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부터인가 해외여행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선 이름이 아니게 됐다. 황금연휴에 공항이 붐비는 것은 당연한 일이 돼버렸고, 주위에서 세계일주를 다녀왔다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에게 돌아오는 말은 ‘어글리 코리안’뿐이란다. 죄라면 새로운 세상을 본다는 부푼 희망을 가지고 떠난 것 밖에 없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것일까? 책임지지 않는 자유는 방종에 불과하다고, 그래서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지는 여행, 착한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 해답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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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매진피스 이혜영 씨는 “어디를 여행하는가보다 어떻게 여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그물망, 이매진피스
스스로를 평화를 디자인 하는 자, 피스 에디터라고 칭하는 ‘이매진피스’ 이혜영 씨를 만난 곳은 여느 사무실이 아닌 떠들썩한 명동 한 복판에 위치한 유네스코 회관이었다. 잠시 뒤 있을 ‘공정여행 포럼’ 준비를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이 씨에게 약속된 인터뷰를 청하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2006년 가을, ‘평화’라는 이름 하나로 시작된 이매진 피스는 그 흔한 상설기구도, 상설인력도 없다. 이매진피스 창립멤버인 이혜영 씨는 “지인이 좋은 일에 쓰라고 쥐어준 10만원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다가 일을 시작하게 됐다”며 이매진피스가 창단될 당시를 회상했다. 이전에는 녹색연합 등에서 시민운동을 했던 이 씨는 지금도 출판사 일을 하면서 이매진피스의 일을 하느라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정도다. 그러나 이 씨뿐만 아니라 이매진피스의 책임자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7명의 피스 에디터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이매진피스의 일을 하고 있다. “저희는 회원 명부가 없어요. 회원을 관리하거나 회비를 받지도 않고요. 하지만 누구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대한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어요. 필요한 돈은 그때그때 마련하고요. 피스 에디터는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해가는 데 있어 도움을 주는 것에 불과해요.” 이 씨의 설명은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직접 참여하는 네트워크형 시민단체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이매진피스가 평화행동으로 처음 선택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평화도서관 지어주기’였다. “내전과 쓰나미로 집을 잃고 부모를 여의어 학교도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 책이라도 읽게 해주고 싶었어요.” 이 씨의 말이다. 그렇게 후원금 10만원으로 시작한 ‘책 보내주기 운동’은 분쟁으로 얼룩졌던 인도네시아 아체에 첫 평화 도서관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동티모르와 이라크에도 또 다른 기적을 낳고 있다. “저희들이 하나하나 스스로 이뤄낸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가서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고,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저희 눈으로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직접 그 곳을 방문하다가 뜻밖의 모습을 마주하게 됐죠.” 그것은 바로 그곳을 여행하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의 잘못된 모습이었다. “한국 중년 남성들이 현지 소녀의 손을 잡고 호텔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뭔가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이런 나쁜 여행 대신 ‘공정여행’을 하도록 우리가 먼저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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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17일, ‘공정여행, 아시아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
공정여행? 여행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바꾸다!
