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축제, ‘광합성놀이터’에서 학생잔디 한 쪽에 대규모로 세워졌던 미로 공간을 기억하는가. 20x20m 규모로 세워졌던 설치미술프로젝트 ‘Oh! Wall’ 말이다. 지난 2월부터 축제하는사람들(이하 ‘축하사’)에서 행사기획팀장으로 뛰면서 저질렀던 프로젝트, ‘Oh! Wall(이하 ‘오월’)’. 그 기획과정과 제작과정, 전시일정을 정리해본다. ‘Oh! Wall’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오월’ 아이템은 3월 초에 나와 계속 다듬어졌다. 전반적인 준비과정을 돌아봤을 때, 상당히 예열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꼭 팝콘이 튀겨지는 것처럼 말이다. 깡깡하게 건조된 옥수수알은 한참동안 가열한 후에야 갑자기 펑펑 튀며 순식간에 팝콘이 된다. ‘오월’이 꼭 그랬다. “로드가 많이 걸린다”는 말이 입에 항상 붙어있었다. 그러다가 준비기간 막판 즈음에 ‘오월’을 구현해줄 결정적인 사람들을 만났고, ‘Oh! Wall’은 진짜로 만들어지게 됐다. 서울대에서 거의 처음 시도되는 대규모 야외전시 프로젝트라는 말을 들었고, 선례를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그만큼 참신하고 새롭다고 여겨졌지만, 기획단계에서 주위 사람들은 낯설어 했고 실현가능성을 그닥 높게 보지 않았다. 기획자인 나는 항상 실현가능성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결국 ‘오월’이 실현된 것은, 실현불가능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알려주었던 그 사람들 덕분이다. ‘오월’의 기획과정이 갈등이 있고 극적 반전이 있는 ‘장편드라마’였다면, 제작과정은 한 편의 ‘서사시’였다. 머리 속에서 그렸던 것이 눈앞에 서서히 나타나는 모양,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면서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경이로웠다. 전시일정은 정신없이 진행되는 ‘미니시리즈’였다. 관악타임과 비바람과 싸우며 “엎치락뒤치락” 행사를 진행했다.‘Oh! Wall’ 기획, ‘장편드라마’의 시작‘오월’의 기획작업은 크게 ‘내용’과 ‘형식’,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용에 해당하는 전시 컨텐츠는 미술동아리들의 전시와 학우들의 즉흥적인 참여, 자체기획 컨텐츠 전시 등으로 나누어 기획됐다. 각 전시단위는 김민수 대책위, 미대 학생회, ‘미동’, 미대 그림동아리 ‘순간이동’, 사진동아리 ‘영상’이었다. 준비과정 막판에 스킨스쿠버 동아리 ‘수중탐사대’의 수중사진전이 들어오면서, 모두 여섯 팀이 됐다. 미술단위와는 4월부터 각 단위 대표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회의를 했다. 그러나 전시 형식에 대한 기획은 정말 쉽지 않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아무리 전시 컨텐츠가 나오더라도, 그걸 제대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시 장소, 설치방식의 결정 등, ‘형식’ 기획은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음엔 진짜 ‘벽’에 불과했다‘Oh! Wall’은 ‘5월의 벽wall’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단순히 ‘벽’만 덩그러니 서 있던 게 아니라 그 벽이 모여 공간을 이루었다. 그런데, 초기 기획은 새로운 공간 자체를 만드는 정도는 아니었다. 길에 ‘벽’을 세워, 기존의 공간을 약간 변형하는 정도였다. ‘아트월Art-Wall’, ‘포토월Photo-Wall’이라는 아이템으로, 기존의 축제가 갖고 있던 취약점-비주얼이 약하고, 전시 관련 기획이 없었다는 점, 참여의 문턱이 생각보다 높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한 행사 기획이었다. 셔틀버스 정류장에서 학관과 아크로까지 이어지는 길(셔틀-학관 길) 중앙에 벽을 설치해서, 전시를 하고자 했다. 아트월에는 학내 미술 단위들의 벽화 작업 뿐 아니라 학우들이 즉흥적으로 낙서 등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포토월에는 사진동아리 ‘영상’이 매 축제마다 해 왔던 ‘속보전’을 규모를 키워서 하는 것으로 설정됐다. 그런데, 개막제 무대 음향차의 진입 때문에 셔틀-학관 길을 쓸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학우들이 걸어다니는 길일 뿐 아니라, 꼭 필요한 차량이 진입하기도 하는 길이었던 것. 개막제에 위험부담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쩌랴.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옆에서 듣고 있던 공동행사팀장 안재화씨가 문득 잔디공간을 지목했다. 학생잔디는 주로 행사팀이 기획하는 공간이기도 했으니, 새로운 장소로 떠오른 건 당연하기도 했다. 무엇으로 벽을 세울 것인가 학생잔디로 장소선정이 바뀌면서, 당연히 규모와 벽의 설치방식을 다시 고민해야 했다. 특히 관건은 설치재료였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적당한 가격에 큰 효용을 거두는 설치 재료”를 찾지 못한다면 말짱 꽝이었다. 야외전시이므로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안정성이 있어야 했고, 가격이 저렴해야 했다. “미대에서 전시행사를 할 때 쓰는 파티션(나무칸막이)이 어떨까”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썩 좋은 답은 아니었다. 미대에 어느 정도의 물량이 있는지, 만약 있더라도 대여가 가능한지가 불확실했다. 