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완동물을 기르는 인구가 어느덧 1000만을 넘어섰다. 길가에 늘어선 동물병원과 애완동물 용품점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직접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더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애견카페와 고양이카페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에는 애완동물들의 복지를 위해 애완동물용 보험, 애완동물 장례제도 등의 서비스도 제공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 학대 사건이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한다. 지난 6월 고양이를 수차례 폭행하고 창밖으로 던져 숨지게 한 고양이 ‘은비’ 사건, 테이프로 얼굴과 다리가 모두 감긴 채 버려진 강아지가 발견된 사건 등이 일어났다. 나날이 애완동물을 위한 새로운 서비스가 마련되고 있지만 동물 학대 사건도 끊이지 않는 요즘, 애완동물을 넘어 반려동물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가 바로 그들이다. 다양한 사연이 모여 만들어진 카라 지난 8월 10일,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카라 사무실을 찾았다. 도착하기 전까지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른 사무실 풍경이 매우 낯설게 다가왔다. 카페처럼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는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다. “입양되길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는 영화감독 임순례 씨가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카라의 대표를 맡은 지 1년 남짓 됐다는 임 대표는 “처음에 명예이사로 있다 2~3년 전부터 대표 제의를 받았었는데 영화 관련 일을 끝내고 시간이 나면 이런 일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일이고 시간을 ‘내서’ 해 보자는 생각으로 대표직을 맡게 됐죠.”라고 말했다. 카라(KARA)는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의 약자로, 2002년 4월 ‘아름품’이라는 단체로 출발한 동물보호시민단체다. 지구상에서 가장 약자인 동물들의 고통을 대변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한 ‘아름품’은 전문성은 부족했지만 사람들에게 생명존중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5000여 회원들이 모여 동물보호법 개정, 농장동물의 복지 증진, 개 식용 반대 등 각종 캠페인에 힘썼다.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에만 의존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아름품’은 2006년, ‘카라(KARA)’로 이름을 바꿔 비영리 시민단체로 등록했고, 올해 3월에는 농림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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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 임순례 대표가 “영화 촬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어 카라 활동을 벌이고 있다”며 활동을 시작하게 된 각오를 밝히고 있다. |
임순례 대표뿐만 아니라 활동가들도 각기 사연들을 가지고 카라의 문을 두드렸던 사람들이다. 카라에서 교육위원회 간사로 일하고 있는 양정화 씨는 키우던 강아지를 잃어버리면서 동물 보호 활동에 눈을 뜨게 됐다고 한다. “TV 뉴스에서 일반 애완견들도 식용으로 쓰인다는 이야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잘 몰랐었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동물보호 활동이 굉장히 많이 있더라고요. 그 때부터 보호소 봉사도 다니고, 눈과 다리가 불편한 ‘쫑이’라는 강아지를 카라에서 만나게 되면서 직접 이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간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규원 씨는 직접 고양이를 키우면서 생태주의 운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 운동을 같이 하던 분의 소개로 카라에 합류하게 됐다고 한다. 동물보호소봉사부터 동물보호전문가 양성까지 최근 카라에서는 반려동물교육자 양성과정과 동물보호명예감시관 교육제도를 통해 중간층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반려동물교육자 양성과정은 지난 7월 16일부터 약 2달간 ‘2010 반려동물 교육자 양성과정과 움직이는 반려동물학교 개설’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사람과 동물과의 동거, 한국 유기동물의 실태, 법과 제도 개선 정책 및 대안 등을 주제로 영국 RSCPA(왕립동물학대방지협회)에서 파견된 국제 프로그램 매니저, 애완동물훈련학과 교수 등 전문가들을 초빙해 실시하는 교육이다. 양정화 씨는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없어 다음 세대들을 위한 교육이 불가능한 현실이 안타까웠죠. 전문가에게서의 교육을 통해 중간층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 교육의 취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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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에서 개설한 ‘2010 반려동물 교육자 양성과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 7월 31일, 송기호 변호사가 ‘한국의 유기동물의 실태, 법과 제도 개선 정책 및 대안’을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
