씨는 “옆집에서 무단으로 우리 집을 침입해 공사를 진행했다. 저쪽 벽은 거의 무너지고 있다”며 집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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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아름답게 지켜왔던 한옥집에서 최금옥 씨가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다. |
사람들의 한옥에 대한 인식이 10년 전보다 개선됐냐는 질문에 최금옥 씨는 “전혀”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킬번 씨 부부는 현재 ‘가회동닷컴(http://kahoidong.com)’을 통해 지속적으로 한옥 보존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터뷰 내내 한옥을 신식으로 개•보수하는 주변의 트럭소리와 공사장의 소음이 울려 퍼졌다. 최 씨는 “현재 이 순간에도 한옥은 사라지고 있다”며 사람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씁쓸한 마음으로 가회동 31번지를 빠져나오며 교묘하게 개량된 한옥들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지나쳤다. 공사의 소음과 먼지로 둘러싸인 킬번 씨의 한옥은 점점 기억 속으로 밀려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