제작을 한다 하더라도, 파티션의 재료가 되는 나무합판의 가격이 또 상당했다. 거기다 그걸 세우더라도 안정성을 보장할 수가 없었다. 축하사 멤버들은 작년 축제 때 천막이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셌다는 것과, 잔디 바닥이 일반적인 바닥처럼 그리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축하사 내부의 논의는 한계가 있었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노하우를 지닌 인재를 찾아야했다. 5월에 접어들고 축하사 멤버들이 움직이는 리듬도 더욱 빨라졌다. 그러던 중, 조소과 졸업생인 심성운씨를 알게 되었다. 나의 아이디어를 듣고 바로 여러 재료와 단가를 이야기해주었다. ‘오월’이 진짜 만들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그를 만나면서 더욱 확실해졌다. 설치방식에 대한 것은 심성운씨에게 맡겼으나, 또 문제는 ‘오월’ 공간의 설계였다. 예전부터 만나왔던 전시단위들과 공간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공간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제대로 설계도면을 만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인맥과 웹 홍보 등등을 통해 백방으로 건축과 쪽 학생을 찾았다. 3일간 별로 효과가 없자, 결국에는 내가 듣는 건축과 전공 수업시간에 즉석 제안을 했다. 수업이 끝나고 건축과 02학번 마승범씨가 “재미있을 것 같다”며 참여의사를 밝혀왔다. 축제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야 이렇게 정예멤버가 완료됐다. 지금 생각하면, 시공을 맡아준 심성운씨와 설계 마승범씨가 들어온 시점이 정말 결정적이었다. 최고 한계점이었고, 그 때까지 이들을 못 찾았다면 ‘오월’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막판에 설치 형식을 이들에게 맡기고, 전시 컨텐츠 정리작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오월’의 제작, ‘노가다’의 총체‘오월’은 축제가 시작되기 전 주말에 설치됐다. 13일에는 설계도면의 최종 수정작업이 이루어졌고 설치재료를 준비했다. 14일에는 설계도면대로 세우기 위해 잔디에 1m 간격으로 모눈을 치는 작업부터 시작해, ‘오월’의 뼈대구조를 만들었다. 이 날 사람들이 가장 고생했다. 축하사의 모든 멤버들과 총학 집행부원, 전시단위에서 온 사람들이 다 달라붙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오월’의 뼈대를 세웠다. 쇠파이프를 나르고 공구를 이용해 그걸 조립했는데, 한 마디로 소위 ‘노가다’였다. 저마다 머리를 쓰며 글 쓰고 그림 그리던 사람들이, 몸을 움직여 막일을 하는 게 낯설면서도 한편 재미있었다. 그게 단순한 막일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말이다. 15일은 ‘오월’의 뼈대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벽에 흰 천을 두르는 작업이었다. 16일 새벽이 되어서야 ‘오월’ 구조가 완성이 됐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진행상황이 느렸으나, 마감은 어찌어찌 지킨 셈이었다. 화요일의 저주, 비가 오다니 축제 첫날은 관악타임에 시달렸고, 둘째 날엔 우중충한 날씨와 싸워야했고, 셋째 날에는 전날 밤 비와 강풍 때문에 초토화된 공간을 재정비했다. 전시일정에 있어 가장 절정이었던 날은 첫날 오후였던 것 같다. 2일째엔 흐리고 비가 와서, 비에 젖으면 안 되는 조형물에 천막을 덮고, 전시물 일부를 철수하는 등 전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3일째엔 ‘오월’ 공간 자체와 전시물들이 비바람으로 인해 많이 손상되어, 큰 타격을 줬다. 야외전시에 있어 날씨는 정말 중요한 요소인데, 정말 딱 절정이 될 날에 비가 내려 시련을 주었다. 날씨가 좋았던 첫날은 전시 완료가 늦게 된 점이 있었다. 실제 전시 운영에 있어 참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 와중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고, 각 전시 방마다 오래 머무르며 살펴보곤 했다. 미로의 함정에 빠져 소리를 지르거나, 중앙에 배치된 조형물 옆에서 똑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벽에 매달린 펜을 손에 쥐고 자신의 생각을 적기도 하며, 재미있어 하는 표정을 보았다.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오월’은 시간이 지날수록 풍부해졌고, 변화해갔다. 그러나 도중에 천재지변으로 그 리듬이 깨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기획자가 돌아보는 ‘오월’축하사장은 준비과정 중 나에게 “가장 어려우면서도 바람직한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어떤 행사를 기획할 때, 자체기획으로 내부에서 해결하는 방식이 가장 쉽다는 것. 그러나 나는 관련 자치단위들을 끌어 모았고, 같이 만드는 축제를 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나는 예전 축제를 보면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행사 기획에 반영하려 애썼다. 전시행사를 하더라도, 단순히 보여주는데서 그치기는 싫었다. 축제에서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는 무대 공연이든, 농구 경기든 ‘보기만 하는 것’이다. 나는 축제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객체가 아니라 직접 축제에 참여하는 주체가 되길 바랐다. 