공정무역은 대체로 많이 들어본 듯한데 ‘공정여행’이라는 말은 알 것 같으면서도 낯선 단어다. 이매진피스의 이혜영 씨는 “흔히 여행이라하면 어디로 갈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하는 여행의 결과로 현지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공정여행의 첫걸음”이라며 운을 뗐다. “공정여행도 공정무역처럼 내가 내는 돈이 현지인들에게 정당하게 지불되고 있는지, 그 지역의 사람, 자연, 문화를 존중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해요. 실제로 현재 우리가 지불하는 돈은 동남아시아의 경우 그 나라에 20%밖에 주어지지 않고 그 중에서도 실제 우리가 만나는 현지인들에게는 1∼2% 돌아가는 게 고작이에요.” 특히 이혜영 씨는 똑같은 아시아인이면서도 서양 사람들과 같은 시선에서 다른 아시아 국가를 무시하는 폭력적인 시선을 갖게 된 한국인들을 꼬집었다. 2007년, 한국 여행자는 1천 3백만을 돌파하며 동남아시아 및 유럽 일대를 휩쓸고 돌아다니는 관광 열풍을 일으켰다. 2007년 11월, 필리핀의 유력 일간지는 한국 관광객이 필리핀을 방문한 국가 1위를 기록한 사실을 보도하며 “한국 관광객, 필리핀을 점령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외화와 일자리를 가져다주는 관광객들을 향해, 전쟁이나 침략자에게 사용하는 ‘invasion’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이매진피스는 지난 11월 17일에 열린 포럼에서 ‘공정여행, 아시아를 만나다’를 주제로 이런 현상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여행에도 공부가 필요하다” 지난 9월부터 올 연말까지 이매진피스에서는 ‘여행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여행인문학 강좌에서는 여행을 그저 즐기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 것으로 상정 한다. 이혜영 씨는 여행도 “하나의 지식, 교양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에는 사회적기업인 여행협동조합 맵(MAP)이나 아시안브릿지, 국제민주연대 등에서 함께 공정여행을 떠나고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개인 여행자가 자신의 여행을 직접 기획하고 폭넓게 생각하도록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본적인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여행인문학 강좌를 들은 수강생이나 공정여행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또 ‘공정여행 카페’를 통해 그 관심을 또 나누고 있다. 공정여행 카페에서는 서로 여행에 대해서 조언하고, 자신이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웠고 성장했는지에 다룬다. 또 여행 이후 돌아온 삶에서 어떻게 나아갈 지를 고민한다. 또 이런 고민들이 모여 먼 해외여행에 대해서 생각하지만 ‘동네 공정여행기’를 통해 우리 주변인 동네 자체도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다가가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특히 이매진피스는 2009년 6월 10일 한국 최초의 공정여행 가이드북, 를 출간하며 본격적인 공정여행 캠페인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를 통해 한국사회에 부분적으로 알려져 왔던 ‘피스보트’여행에 대해 사람들의 본격적인 관심을 이끌어 냈다. ‘피스보트’는 세계의 평화와 인권 증진, 지구 환경의 보호 등을 목적으로 1983년 설립된 일본의 국제적인 시민단체다. 이미 이매진피스는 여러차례의 포럼을 통해 피스보트의 철학과 경험, 성과와 한계에서 이제 막 시작되는 한국의 공정여행 운동이 배울 점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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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여행을 주제로한 축제에서 한국의 제천간디학교 학생들이 사물놀이 공연을 하고 있다. |
여행도 하나의 ‘스펙’이 돼버린 대학생에게 고하다
다가오는 12월 5일 이매진피스에서는 ‘공정여행축제’를 개최한다. 올해로 3년째다. 이매진피스는 ‘상명하달식’ 단체가 아니다. 이번 공정여행축제도 이런 이매진피스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사실 ‘공정여행’의 역사가 깊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여행을 했던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공정 여행을 했던 사람, 또는 하고픈 사람들이 모여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이 이 축제의 메인이에요.” 이혜영 씨는 ‘이런 기회를 통해 여행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눠 이런 공정여행이 씨앗처럼 퍼져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찬바람이 불어오며 기말고사 기간이 시작됐지만 취업난이 가속되는 요즘, 학생들은 벌써부터 겨울방학에 무엇을 해야 할지 걱정을 하고 있다. 그 중 또 많은 학생들은 기업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나, 해외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말 그대로 여행도 하나의 ‘스펙’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는 ‘입학유예제’가 있어서 입학허가 후 학교를 다니지 않고 1년 동안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어요.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막연히 생각만 하는 것보다 여행을 통해 목표를 세우고 성장하는 것이 학습적 효과가 더 크다고 믿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혜영 씨는 “자신이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여러 가지 하려는 희망을 갖는다면 자신이 어디를 갈지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