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5일, 조선대에서 10여 년째 영문학을 강의하던 서정민 강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 27일에는 건국대에서 강의를 하던 한경선 강사가 모교인 텍사스 주립대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서울대에서만도 지난 2003년 이후 3명의 시간강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교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대학을 떠돌아다니는 시간강사들. 하지만 그들의 잇따른 죽음 이후에도 시간강사의 처우에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시간강사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해 국회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천막농성도 어느덧 1093일째다. (2010년 9월 3일 기준) 농성중인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고려대분회장’ 김영곤 씨와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 본부장 김동애 씨는 “오늘이 1068일째 되는 날이네요”라며 기자가 투쟁현장을 찾은 그 날도 투쟁이 몇 일째인지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국회 앞 천막농성 1000여 일째, 이제는 일상 김영곤 씨와 김동애 씨 부부는 매일 아침을 국회 앞 천막농성장에서 시작한다. 2007년 9월 7일부터 꾸준히 해 온 일과다. 2006년 8월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산하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회가 발족했고, 김동애 씨가 위원장을 맡으면서 1년간 직접 1인 시위를 했다. 2007년 들어 위원회 차원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게 됐다. 각각 고려대(세종캠퍼스), 한성대의 시간강사였던 부부는 가장 기본적으로 시간강사에게 교원 지위가 부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시간강사들에게도 낮은 시급 대신 현실화된 연봉이 주어지고, 4대 보험이 적용되며, 말 그대로 최소한의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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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앞에서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가 텐트농성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68일째다. |
2007년 말 큰 성과가 보이지 않자 한국비정규교수노조는 천막농성을 접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부부는 결국 그 이후 홀로 국회 앞 텐트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어느 덧 3년이 다 되어가는 농성, 힘든 점은 없을까. “여름이 정말 힘들죠. 덥고 습하고. 여기가 국회 앞이면서 한나라당 당사와 가까운 곳이라 경찰들이 항상 있어요. 바로 앞에 경찰버스 몇 대가 항상 시동을 걸고 있어 밤에는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죠.” 김동애 씨는 무덤덤하게 소회를 밝혔다. “우리가 텐트농성을 벌이는 곳이 국민은행 사유지에요. 공사다 뭐다 해서 쫓기고, 대놓고 나가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지만 우리는 나가지 않을 겁니다. 그럼 ‘국민’의 은행이 아닌 거죠.” 마침 기자가 농성장을 찾은 날은 부부가 정부중앙청사 앞 1인 시위를 나가는 날이었다.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는 교과부 앞 1인 시위를 위해 능숙하게 짐을 꾸렸다. 1인 시위에 필요한 피켓, 전단지를 챙기는 손놀림이 무척이나 익숙했다. “약을 제대로 챙겨 먹지 않으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네요.” 교과부로 향하는 길에서 약을 챙겨먹으며 김동애 씨가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철인’이 되기를 요구받는 시간강사들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를 비롯해 수만 명에 달하는 시간강사들은 1차적으로 시간강사가 교원 지위를 얻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교원’의 지위를 갖지 못한 시간강사들은 시급으로 계산되는 낮은 임금을 받는다. 생계 곤란은 자연스런 일이다. 서울대에서 15년째 강의를 하고 있는 서양사학과 시간강사 김원중 씨는 “1주일에 한 과목, 세 시간을 강의하면 한 달에 40~45만원을 받습니다. 지방에는 40만원이 안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두 과목을 강의하면 월 급료가 100만원이 안 되는 것이고 정말 무리해서 5과목까지 하면 200만원 정도의 월수입이 생기는 셈입니다”라고 밝혔다. 시간강사 가장만의 수입으로 4인 가족이 수도권에서 정상적인 생계를 꾸려나가기조차 힘든 것이다. 때문에 시간강사들이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강의 준비를 하거나 교수로 임용되기 위해 논문 준비를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강의가 없는 방학 넉 달 동안은 실업자가 되는 거죠. 방학 중, 심지어 학기 중이라도 수입을 위해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나마 이것도 학기 중에 강의가 있을 때의 얘기다. 언제까지 강의해달라는 ‘계약’이 없기 때문에 갑자기 강의가 끊길 경우도 다반사다. 개강이 가까워져도 대학에서 전화가 오지 않으면 강의가 끊긴 것이고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런 경우에 ‘아, 잘렸구나!’ 하고 말지만 기분은 비참합니다.” 김원중 씨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 밖에도 시간강사에게는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생계를 위해 무리하게 곳곳에서 강의를 얻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강의를 하는 시간강사들에게 건강보험,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현실은 그야말로 가혹하다. 김원중 씨는 “시간강사가 4대 보험 혜택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생에게도 4대 보험이 적용되는 요즘, 시간강사들은 그야말로 철인이 되기를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교수님 눈치만 봐야 하는 또 다른 ‘교수님’ 교수로 임용될 날을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시간강사들이지만, 학교에서 머무는 시간조차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김원중 씨는 “사이가 좋다가도 한 사람이 임용되고 다른 사람이 그렇지 못하면 관계가 서먹해집니다. 오래 강사 생활을 하다보면 교수들과도 사이가 안 좋아지고요. 학교에 와서는 강의만 하고 사라집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교수 임용에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여러 가지 다른 요인이 작용한다. 지원한 학교 교수들과의 우호 관계가 그 중 하나다. “실력이 좋더라도 교수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거나, 파워게임에 연루돼 임용되지 못한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강의 시간에도 시간강사들은 마냥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학생들에게 ‘교수님’ 소리를 듣지만 무엇보다 학문과 연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곤 씨는 결국 학생들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간다며 안타까워했다. 강의 도중에 사회 현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학교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천안함 사건이 한창 논란이 됐을 때 ‘다양한 의견이 있다’는 이야기도 못하는 거죠. 학생들의 교육권이 침해된다며 항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바로 해고되거든요.” 김영곤 씨는 강의 시간에 핵심적이고 민감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시간강사들 사이에 암묵적인 규칙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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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앞 텐트 농성지에 지난 5월 25일 자살한 고 서정민 강사의 유서와 시간강사의 불합리한 처우를 개선하길 요구하는 문구가 걸려 있다. |
