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싱가포르 대학(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NUS)에서 지난 9달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치고 관악으로 돌아온 지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참 많은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연재인 이 글에서는 내가 지난 시간동안 NUS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NUS의 인상적이었던 점들을 적어보겠다.photo7 올해 백주년을 맞는 NUS는 싱가포르의 메이저 3개의 국립대학(NUS, 난양기술대학, 싱가포르 경영대학) 중 최고의 역사와 명성을 가지고 있는 학교로서 싱가포르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하는 대학 꼽히고, 서울인구의 약 1/3 수준인 약 300만의 싱가포르 국민의 대학교육 수요를 상당부분 만족시키고 있다. 보통 싱가포르의 고등학교에서 학교에 따라 많게는 전교생의 70%, 적게는 20% 선의 학생이 NUS에 진학한다고 한다. NUS는 13개의 단과대를 가진 종합대학으로 한해에 학부 22,000명, 대학원 8,000명의 입학생을 받는다. 그리고 전체 교수진은 2,055 명에 이르러 우리학교와 거의 비슷한 인적 규모를 가진다. NUS의 정규 학사과정은 3년이다. 그 기간 동안 교양과목과 전공에 필요한 과목들을 수강하고 3년 과정이 끝나면 학사학위를 받고 졸업을 하거나 아너즈(Honor’s)학년인 4학년에 지원할 수 있다. 4학년은 소수의 과목을 수강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졸업 연구, 실험을 하고 논문을 쓰는데 보내게 된다. NUS의 학생들은 공부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데 상대평가로 결정되는 학교 성적이 등급으로 구분되어 졸업장에 1등급, 2등급, 3등급으로 나타나고, 이것은 아너즈 과정을 마쳤는지의 여부와 함께 추후 직장을 구하는데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NUS의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와서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한다. 대학에 입학 하였더라도 학생들이 계속 열심히 공부하게 만드려는 NUS 당국의 정책이라고 생각된다. NUS의 수업은 효율성과 효과성 두가지를 모두 높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NUS는 학생수가 많은 국립 대학이다. 따라서 다수의 학생들에게 공평하게 좋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점은 공교육기관이 주로 당면하게 되는 문제이다. NUS는 이 문제를 몇 가지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먼저 수강 신청 시 사용되는 교과목 경매(bidding)이다. 학기 초에 모든 학생들은 1000점을 부여받고 이 점수를 학기 초 진행되는 교과목 경매에 활용한다. 경매는 전공자만 참가가능한 라운드, 모든 학생이 참가 가능한 라운드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공자가 우선적으로 수강신청의 기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여석을 다소 공평하고 합리적으로 수강을 원하는 사람들이 나누어 차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 방법은 인기강좌의 수강 정원을 배분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이와 함께 기초과목이나 인기 교양과목의 경우에는 수강정원을 많게는 300명까지 받아 보다 많은 학생들에게 수강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대형 강의는 교수와 학생의 의사소통 단절이라는 ‘대량생산’의 부작용인 비인간화를 초래할 수 있다. NUS는 이점을 보완하고 수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정규 강좌시간 이외의 20명 정도의 소규모로 진행되는 연습(Tutorial)시간을 배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수업에 따라 격주에 한번, 혹은 삼주에 한 번 이루어지는 이 시간에는 학생과 교수가 얼굴을 마주보고 토론을 통하여 강의시간에 배웠던 개념을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관련된 문제에 적용해보기도 한다. 또한 이 시간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므로 인간적인 유대 형성이 가능해진다. 보통 이렇게 구성되는 대형강의는 몇 분의 교수님들이 협력하여 파트를 나누어 가르치므로 교수님들의 강의 부담을 줄여주는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저학년의 과목은 이런 대형강좌가 대부분이나 학년이 높아지면서 강의는 점점 소규모화 되어간다. 특히 경영학 등 인문 사회 계열 전공의 3학년 수업은 소규모의 세미나 형식의 강좌가 대부분이고 그룹 프로젝트, 발표, 토의가 주요 학습 방식이 된다. 생명과학 등 이공계 과목의 경우 특이할 만한 점은 거의 모든 강좌에 실험수업이 의무적으로 병행된다는 것이다. 실험수업은 보통 일주일에 두 시간씩 배정되어 있고 이렇게 배정된 시간을 격주 혹은 삼주에 한꺼번에 합하여 아주 긴 실험을 하게 된다. 지난 학기에 수강했던 면역학의 경우에 총 5번의 실험을 했는데 한번의 실험이 보통 6시간동안 이루어져 한번 할 때 여러 가지를 해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photo1NUS 커리큘럼은 이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그 이론 교육이 현실과 연결되도록, 또는 최근의 연구동향과 연결시켜 그 분야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넓히도록 설계되어있다. 따라서 1, 2학년의 기초 과목은 이론에 중점을 두고 있고, 3,4학년 과목은 매우 다양하고 전문화된 방식으로 현실과 접목되어 있다. 예를 들면, NUS의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김선빈(26)씨가 지난학기 수강했던 마케팅 과목인 Promotional management라는 과목의 경우 수업 과제가 케이스 스터디나 성적을 위한 프로젝트에 그치지 않고 직접 현실에서 사용될 수 있을 만한 광고 캠페인을 구성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주어졌던 과제는 기네스 맥주를 위한 광고를 만드는것. 기네스에서 스폰서가 되어 돈을 대어주고 이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약 10개 정도의 팀을 구성하여 경쟁한다. 경쟁 상대에는 기네스의 원래 광고 회사인 Saatchi & Saatchi도 있어 경쟁의 수준이 자연히 높아진다. 총 6주간에 걸쳐 카피문구을 비롯하여 인터넷, TV, 신문 광고와 인 하우스 프로모션 등 모든 마케팅 활동을 일관성 있게 제작하는 것이 임무이다. 