동물보호명예감시관 교육제도 역시 비슷한 취지로 진행하는 사업이다. “동물보호감시관 제도는 우리나라에 이미 존재하지만 활성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외국 같은 경우는 굉장한 실권을 부여한 동물보호‘명예’감시관이 존재해요. 동물학대 예방과 재발 방지를 위해서 일반인들도 계도 활동에 앞장서야 합니다.” 임순례 대표는 이전에는 정부에서 실시했던 교육을 처음으로 한국동물복지협회 등 다른 시민단체들과 함께 이관 받아 실시하게 됐다며 동물보호명예감시관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카라에서는 전문가를 초빙한 교육활동뿐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정기적인 캠페인 활동을 한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사설 애견보호소에 가서 견사를 청소하는 등의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다. 사료 기부, 약품 기부 등 각종 물품봉사도 한다. 매달 마지막 주 일요일이면 입양을 보냈던 강아지들과 가족들이 모두 모여 올림픽공원 등을 나들이하고 카라를 알리는 일을 벌이기도 한다. 동물 보호는 인권 보호에 더 큰 결실로 돌아올 것 최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 – 헌터스’ 프로그램 제작중단 운동을 하며 유명세를 탔다. 농가와 민가에 피해를 끼치는 멧돼지를 사냥해 개체 수를 줄이자는 프로그램 취지의 반생명성, 반생태성을 비판하며 제작중단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제작중단 운동 과정에서 멧돼지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는 생각지 않느냐는 또 다른 비판을 받기도 했다. ‘헌터스’ 제작중단 요구뿐만 아니라 카라 등 동물보호시민단체들의 개 식용 반대 캠페인, 채식문화 정착 등의 전반적인 활동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임 대표는 “모든 운동에는 반대가 있기 마련이죠. 방향성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라며 동물보호운동에 반대 입장을 펴는 사람들의 주장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아직 인권도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동물을 보호할 여력이 있으면 차라리 북한 어린이를 도우라며 화내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펴낸 동물보호무크지 <숨>의 창간호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던 것이 ‘인권을 넘어 생명권으로’였어요. 동물보호와 그들의 생명권을 주장하는 것이 결국 인권과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인권 운동도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서 공존하자는 거잖아요. 동물의 권리 보호와 동물 복지가 인권을 배제하자는 게 아니라, 인권 보호에 더 큰 결실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임 대표는 해결돼야 하지만 오랫동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는 문제로 ‘개 식용 반대’와 관련한 움직임을 꼽았다. 크게 반려동물, 농장동물, 실험동물, 야생동물, 사행동물 등으로 구분되는 동물 가운데 현재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단체들이 중점적으로 벌이고 있는 운동의 대상은 주로 반려동물과 농장동물에 한정돼 있다. 반려동물과 농장동물 문제를 해결해야 동물보호운동의 범위에 실험동물, 야생동물, 사행동물까지를 포함시키고, 나아가 분화된 동물보호운동을 전개해 나갈 바탕이 된다. 그런데 ‘개 식용 반대 캠페인’이 반려동물과 농장동물 문제의 가장 핵심인데도 불구하고 해결되지 않아 동물보호운동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7월 18일, 초복을 하루 앞두고 카라에서는 개 식용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한국 사람들과 이 문제는 굉장히 정서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논의 전개가 어렵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개고기 논쟁이 나오면 문화상대주의적, 민족주의적 논쟁으로 번지기 때문이죠. 단순히 진보적인 운동이라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아직까지도 진보 운동을 하는 사람이나 입법가, 행정 공무원, 언론인 등 공론화를 시켜야 할 사람들이 (보신탕을) 먹기 때문에 더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임 대표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할 때 큰 용기를 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적했다. “먹으면 무엇인가를 극복한 사람처럼 떠받드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죠. 비로소 집단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주는 분위기라든가.” ‘당사자 운동’이 아니라는 한계… 더 많은 배려가 필요 직접 동물보호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입장에서 최근의 동물 학대 사건을 보며 카라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임 대표는 그런 학대가 단순히 동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저는 한국 사회가 여유가 없는 사회라고 생각해요. 사회 자체가 극단화되면서 스트레스를 약자층에 푸는 것 같아요. 동물 학대도 그 연장선상에 있고요. 동물이 아이들보다 더 약자라고 할 수 있잖아요.” 약자 중에서도 한 발짝 더 나아간 약자인 동물에게 조금 더 배려를 해 주자는 것이 그녀의 논리다. 이러한 시민들의 의식 개선뿐만 아니라 현행 동물보호법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행 동물보호법상으로는 500만원이 벌금의 최대 상한선이다. 그러나 500만원이 선고된 사례는 최근 동물 학대 사례가 심각하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약 2차례 가량 있었을 뿐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고양이 ‘은비’ 사건의 경우에도 벌금이 300만원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인 탓에 동물학대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벌금의 상향선을 높이거나 동물보호법상 징역형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외국에서는 동물 학대 사건이 벌어지면 경찰이 출동해 그 자리에서 동물의 피난권을 보장하기 위해 동물을 주인과 격리시키고 처벌 이후에는 향후 몇 년간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규제하는 등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처벌 자체도 미약할 뿐만 아니라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임 대표에게 동물보호운동을 하며 겪는 어려운 점을 묻자 동물들의 아픔에 100% 공감을 하고 더욱 진실어린 활동을 해 줄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모든 시민운동은 당사자 운동에서 출발하죠. 여성들이 직접 여성 운동을 하고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인권을 찾고.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조금 특별합니다. 우리는 절대 당사자가 될 수 없잖아요. 대변인에 불과하거든요.” 여전히 반대의 목소리도 크고 어려움도 많긴 하지만, 분명히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임 대표는 시간이 흐르면서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공감을 해 주고 있는 것 같다며 대학생들도 동물보호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희망했다. “더디지만 우리는 인권을 넘어 생명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