사람들이 참여하길 어려워한다면, 기획자인 나는 그 문턱을 낮춰야 했고 재미를 줘야 했다.’오월’ 공간을 만들 때, 굳이 ‘미로’라는 형식을 택한 이유는 공간 자체부터 재미있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갈림길에서 길을 스스로 택해보고, 그 안에서 서울대 안의 미대나 인문대 등의 복잡한 건물구조도 떠올리길 바랐다. 낙서를 하면서도 단순한 메시지의 배설이 아니라, 지금의 서울대와 캠퍼스 공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 각 미술 자치단위의 활동, 김민수 교수의 원직복직 과정, 본부 건물의 이전계획, UI(University Image) 변경계획 등을 알리고, 학우들이 그걸 목격하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극을 받고 또 생각하게끔 하고 싶었다. 축제는 단순한 일탈, 일상과의 괴리의 표상이 아니다. 축제에서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대한 고민은 놓지 않으면서도, 다르게 보는 관점을 획득하고, 재미 또한 느끼기를 원했다. 실제로 사람들이 ‘오월’ 공간 안을 움직이는 모양은 흥미로웠고 또한 놀라웠다. 사실 ‘사람들이 참여컨텐츠를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우려가 가장 컸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정말 잘 움직였고, 내 우려를 불식시켜줬다. ‘오월’에 들어와 곧잘 미로의 함정에 빠져들었고, 참여 컨텐츠 앞에서는 바로 펜을 들어 끄적거렸다. 축제 마스코트 ‘고릴라리온’에게는 제각각의 개성어린 표정을 그려주었고, 본부 리뉴얼링 계획 앞에서는 자신의 소망을 머뭇거리지 않고 적었다. 특히 참여컨텐츠 전시공간에는 사람들이 단순히 메시지를 더하는 것 뿐 아니라, 이미 적어놓은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며 재미있어 했다. 각자의 생각들이 유쾌하게 맞부딪쳤고, 스스로 ‘오월’에, 그리고 ‘축제’에 표정을 부여하고 있었다.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축제’를 즐겼던 것은 아니다. ‘오월’에 들어온 사람들이 서울대 전체 학생 중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단적으로 나의 지인들 중에도 ‘오월’ 안에 직접 들어왔던 사람과 들어오지 않은 사람이 반반이었다(다들 바쁜 사람들이라, 안 들어온 사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오월’ 안에 들어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해 입구로 다시 돌아갔다”거나, “전시 컨텐츠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미로 속에서 그저 헤맸다는 인상만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잔디 공간 자체에 아예 들어가보지도 않았다”고 한 사람들 중에는, “예전부터 축제 자체가 한 차례 파티를 하고 지나가는 인상이 강했다”며, “이번에도 별로 축제 자체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과제나 학과일정에 바빠 아예 축제기간인지도 제대로 몰랐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번 축제에 참신한 기획이 눈에 띄었지만, 축제기간에 5.18이 끼어있었다는 것은 생각해봐야하지 않나”고 한 사람도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오월’이란 행사명이 대동제의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괴리감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 축제를 즐기지 않거나-못했던 사람들 또한 축제에서 지나치지 말아야 할 표정이다. 축하사 내부의 ‘오월’ 평가그래도 축하사 내부에서는 이 ‘오월’ 행사가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축하사장 이광욱씨는 ‘오월’에 대해, “축제 분위기와 외관의 변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면이 좋았다. 비주얼적인 면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리고 부족했던 미술관련 정책을 보완하는 계기도 되었다. 미술단위들의 지역구 활동이 중앙으로 진출한 셈 아닌가. 또 설치미술임에도 단지 보는 것뿐 아니라, 학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열린 소통구조를 지닌 새로운 장이었다. 학우들의 미적인 욕구, 표현하는 욕구 등을 확인하는 계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공동행사팀장으로 함께 일했던 안재화씨는 “‘오월’ 기획으로 축하사 행사팀 본연의 역할이 제대로 이루어졌다”며, “예전의 축제는 ‘개막제’가 가장 핵심이고, 다른 행사는 소도구적 색채가 강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각 단위들을 조정하는 ‘장터’ 등의 기획에서 좀더 발전했다. 축하사와 각 자치단위가 주체가 되어 능동적인 기획행사를 만든 것 같다”고 말했다. 살아 움직이는 ‘오월’ 그리고 축제기획-제작-전시로 이어지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다. ‘Oh! Wall’의 기획자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다. 또한 주인공은 실제로 ‘오월’ 공간에 표정을 부여해주고, 살아 움직이게 한 학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