김선빈씨는 이 경쟁에서 1등을 하시어 팀원들과 함께 천불의 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의 업무와 연계된 과목을 통해 학생들은 실무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회사의 경우 대학생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반면, 내가 수강하였던 생명과학부 강좌인 세포분자신경생물학의 경우, 이론 공부와 함께 현재 신경생물학 연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주는데 초점이 있었다. 강의 노트는 주 교재와 함께 Nature Neuroscience등 권위 있는 학술지의 최신 논문의 내용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교수님이 부과 하는 과제 또한 책에 뻔히 있는 내용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주제에 대한 연구논문을 찾아서 스스로 이해하고 논리적으로 연결시켜 나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과학자들이 부딪히고 있는 문제를 알려주고 이를 돌파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지기도 하였다. photo2그래서 “기억(Memory)형성”에 관한 최근 논문들을 찾아서 읽고 그 기작을 스스로 깨우쳐야하기도 했고, 파킨슨 병의 치료 약으로 제시되는 물질을 어떻게 뇌의 문제가 되는 부분까지 특이적으로 전달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기도 했다. 이렇게 NUS는 고 학년이 될수록 다양하고 전문화된 이슈에 대한 강좌를 설치하여 학생들이 졸업 후를 대비할 수 있도록 한다.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점은 이 학교의 세계화 노력이다. NUS의 인종구성은 싱가포르의 인종구성만큼이나 다양하다. 다인종 도시 국가이니만큼 교수님들의 출신이 학벌에서 지역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것은 세계의 유수 학자들을 자신의 학교로 끌어 모아 잘 교육받은 시민을 양성하려는 공교육 기관으로서의 노력이 일조하고 있고, 이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특성상 나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도 잘 융화하는 열림 마음이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싱가포르주변의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의 나라에서 NUS로 유학 온 학생의 수도 꽤 많았는데 이들은 모두 졸업후 싱가포르에서 3년간 일한다는 조건하에 정부지원을 받고 싱가포르 국민이 내는 수준의 학비를 내고 다니는 학생들이다(음대와 의, 치의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공과정의 정규학비는 일년에 약 S$20,000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국민일 경우 약 S$6,000의 금액만 학비로 내고 나머지 금액은 정부에서 보조를 해준다). 교환학생프로그램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좀더 많은 재학생들에게 외국 문화를 경험하고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인데 NUS는 현재 세계 19국가의 120여개의 대학과 대학간 교류협정을 가지고 있다. NUS는 학기별로 학생을 파견하고 이렇게 교환하는 학생의 수는 한 학기에 약 5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NUS는 단과대학별 연계를 통한 기술교류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photo3리콴유 공공정책 대학(Lee Kuan Yew School of public policy)의 경우 설립 초기에 하바드의 케네디 행정대학원과 기술교류 협정을 맺어 프로그램 개발 등 많은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받았고, 현재에도 이 두 학교는 교수진을 교환하고 커리큘럼과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등 적극적인 교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 존스홉킨스 대학과 비슷한 교류를 하고 있는 NUS 의대는 머지 않아 학사학위 소지자가 입학 할 수 있는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할 예정인데, 이것을 듀크대학과 공동으로 추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 바이오 벨리의 팬실베니아 대학, 실리콘 벨리의 스텐포드대학에 정예의 학생들을 파견하여 수학의 기회를 갖게 하고 인턴십의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도 매우 흥미로웠다. NUS의 인프라도 주목할 만 한 것이었다. 다수의 대형 강의실, 실험 기기가 매우 잘 갖추어져 있고 전문 인력에 의해 관리되는 실험실, 대형 강좌의 경우 운영되는 인터넷 동영상 강좌 등 물리적 자원과,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고 강좌에 내실을 기울이시는 실력있는 교수님들, 학생들이 문제가 있어 찾아가면 언제나 웃으면서 해결점을 같이 찾아 주는 교직원, 학교의 정책이 100%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궁극적인 목표인 학업 능력을 올리는 것에 충실한 학생들과같은 인적자원 등등.. 이 중 정말 좋다고 생각 했던 것은 NUS의 도서관의 참고자료대출 시스템이었다. NUS의 도서관은 방대한 문헌자료를 포함하여 NUS에서 개설되는 모든 강좌의 교과서와 참고 자료를 구비하고 있다. 강좌의 참고 자료는 교수님이 도서관에 요청하여 즉시 구매한다. 이렇게 지정된 참고자료는 도서관의 중앙 대출대에 따로 비치되어있어 사서에게 요청하여 열람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때 열람시간은 일괄적으로 두시간으로 제한되어 제한시간 안에 반납을 하거나 재 대출을 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일부학생에 의한 교과서 독점 대출을 막아 모든 학생에게 균등한 도서 대출의 기회를 제공하므로 학생들은 값비싼 교과서를 구지 구매하지 않고도 공부를 할 수 있다. 스스로를 “Knowledge Enterprise”라고 부르는 NUS는 공기관 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업과 같은 진취적이고 실용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NUS는 미래를 향하여 정진하는 학교이다. 자부심은 가지고 있으되 교만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점을 보완하기위하여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뻗어 새로운 것, 더 발전된 것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런 이들의 자세가 지난 11월 발표된 타임 세계대학 랭킹에서 NUS가 미국의 유수 사립대학들을 뒤로하고 18위에 오를 수 있게 한 배경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정말 빨리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가장 큰 의의인 다양성에의 경험이라는 것을 얻었다. 또한 NUS는 우물 안 개구리 였던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