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의 영웅 되기, 그 눈물겨운 일대기
故 이소선 여사, 이 땅의 전태일들의 품에 영원히 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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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소선 여사, 이 땅의 전태일들의 품에 영원히 안기다

은 9월 7일 노제 현장인 전태일 다리를 찾아 고인에 대한 추모열기를 담았다.이후 故 전태일 열사가 1964년부터 일한 평화시장을 찾아 그가 목숨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故 전태일 열사는 불길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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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재단사 故 전태일 열사는 불길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외쳤다. 그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당부했다.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십시오.” “그래,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그 후로 한 평생을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아간 故 이소선 여사. 2011년 9월 3일 별세한 그의 장례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추모 속에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 <서울대저널>은 9월 7일 노제 현장인 전태일 다리를 찾아 고인에 대한 추모열기를 담았다. 이후 故 전태일 열사가 1964년부터 일한 평화시장을 찾아 그가 목숨바쳐 지키고자 했던 가치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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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아들 전태일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태일이는 참 사람을 좋아했어야. 이 말 하니까 생각난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나한테 와서 열사님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게 말이냐? 어느 부모에게 자식이 열사겠냐. 그냥 아들이야. 태일이는 열사도 투사도 아닌 사람을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야.”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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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전태일 다리에서 열린 故 이소선 여사의 노제에 많은 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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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차남이자 故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태삼 씨가 추모객들을 위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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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태일평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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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다리에는 열사의 동상과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동판 4,000여 개가 있다. 다리 뒤로 평화시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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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평화시장. 1.5미터 높이에 8평 남짓한 다락방, 15개의 재봉틀, 30명이 넘는 종업원, 하루 15시간 노동.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평화시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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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시장 상가 내부. 1962년에 현대식 건물이 들어선 이후 현재 2,000여 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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