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날, 지하철에서 글로벌 에티켓을 홍보하는 광고를 보게 됐습니다. 남에게 먼저 인사하고, 핸드폰 사용 예절을 지키고, 인터넷 악플은 달지 말고, 공공시설물을 내 것처럼 사용하고,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해서 버리고….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이러한 에티켓들을 지키자고 새삼 광고하는 이유는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서였습니다. 비슷한 경험은 극장에서도 반복됐습니다. 커다란 스크린을 채운 광고는 시민들이 ‘글로벌 에티켓으로 완성되는 G20 정상회의’를 위해 ‘대한민국의 외교사절’인 우리가 지켜야할 것들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밥을 먹던 도중 말하려는 아이를 조용히 시킨 부모들이 주변의 식당 손님들에게 사과하는 모습,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질서 정연한 모습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자는 권유였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서 G20 정상회의에 ‘찬물 같은 것’을 끼얹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제가 얼마나 유치하고 비뚤어진 사람으로 보일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오며가며 광고를 수십 번도 넘게 반복해서 보면서, 가끔씩 나를 가르치려드는 국가는 대외적으로 얼마나 수준 높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따지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끼어들었습니다. 일류 선진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 국가가 G20 정상회의를 유치시켰기 때문에, 이젠 국민들만 글로벌 에티켓을 지키면 우리의 ‘국격’은 자연스레 격상되는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위해 국가는 거리의 노숙인들을 잠시 숨길 방법을 찾았습니다. 개개인의 노력과 재능 기부가 맺은 결실인 BIG ISSUE가 노숙인들의 안정적인 자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는 상반된 태도였습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말쑥한 차림에 백인 외국인에게는 먼저 길을 안내하라고 권유하면서,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단속은 강화했습니다. 단속 과정에서 출입국 관리소 직원에게 폭행을 당하고, 도망치기 위해 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달려야 했던 이주민들의 인권을 존중하려는 태도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의 핵문제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한국이 KOREA DISCOUNT를 당해왔다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문제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는 찾기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G20 정상회의를 빌미로 기본권이 보장하는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국가의 어두운 모습은 G20 정상회의 유치라는 휘장 뒤에 어설프게 감추어두고, 국민들에게 글로벌 에티켓을 가르치기만 하면 ‘국가의 격’을 높일 수 있습니까? 이것이 <서울대저널>이 ‘외교사적 쾌거’라는 G20 정상회의에 -자그만 바가지로- 찬물 같은 것을 끼얹어보자고 결심한 계기였습니다. 어차피 G20 정상회의 기간 동안 서울 시민들에게 쏠리는 외국인들의 시선은 ‘1박 2일 기간 한정판’에 불과합니다. 그 때 서울 시민들의 친절함으로 ‘국격’을 높이겠다는 생각은 눈속임에 가깝습니다. 법질서, 정치문화, 도덕적 수준 등 사회 전 부분을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준으로 격상시켜 ‘국격’상승을 도모하겠다는 정부의 설명과도 다릅니다. 아직 G20 정상회의까지는 2달이나 남아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내실 있는 ‘국격’ 상승을 위해 남에게 들키기 전에 숨기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