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역에서 15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달려 도착한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고요했다. 우뚝 솟은 여러 대의 크레인만이 서늘하도록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있었다.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이 현장 총파업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다. “이제는 조선소에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생활이 됐다”는 한 가족대책위원회 소속 어느 가족의 말처럼,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원들에게 이제 파업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투쟁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아빠를 보기 위해 조선소에 놀러오곤 하던 아이들은 이제 조선소 공장과 마당이 익숙한 놀이터인 양 해맑게 뛰어놀고 있었다. 사측의 정리해고와 그에 맞서는 파업, 또다시 추가되는 정리해고와 그에 대응하는 파업. 이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아득해진 해고와 파업의 연속에 노동자와 가족들은 어느새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총파업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았다. 일방적인 정리해고 통보… 고공 크레인 농성까지 지난 2009년 9월, 한진중공업 노조는 사측과의 임금 단체 협상이 결렬돼 파업을 시작했다. 약 2개월 후 사측은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했다. 사측은 전체 직원의 약 30%를 감원하겠다고 밝혔다. 선박 수주가 거의 없어 경영난을 겪게 됐고, 따라서 ‘인력 축소를 통한 원가 절감으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사측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한진중공업의 영업실적을 봤을 때 10년간 꾸준히 흑자를 기록해 오고 있으며, 사측에서 이윤이 높은 선박 건조만을 고집해 선박 수주 부진을 겪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정리해고 이유에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노조는 부분파업을 벌이고, 1인 시위도 진행했다. 노조는 사측과의 최종협상에서 인력 감축으로 얻게 되는 비용의 3분의 1을 노조에서 제공하겠다는 안을 제시했지만 사측에서 이를 거절했다. 결국 사측은 정리해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 희망퇴직 신청도 받았다. 결국 약 410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을 신청해 조선소를 떠났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문화체육부장 A씨는 “희망퇴직을 신청하신 분들은 막말로 ‘더러워서’ 그만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A씨는 “2~30년 동안 청춘을 다 바치면서 회사를 이만큼 키웠는데, 회사는 그런 노동자들에게 대우는 못해줄망정 노조 활동을 탄압하기만 했다”고 덧붙였다. 노사는 추가적인 정리해고 중단과 생산성 향상에 함께 노력할 것을 조건으로 합의했고 갈등은 일단락됐다. 그런데 2010년 12월, 사측은 또다시 생산직 직원 400명의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결국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했다.
| ###IMG_0### |
| 50m 타워크레인 위에서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과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이 투쟁을 다짐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
문제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던 2011년 1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조선소 내에 있는 85호 크레인에 홀로 올라간 것이다. 한 달 후에는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과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역시 조선소 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각각 35m, 50m 높이의 크레인 철골 위에 천막을 덧대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문화체육부장 A씨는 “회사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수배를 내리는 바람에 크레인에서 내려와도 조선소 밖에는 나갈 수 없을 것이다”며 “노조원들이 2~30명씩 붙어 농성하신 분들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아마 ‘학교’에 다녀오셔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지었다. 85호 크레인에서의 고공농성… 정리해고와 파업 ‘데자뷰’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와 파업, 그리고 이어진 고공크레인농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3년에도 당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이던 김주익 씨가 임금 단체협상 타결을 요구하며 크레인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였다. 사측은 임금 단체협상에 성실히 참여하기는커녕 오히려 노조 간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진행했다. 경찰에서도 노조 간부들에 대해 집회․시위에 관한 법률 및 폭력행위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체포 영장을 발부, 한진중공업 시위 현장에서 강제 연행을 시도하려 했다. 며칠 후 김주익 지회장은 농성을 벌이던 크레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노사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결국 한 달여 만에 타결됐다. 노조가 파업에 나선 이후 약 1년 동안 요구했던 것들이 김주익 지회장이 목숨을 끊은 후 한 달 만에 모두 해결된 것이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문화체육부장 A씨는 “김주익 지회장 자살 이후에 회사가 노조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었다”며 “사측은 합의를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노조가 내민 문서 내용을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막 도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 ###IMG_1### |