연구 환경도 열악하다. 교수 연구실이 따로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교 도서관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다. 김영곤 씨가 출강하는 고려대는 그나마 시간강사들에게 도서관 출입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다. “관심 있는 분야를 강의하거나 연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힘들었을 겁니다.” 김영곤 씨는 고 서정민 강사 역시 유서에서 그런 심정을 밝혔다며, 시간강사들이 학자로서 마음껏 연구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지적했다. 심지어 전임 교수들의 논문을 대필해 주거나 자신이 쓴 논문을 빼앗기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노예로, 종으로 살아왔다’는 고 서정민 강사의 유서 속 일들은 현실에서 버젓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국회는 묵묵부답, 교과부는 미봉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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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학기술부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기간제(비정년) 강의전담교수’라는 직위만 생길 뿐 시간강사는 여전히 교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 민중의 소리 |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7월 29일, ‘기간제 강의전담교수 제도’를 시간강사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대학들이 1년에서 5년까지 기간을 정해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를 뽑을 수 있고 임용된 기간제 강의전담교수에게는 강의만을 담당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임용된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는 교원으로 인정받게 될 예정이다. 그러나 김동애 씨는 이 제도가 절대 시간강사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5년이 지나 임용기간이 만료되면 당연 퇴직해야 하는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를 늘리는 것은 시간강사의 계약 주기만 늘린 것일 뿐 그들의 불안정한 지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규직 교수 자리를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라는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채우려는 것 아닙니까?” 김동애 씨는 ‘교원 지위를 달라’는 시간강사들의 외침에 비정규직 기간제 강의전담교수를 늘리는 것으로 대답하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국회에서도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2007년 12월에 대선이 있었고 다음 해 4월에는 총선이 있었죠. 1달이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김동애 씨는 ‘교원 지위 회복을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줄 알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명시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2004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 2006년 열린우리당 이상민 의원, 2007년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계속해서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김원중 씨는 “지출 증가를 무서워하는 대학들이 정치권에서 벌이는 로비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똑같은 시간의 강의를 제공한다고 가정했을 때 교수 대신 강사를 쓰는 것이 약 5분의 1 정도 비용밖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이주호 의원이 2007년 고등교육법 개정안 발의 당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간강사를 교원으로 인정해 시급 대신 연봉을 지급할 경우 늘어나는 예산은 약 4617억 원에 달한다. 사립대학이 부담하는 예산증가분 중 국고에서 50%만 지원하므로 대학에서는 예산을 일정 부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김동애 씨는 재정부담도 문제지만, 대학 측에서 더 이상 기득권층을 늘리려 하지 않는 것이 더 핵심적인 문제라고 덧붙였다. “교원 지위를 주면 총장 선거에도 참여하려 할 것이고, 교수 연구실도 달라고 할 것이고…. 철밥통이 몇 만개나 더 늘어날 지가 겁나서 그러는 것이죠.” “문제 해결은 ‘내 일이다’는 관심에서부터” 서울대만 해도 시간강사가 총 1,321명이다. (2009년 10월 기준) 이는 서울대 내 전체 교수진 중 23%에 달하는 숫자이고, 정교수(1,209명)보다도 더 많다. “시간강사 문제를 학내 주요 문제로 인식하고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원중 씨는 학생들이 시간강사들의 처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동애 씨 역시 “서울대생들 중에서는 교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내 일이다’라는 문제의식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라며 학생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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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학기술부 앞에서 김동애 씨가 1인 시위를 하며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회복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전단을 나눠 주고 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발길이 무심하기만 하다. |
1000여 일의 농성. 정기적이지 않은 후원금에 의존해 계속해서 농성을 하다 보니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는 이제 빚까지 내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른 강사 분들이 그래요. 자제분들 볼 면목이 없어서 어떻게 하냐고. 돈도 잃고 건강도 잃고…” 지금은 많은 시간강사들이 멀리서 응원을 보내주고 있고, 처음에는 말리던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후원해 준다고 한다. “힘들 때마다 내가 붙잡고 있는 시간강사 문제가 해결돼야 할 문제인지 아닌지 고민을 해 봅니다. 고민을 하다보면, 분명히 개선이 필요한 문제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할 겁니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확신에 찬 목소리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는 김영곤, 김동애 씨 부부. 이제 우리의 작은 관심으로 응원을 보내 줄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