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넌 뭐가 하고 싶니.무슨 공부가 하고 싶어?”3월에 갓 학교에 들어왔을 때 함께 밥을 먹었던 선배가 던졌던 질문이었습니다.뭐라 대답해야할 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충 얼버무리며 답을 회피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그 전까지 누구도, 저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니까요.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어떤 지식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지 고민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넌 뭐가 하고 싶니? 무슨 공부가 하고 싶어?”3월에 갓 학교에 들어왔을 때 함께 밥을 먹었던 선배가 던졌던 질문이었습니다. 뭐라 대답해야할 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대충 얼버무리며 답을 회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전까지 누구도, 저에게 저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으니까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나는 어떤 지식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지 고민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미 ‘짜여진’ 커리큘럼에 따라 착실히 공부하고, 주변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양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던 까닭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어떤 이유도, 다른 생각들도 자리 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도…겨우내 단단해진 가지를 뚫고 나오는 봄순이 한바탕 진통을 겪듯, 이십년 간 굳어진 타성을 깨고 주체로서 ‘나’의 고민을 하는 과정들은 무척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가 꿈꾸는 것이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진짜 내가 욕망하는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주어진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거대한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지식일 수도 있음을 비판적으로 되짚어 보는 것… 어렵지만, 그러한 고민들을 통해서 자유로운 ‘나’를 구성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배하는 ‘자치’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하지만.안타깝게도 대학 1년을 보내면서 알게 된 것은 ‘자치’라는 가슴 벅찬 단어는 원한다고 해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서울대 법인화법에 반대했던 지난 비상총회, 점거, 동맹휴업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법인화를 추진하는 본부의 모습. 과/반에서 이야기되지 않는 여성주의, 학생회를 책임질 사람이 없거나 무관심으로 인해 무산되는 선거들… 이러한 모습들 속에서 ‘나’는 점점 더 신자유주의적인 교육 체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나’는 점점 더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불편함들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되고, ‘나’는 점점 더 내 고민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들을 잃어갑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나는 욕망하는 내 삶의 주체가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이 시대의 파편화된 한 개인에 불과하겠지요.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의 우리의 시대를 이성적으로 판단할 지식, 그리고 그러한 분석을 토대로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구조들에 맞설 수 있는 실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고민들을 함께 할 내 옆에서 숨 쉬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학생 사회의 위기’라는 기표만 넘쳐흐르고, 일상 속에서의 모든 정치의 과정이 삭제된 현재 상황에서 54대 총학생회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논쟁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의 복원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토론을 통해 그러한 억압을 만들어내고 있는 구조를 분석해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함께 우리를 억압하는 기제들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공간이 요구됩니다. 총학생회가 해야 하는 것은 깃발을 들고 나서는 일이기에 앞서, 정치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과/반, 학회 등 기층 단위를 복원함으로써 집단적 정치의 장을 마련하는 것입니다.우리가 꿈꾸는 공간은 단순히 사람이 ‘모여 있는’ 공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하는 농담 속에 들어있는 폭력성에 대해서 발화할 수 있는 곳, 우리가 내몰리고 있는 학점 경쟁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곳, 우리가 하는 모든 고민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지식을 생성해내는 곳. 그곳이 우리가 바라는 자기 해방의 공간이고, ‘대학’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에서는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삶 속의 정치에 대해서 말을 하기 어려워진 것은 어쩌면 우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기를 바라는 거대한 권력에 의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정치적이기에 더욱 더 정치적일 수 있는 공간, 그 속에서 그 어떤 권력도 아닌 ‘우리들’의 주체적 삶과 자유를 위해 대안적인 지식을 창출해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에 기반 하여 끊임없이 갈망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12년, 우리의 언어들을 가로막고 있었던 그 모든 것들에 저항할 수 있는 학생회, 기층에서부터 정치의 울림으로 우리의 삶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54대 총학생회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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