|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중인 크레인. ‘해고는 살인이다’ 문구와 함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사측은 거듭되는 정리해고의 이유로 조선업계 경기 불황을 꼽고 있다. 새로운 선박 수주 건수가 거의 없어 일감이 줄고, 따라서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노조 측에서는 사측이 영도조선소를 폐쇄하기 위해 구조조정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며 사측의 설명을 수긍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측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 수주를 몰아줘 결국 조선소를 국외로 이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2007년, 노사 간 체결한 ‘필리핀 수빅 조선소 관련 해외공장 특별합의서’ 가운데 ‘해외공장이 운영되는 한 조합원이 정리해고 등 단체협약정년을 보장하지 못할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사측이 국내 인력의 구조조정에 나서는 것은 결국 이 합의서를 위반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A씨는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한진중공업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흑자를 내왔다”며 “결국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진중공업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을 손톱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지, 노동자들이 기여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는 사측이 강경하게 정리해고를 진행해 나가는 것을 두고, “2003년 김주익 지회장 자살 이후 너무 많은 양보를 했던 사측이 5~6년 동안 어떻게 하면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번에 이렇게 달려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집에 오지 못하는 아빠… 지쳐가는 사람들
| ###IMG_2### |
| 지난 5월 5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열렸다. 이날 조선소는 아빠를 보러온 아이들로 붐볐다. |
기자가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찾은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오랜 파업으로 인해 집에 오지 못하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어린이날을 맞아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영도조선소로 향했다. 어린이날 행사를 위해 마련한 무대 위에서 아이들은 입을 모아 ‘아빠 힘내세요’ 노래를 불렀고, ‘아빠 힘내세요’를 주제로 한 백일장과 사생대회도 열렸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조선소 앞마당을 내려다보며, 50m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여러분도 힘이 들 텐데 많은 용기를 주셔서 감사하다”며 “우리 어린이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이 날 진행을 맡은 문화체육부장 A씨는 “우리 가족들은 내가 해고된 줄도 모른다”며 “본가에서 받은 돈, 그 동안 만든 비자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가족대책위 소속으로 이 날 행사에서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를 챙겨주던 B씨는 “사람들은 이전까지 한진중공업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데, 故 김주익 지회장 돌아가시고 나니까 그렇게 기자들이 많이 몰려들었다”며 “언론에서 우리를 이용한다는 느낌도 받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B씨는 “이제 그냥 생활이 됐다”며 “가족대책위 일을 하던 엄마들이 어린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 아이들이 아플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재남 민주노총 부산본부 조직국장은 “가장 힘든 게 뭔지 아느냐”며 기자에게 먼저 질문을 던졌다. “함께 싸우던 동료들이 하나 둘 씩 포기하고 떠날 때, 떠날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가장 힘들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 ###IMG_3### |
|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서수한 수석부지부장은 “사측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어 노조의 대응 방식을 밝히기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
이 날은 부산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서 ‘한진중공업 부당해고 구제신청 심판회의’ 판결이 나오기 하루 전날이었다.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은 “우리가 반드시 내일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측의 로비나 지노위의 잘못된 판단으로 좋지 못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서수한 수석부지부장 역시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며 “지노위 판결에 따라 노조의 대응 역시 달라질 것이며 사측이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확신할 수 없어 노조의 대응 방식을 밝히기도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부산 지노위, 부당해고 구제신청 기각… 기약 없는 노조 투쟁도 계속돼 지난 5월 6일, 결국 부산 지노위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가 낸 ‘한진중공업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기각했다. 사측이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해 희망퇴직 등의 절차를 충분히 거쳤고, 그 과정에서 부당노동행위는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 사람 – 아마 노조에서 일하는 간사 – 인터뷰 하나 추가할 예정) 이에 부산 지노위 소속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23명 전원이 항의 사퇴했다. 지노위 소속 민주노총 노동자위원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부산본부,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등 역시 항의 성명을 내고 부산 지노위의 판결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노위 소속 민주노총 노동자위원 23명은 기각 판정에 항의해 지노위 앞에서 무기한 밤샘 천막농성에 들어갔고,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26명은 5월 18일부터 민주당 당사에서 농성에 돌입한 상태다. 지난 5월 12일에는, 약 3개월 동안 크레인 고공농성을 벌이던 채길용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과 문철상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장이 농성을 중단하고 크레인에서 내려왔다.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투쟁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다.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은 여전히 故 김주익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가족대책위 역시 부산 시가지에서 피케팅 활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다. 파업이 오래 지속된 탓에 새로운 판결이 나와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가 쉽지 않지만, 이들의 투쟁은 오늘도 ‘기약 없이’ 계속되고 있다.
| ###IMG_4### |
| ‘노동자가 우선이다’ 글귀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아이가 그 앞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